정보요원·예비역·전투장비 등 비공식적 지원 가능성도 [北, 러 우크라전 대규모 파병]

박수찬 2024. 10. 2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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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조치 검토” 경고장 날린 韓
韓·러 관계, 러 체류 교민 안전 등 고려
살상무기 등 공식적 군사 지원 어려워
‘155㎜ 포탄’ 美통해 우회지원 방식 유효
민간드론·의약품·고체연료 등 지원 거론
우크라군에 북한군 전술 자문할 수도
軍, 대북 확성기로 ‘러 파병’ 소식 알려
우크라 매체 “러 탈영 북한군 18명 체포”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고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면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러시아를 돕기 위해 파병을 단행한 북한에 러시아가 첨단 군사과학기술을 제공하면 정부가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기준으로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어서게 된다. 북한군 파병 사실이 밝혀진 직후 155㎜ 포탄 지원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55mm 포탄’ 우크라 지원될까 육군 8사단 K9A1 자주포가 21일 강원 철원군 문혜리 훈련장에서 2024호국훈련 일환으로 열린 실사격 훈련에서 155mm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철원=연합뉴스
21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전쟁 이후의 한·러 관계와 더불어 러시아 체류 교민 안전 등을 고려해야 하는 현실에서 살상무기 제공을 포함한 공식적인 군사 지원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17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이 우크라이나에 인력을 파견해 지원하자고 제안하자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이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군대와 무기를 보낸다고 해서 우리가 그와 똑같은 행동으로 참전하는 일은 국가와 국민을 심각한 위협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반박한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군 총참모부가 12일 8개 포병여단에 완전사격 준비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하는 등 전방 지역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상황에 포탄이나 탄약을 대량으로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것에 대해 전투준비태세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와 관련,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국방부 청사에서 만나 북한이 도발할 수 없는 압도적인 한·미 연합방위태세 구축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긴밀한 공조를 계속 강화하기로 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비공식적 지원 방안의 가능성이 우선 대두하고 있다. 정보요원이나 민간인 신분인 예비역 군인을 파견하는 것이 거론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될 북한군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교신 과정에서 러시아어를 쓰도록 교육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급박한 전투 국면에선 본능적으로 북한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우리 측 요원이 북한군의 교신을 감청하거나 포로를 심문한 결과를 번역해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한다면 상당한 도움이 된다. 과거 한국광복군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임팔 전선에서 영국군을 도와 일본군 교신 내용을 감청하고 선전공작 등을 펼친 바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지원한 북한제 ‘불새-4’ 모습. 국가정보원 제공
우크라이나군과 정보기관에는 생소한 북한군 전술 등을 알려줄 수도 있다. 전쟁에 투입될 북한군은 러시아군 사단급 이상 부대에 중대·대대급 규모로 분산배치되거나 사·여단급 대규모 부대로서 특정 지역을 맡아 독자적인 작전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소대급부터 사단급에 이르는 북한 지상군의 전술은 한국이 오랫동안 추적·연구했던 분야다. 우크라이나군의 대응 작전에 충분히 자문해 줄 수 있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한국도 북한군 전투부대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공식 파견이 아니므로 정치적 부담도 상대적으로 작다.

민·군 겸용으로 사용이 가능한 장비나 물자를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은 전쟁 초기 전투식량과 방독면 등의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고, 지뢰탐지기를 비롯한 장비도 제공했다. 막대한 양의 드론이 소모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성을 감안, 군사용으로 쉽게 개조할 수 있는 민간 드론을 보내는 방안도 있다. 일반 민수용품 지원도 효과가 있다. 대규모 전쟁이 장기화하면, 우리가 흔히 쓰는 일반 공산품들은 전장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오프로드용 차량이나 픽업트럭은 러시아 드론을 요격하거나 화력지원용 다연장로켓의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고, 약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 붕대와 기초의약품은 다친 병사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중요하다. 등산이나 캠핑을 갈 때 취사용으로 쓰는 고체연료는 장병들이 참호에서도 쉽게 불을 피우고 조리를 할 수 있게 해준다. 곧 다가올 겨울을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국민이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난방유나 발전용 연료를 지원하는 것도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된다. 다만 이 같은 유·무형의 지원이 실현된다고 해도 한·러 관계 등을 고려해 공개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작다는 평가가 많다.

살상무기를 지원하게 된다면, 155㎜ 포탄을 미국을 통해 우회 지원하는 방식이 유효하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미 정부와 155㎜ 포탄 약 50만발을 대여 형식으로 제공한다는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국군심리전단은 이날 오전 전방 지역에 배치된 대북 확성기로 방송되는 ‘자유의 소리’를 통해 북한군 파병 소식을 북한 주민에게 전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자유의 소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7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북한군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는 현지 매체 보도를 방송했다. 러시아군이 북한군으로 구성된 3000명 규모 특별 대대를 편성 중이라는 보도도 전했다.

우크라이나 현지매체는 자국군 소식통 등을 인용, 러시아 본토에서 작전에 배치됐다가 근무지를 이탈한 북한군 장병 18명이 러시아 당국에 붙잡혀 구금됐다고 보도했다. 키이우인디펜던트와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 등은 북한군 40명과 러시아군 50명이 쿠르스크주 코무토프카 지역에서 전투 전술 등을 훈련하던 도중 식량 배급받지 못하고 며칠간 방치됐고, 그중 일부가 러시아군 지휘부를 찾기 위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전했다.

박수찬·박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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