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 사고 30주기 위령제

최정석 기자 2024. 10. 2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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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사고 30주기 합동 위령제가 21일 열렸다.

합동 위령제는 이날 이날 오전 11시쯤 강변북로에 있는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에서 진행됐다.

김 대표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이던 28살 막냇동생을 먼저 보냈다고 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지난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쯤 10번, 11번 교각이 무너지면서 차로 다리를 건너던 시민 등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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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교각 무너져 32명 숨지고 17명 다쳐
21일 오전 서울 성동구에 있는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추모 위령비에서 사고 희생자들 중 일부가 재학 중이던 무학여자고등학교의 학생회장이 추모사를 낭독 중이다. 이날 위령비가 있는 곳에서 성수대교 붕괴 사고 30주기 합동 위령제가 진행됐다. /최정석 기자

성수대교 붕괴 사고 30주기 합동 위령제가 21일 열렸다.

합동 위령제는 이날 이날 오전 11시쯤 강변북로에 있는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에서 진행됐다. 유가족들, 희생자 일부가 재학했던 무학여고의 교직원·학생대표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합동 위령제는 참석자들 묵념으로 시작했다. 유가족 대표인 김양수씨는 희생자 32명의 이름을 차례로 낭독한 뒤 성수대교 붕괴 사건 개요를 설명했다. 또 유가족 분향과 추모사 낭독 등이 이어졌다.

김 대표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이던 28살 막냇동생을 먼저 보냈다고 한다. 그는 “당시는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사고 소식을)삐삐로 연락받았는데 믿기지 않았다”며 “사고 다음 날인 22일 동생과 만나기로 약속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지난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쯤 10번, 11번 교각이 무너지면서 차로 다리를 건너던 시민 등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친 것이다. 사고 원인으로 성수대교 시공사인 동아건설의 부실공사, 서울시의 보수유지 미흡 등이 지목됐다.

이후 동아건설 관계자와 서울시 공무원 등 16명은 업무상 과실 치사상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97년 11월 대법원은 당시 동아건설 현장소장이던 신모씨에 금고 2년, 서울시 동부건설사업소장이던 여모씨에 금고 1년 6개월형을 각각 확정했다. 나머지 14명에 대해서는 1·2심대로 금고 1∼3년, 징역 10개월∼1년 6개월에 집행유예 1∼5년, 벌금 500만원 등이 각각 확정됐다.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진 강변북로 일대. /네이버 지도 캡처

한편 이날 합동 위령제에서는 위령비 위치에 대한 문제 지적도 나왔다. 추모공간과 위령비는 강변북로 도로 사이 화단 내에 설립됐다. 차량 없이는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다.

성동구청은 지난 8월 20일 서울시 측에 공문을 발송해 위령탑을 서울숲으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울숲에선 사고 발생지인 성수대교가 잘 보이지 않고, 위령탑을 서울숲으로 옮기면 산림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 등으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주경 한국시설안전협회 명예회장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역사가 기억해야 할 참사임에도,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는 위치가 애매하고 공간이 너무 좁다”며 “접근성이 높은 위치로 옮겨 더 많은 시민이 추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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