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속 땀까지 얼었다”···연휴 마지막날 덮친 한파

전지현·이유진 기자 2023. 1. 24. 16: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지역 체감온도가 영하 26도까지 떨어지는 등 올겨울 최강 한파가 닥친 24일 두꺼운 옷과 모자 장갑 등으로 몸을 감싼 시민들이 서울 세종로 일대를 지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서울 종로구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유모씨(31) 가족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4일 ‘최강 한파’를 실감했다. 보일러관이 동파해 아침부터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2014년 보일러실을 수리한 이후 9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연휴라 수리 기사를 부르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유씨 가족은 ‘보일러관 동파’를 인터넷에 검색했다. ‘동파된 곳 주변을 이불로 감싸 드라이기로 녹여라’는 조언에 따라 임시 조치를 취했다.

이날 서울의 체감온도는 영하 26도(실제 영하 17도)까지 떨어졌고, 전국에는 한파특보가 발효됐다. 동파 사고는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전국에서 계량기 동파 신고는 68건 들어왔다. 서울 44건, 경기 14건, 인천 6건, 울산·경북 각 2건이다.

설 연휴 마지막날 분위기도 움츠러들었다. 서울 신림동 빌라에 거주하는 A씨(28)는 동파 걱정에 계획보다 하루 일찍 귀성길에 올랐다. A씨는 “집이 낡아 보일러를 돌려놓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걱정이 됐다”고 했다. 이날까지 대체 휴일로 쉬는 직장인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그래도 쉬는 날이라 다행”이라며 “집 밖에 절대 나가지 않아야겠다”는 글을 올렸다. 직장인 김보영씨(32)는 “예매한 영화를 취소하고 집에 머물기로 했다”며 “(밖에) 잠깐 나갔다 들어온 동생이 ‘바깥이 냉동고보다 춥다’고 하더라. 내일 출근이 걱정”이라고 했다.

동파된 수도계량기 모습. 서울시 제공

매서운 추위에도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이들은 “올겨울 들어 제일 춥다”고 입을 모았다. 요구르트 전동카트를 운전하는 프레시매니저 임모씨(62)는 “날이 추워서 평소보다 2시간 늦은 오전 8시30분쯤 출근했다”고 말했다. 양 주머니의 핫팩을 꺼내 보인 그는 “오늘은 마스크 안에 맺힌 물방울이 볼과 같이 얼어붙을 것처럼 춥다”고 했다.

1톤 용달트럭을 운전하는 이모씨(57)는 평소보다 바삐 몸을 움직였다. 그는 “화물차는 경유차라 추운 날씨엔 유독 잘 안 나간다”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차에 시동을 걸고 예열을 했다. 그 동안 집에서 다시 씻고 나와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파 대비법을 묻자 이씨는 “옷을 따뜻하게 입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24일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 B씨가 장사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 B씨는 동파 방지를 위해 싱크대 물을 틀어뒀다. 전지현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 거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이날 낮 12시에 돌아보니 컵밥거리 23개 가게 중 문을 연 곳은 두 곳뿐이었다. 이곳에서 15년 넘게 장사해온 B씨는 “추워서 손님이 없을 걸 안다”면서도 “집에서 놀면 뭐하냐는 생각으로 장사를 나왔다”고 했다. 재료를 씻느라 손이 빨개진 B씨 뒤 싱크대에서 물이 실줄기처럼 흘렀다. 그는 “동파될까 물을 틀어놓는 것”이라며 “문을 닫은 가게들도 다 물은 틀어놓고 갔을 것”이라고 했다.

한파에 집에 머무는 이들이 늘면서 배달라이더들은 더 분주한 모습이었다. ‘배달의민족’ 등 일부 음식배달 플랫폼은 기온이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면 ‘기상 할증 수수료’ 1000원을 부과한다.

배달라이더 윤모씨(53)는 “배달 주문이 폭주 중”이라며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을 엄지로 두세번 내려도 주문 요청이 쌓여 있었다. 그는 “명절엔 사람들이 쉬니까 배달이 많이 들어온다”며 “라이더는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배달라이더들은 패딩과 검정 방한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일을 했다. 경력 5년차 전업 라이더인 이모씨(38)는 “오늘 같은 날씨는 장갑도 소용없다”며 “방한장비를 아무리 껴도 안 된다. 장갑을 끼면 그 속에서 땀이 나는데 이내 그 땀까지 얼어버린다”고 했다. 그는 “추워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일을) 해야지”라며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