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의 퇴직연금 되살리기]
대한민국 퇴직연금 제도는 근로자의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핵심적인 사회 안전망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 준비를 위한 실질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로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이 글과 앞으로 3편 정도의 글들은 법안발의 과정에 참여하였던 필자가 법안의 주요 내용과 그 논점들에 대하여 다루는 것이다.
현행 퇴직연금 제도의 한계와 법안 개혁 방향
현재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제도는 '계약형' 구조를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다. 사용자(회사)와 가입자(근로자)가 퇴직연금사업자(금융회사)와 계약하여 직접 퇴직연금 상품을 선택하는 방식이라 ‘계약형’ 구조라 한다.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는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원리금보장’상품과 ‘원리금비보장’상품 중 선택하도록 한다. 용어가 주는 안전함으로 인하여 가입자가 안전한 ‘원리금보장’ 상품을 선택하면 결과는 노후 빈곤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택의 함정’이라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원리금보장 상품을 선택하는 비율이 89%에 가까워서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10년 수익률은 2.31%로 매우 낮다.
법안은 ‘선택의 함정’에 빠지는 비율이 줄어들도록 ‘기금형’ 구조의 퇴직연금 제도를 확대하여 시행한다. 사용자와 가입자가 직접 퇴직연금 상품을 선택하는 <계약형 구조>와 퇴직연금사업자가 책임지고 대규모 기금을 조성하여 전문가에게 운용을 맡기는 <기금형 구조> 중 하나를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그 선택의 폭과 권한을 넓혔다.

퇴직연금 개혁 법안의 주요 내용
1. 가입자의 선택권 확대
‘기금형’ 퇴직연금은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미국, 호주, 일본,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도입하고 있는 제도이며, 우리나라도 30인 이하 기업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이 조성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에 적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 법안은 기존 법안의 ‘근로복지공단(공단)’만 아니라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도 기금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하고, 30인 이하 중소기업 제한을 풀어, 모든 기업과 근로자가 기금 구조의 퇴직연금에 적립할 수 있도록 확대하였다. 기업과 가입자는 직접 투자 상품을 선택하는 ‘계약형’ 방식과 전문가가 통합하여 운용하는 ‘기금형’ 방식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해 퇴직연금을 적립할 수 있게 되어 그 선택권이 확대된 것이다.
2. 민간 퇴직연금사업자에게도 기금 조성 허용
법안은 공적기관인 근로복지공단에게만 허용되었던 ‘기금형’ 퇴직연금을, 요건을 충족한 민간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에게도 허용한다.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논쟁이 되었던 공적기관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퇴직연금 시장참여를 허용하는 법안과는 방향성이 다르고, 기업과 근로자 대표와 합의하여 ‘기금수탁법인’을 만드는 ‘기업형’ 기금 법안과도 방향성이 다르다.
법안은 공적기관은 기존 법안의 근로복지공단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민간 퇴직연금사업자에게 기금의 조성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발의되었다.
첫째 '복수의 민간 퇴직연금사업자의 기금 간 수익률 및 수수료 경쟁을 촉진'하여 퇴직연금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둘째 금융기관인 퇴직연금사업자의 신뢰성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퇴직연금 시장을 활성화하고,
셋째 기존 퇴직연금사업자의 인적, 물적, 전산 인프라를 충분하게 활용하여 제도의 가용성을 높이고,
마지막으로 금융권의 시장잠식 우려를 반영하여 제도의 조기 정착되도록 발의된 것이다.
기업이 ‘기금수탁법인’을 만들어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의 경우 지난 수년간 여러 번 법안으로 발의된 바 있다. 그동안 ‘기금수탁법인’을 만드는 법안은 다음과 같은 여러 문제점이 지적된 바 있다.
첫째 기금이 기업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어려워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금이 운용되면 극단적인 경우 기금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사회적인 이슈로 연결될 수 있다.
둘째 가입자인 근로자는 기금의 성과 등과 관계없이 자신이 근무하는 기업이 조성한 기금에만 적립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의 연금 선택권이 제한되는 것이다.
세 번째 기금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성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개별 단위의 기업이나 복수 기업연합을 통하여 조성된 규모로는 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는 결국 기금의 소멸과 통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호주 또는 일본 등에서 유사한 형태로 기업이 ‘기금수탁법인’을 만드는 기금 구조는 상당수가 소멸되거나 통합되는 실증적인 사례가 있어 이를 벤치마크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법안은 공적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기금의 안정성 및 높은 수익률이라는 장점을 부각시키고 메기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면서도, 민간 금융기관인 퇴직연금사업자가 기금에 참여하여 수익률 및 수수료 경쟁을 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퇴직연금 성과를 높이고(높은 수익률과 낮은 위험) 연금 시장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현실에 기반 한 정책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3. 전문운용사를 통한 기금운용의 독립
법안은 기금 운용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은 '퇴직연금기금전문운용사'가 기금을 운용하도록 한다. 기금을 ‘조성하고 운영’하는 주체인 퇴직연금사업자와 기금을 ‘운용’하는 주체를 분리하는 것이다.
기금의 운용주체를 분리하는 이유는 첫째, 전문적인 기금 운용을 통한 양호한 성과가 실현되도록 한 것이다. 기금의 운용은 일반적인 자산운용과도 다른 전문적 영역이다. 목표수익률을 정하고 그 수익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안전하게 운용하여야 한다. 반드시 운용의 독립성이 유지되어야한다.
둘째, 원칙에 따라 기금이 운용될 경우에 기금은 의도한 성과를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적인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이에 기금에 대한 인가절차와 함께 지속적인 규제 및 감독이 유지되어야 한다. 자본시장법의 따른 자산운용사가 고용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기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한 이유이다.
법안의 개혁 목표와 효과
안도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현행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적 개혁을 목표로 한다. 주요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여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둘째, 기존 계약형 방식과 기금형 제도 중 선택할 수 있도록 가입자 선택권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셋째, 퇴직연금 자산이 기업, 사회기반시설 등 생산적 분야에 투자되어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법안은 30인 이하 기업에 한정하여 허용되었던 퇴직연금 기금형인 근로복지공단의 '푸른씨앗' 제도를 확장하여, 민간 퇴직연금사업자도 기금을 조성하여 모든 기업과 근로자가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지난 2022년 9월 도입되어 3년 누적 수익률이 20%를 돌파하고 올해 상반기 수익률 또한 7.46%를 기록한 ‘푸른씨앗’은 기금형 구조가 계약형의 구조의 낮은 수익률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익률이 낮은 것은 원리금보장형 선호' 때문이며, 이는 가입자의 자유로운 선택 때문이라는 퇴직연금시장의 오래된 주장에 대하여, 계약형 구조 퇴직연금만 선택하도록 한 ‘선택의 함정’으로 인해 수익률이 낮은 것이며, 이는 먼저 시행되어 실증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구조를 모든 ‘퇴직연금기금’ 구조로 확장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 이번 법안이 발의된 이유이다.
기금형 구조의 퇴직연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개정을 통한 가입자의 선택권 확대는 퇴직연금 자금이 생산적 투자로 연결되도록 하여 국가를 발전시키고, 수익률 제고로 연결되어 국민의 노후 발전에 시금석이 될 것이다.
※ 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는 자산운용회사와 증권회사가 합쳐진 투자신탁회사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해 자산운용시장의 영업, 제도, 상품 등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했다. 2000년 (주)제로인에서 펀드평가시장 개척에 나서 펀드와 펀드매니저, 자산운용사를 평가했고, 연기금 등 투자자에게 성과평가 및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제공했다. 2016년에는 KG제로인 대표이사를 지냈고, 올해 한국연금평가를 법인을 설립하고 연금평가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