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의 마지막 왕조, 현대 유니콘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프로야구(KBO)를 호령했던 절대 강자가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올드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팀, 바로 현대 유니콘스입니다. 1996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며 창단한 현대는 2007년 해체되기까지 단 1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무려 네 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며 ‘현대 왕조’를 구축했습니다. 막강한 자금력과 체계적인 선수 관리, 그리고 김재박 감독의 지략이 어우러져 KBO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팀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왕조의 역사 속에는 유독 흥미롭고도 가슴 찡한 이야기가 하나 숨어있습니다. 바로 팀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던 두 명의 동명이인, 전준호의 이야기입니다.
늦깎이 거인의 등장과 왕조의 서막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당시 한국 경제를 대표하던 6개 그룹이 구단을 창단하며 리그의 막을 올렸습니다. OB, MBC, 해태, 롯데, 삼미, 그리고 삼성. 그런데 의아하게도 삼성의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현대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겸임하며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프로야구 출범에 참여하지 못했던 현대는 14년이 지난 1996년, 마침내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며 KBO 리그에 야심 차게 닻을 올렸습니다.
‘현대호’의 선장은 ‘그라운드의 여우’라 불리던 김재박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1시즌 동안 팀을 이끌며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총 네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박재홍, 박진만, 박경완, 정민태, 임선동 등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했던 현대는 투타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상대 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현대가 리그를 지배했던 12년 동안, 라이벌 삼성 라이온즈가 단 한 번(2002년) 우승에 그쳤다는 사실은 당시 현대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증명합니다.
한 팀, 두 명의 전준호 이야기
현대 왕조의 빛나는 역사 속에서 팬들의 기억에 가장 특별하게 남은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전준호’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드라마였습니다. 현대 유니콘스에는 놀랍게도 투수 전준호와 타자 전준호, 두 명의 선수가 함께 활약했습니다. ‘투수 전준호가 호투로 승리투수가 되고, 타자 전준호가 짜릿한 결승타를 친다’는 식의 진기한 장면은 현대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마운드의 든든한 허리, 투수 전준호 (全俊鎬)

투수 전준호는 1975년생으로, 인천 동산고를 졸업하고 1994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한 우완 정통파 투수였습니다. 그는 현대 유니콘스가 창단한 1996년부터 마지막 시즌인 2007년까지, 팀의 처음과 끝을 모두 함께한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통산 339경기에 등판해 55승 47패 7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4.50을 기록하며 팀 마운드에 힘을 보탰습니다. 특히 왕조의 일원으로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팀의 네 차례 우승에 모두 기여했습니다.
그라운드를 훔친 대도, 야수 전준호 (田埈昊)
또 다른 전준호는 ‘대도 루팡’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던 외야수 전준호입니다. 1969년생인 그는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데뷔한 KBO의 레전드 중 한 명입니다. 빠른 발과 탁월한 주루 센스를 바탕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었던 그는 1997년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하며 왕조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었습니다. 그는 통산 549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이 부문 역대 1위에 올라있으며, 2091경기에 출전해 2018안타, 타율 0.291의 위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의 출루는 곧 득점 공식이었고, 상대 배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그의 존재감은 현대의 공격력을 한 차원 높였습니다.
같지만 달랐던 두 선수

한글 이름은 같았지만, 두 선수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투수 전준호는 1975년생, 야수 전준호는 1969년생으로 여섯 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고, 출신 학교도 달랐습니다. 결정적으로 한자 이름이 투수는 전준호(全俊鎬), 야수는 전준호(田埈昊)로 달랐습니다. 하지만 전광판에 ‘전준호’라는 이름이 뜰 때마다 팬들은 희망을 품었고, 두 선수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왕조의 몰락과 영원한 기억
영원할 것 같았던 현대 왕조도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인해 2007 시즌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팀이 해체된 후, 야수 전준호는 현장 코치와 방송 해설가로 활동하며 제2의 야구 인생을 이어갔고, 투수 전준호는 SK 와이번스를 거쳐 은퇴했습니다. 그렇게 팬들의 기억 속에서 현대 유니콘스와 두 명의 전준호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잡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투수 전준호는 2022년 1월, 향년 51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많은 야구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비보는 팬들에게 현대 왕조 시절의 영광과 함께, 마운드 위에서 묵묵히 공을 던지던 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는 비록 1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존재했지만, 그들이 남긴 강렬한 족적은 KBO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찬란했던 역사 중심에는 한 이름으로 뭉쳐 왕조를 이끌었던 두 명의 전설, 투수 전준호와 야수 전준호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한국 프로야구의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기억될 것입니다.
Copyright © 저작권법에 의해 허락 없이 무단 복제, 배포, 전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