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수록 가족이나 지인에게서 고집이 세졌다는 말을 듣는 일이 잦아진다. 자기 생각을 조금만 분명하게 말해도 옛날 사람 같다는 반응이 돌아오고, 의견을 굽히지 않으면 말이 안 통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입을 열 때마다 분위기가 묘하게 굳는다.

젊을 때는 직장에서 상사 눈치를 보고, 집에서는 가족 사정에 맞추며 누구보다 고분고분하게 살아왔다. 그렇게 평생 남에게 맞춰온 사람이 왜 이제 와서 고집 센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걸까.

1. 내 방식이 맞다는 걸 경험으로 알아서
오래 살아온 사람은 많은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어봤다. 어떤 방식이 실패하는지, 어떤 선택이 나중에 탈이 나는지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권유받아도 예전에 비슷한 걸 시도했다가 낭패를 본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문제는 경험에서 나온 판단은 빠른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말은 따라오지 못한다는 데 있다. 머릿속에는 수십 년치 근거가 쌓여 있지만, 입에서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한마디만 나온다. 이유가 빠진 결론은 듣는 사람에게 고집으로 들리기 쉽다. 판단 뒤에 이유 한 줄만 붙여도 같은 말이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2. 익숙한 것까지 잃고 싶지 않아서
60대를 지나면 일터를 떠나고, 자식들은 각자 가정을 꾸려 독립하고,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이 한꺼번에 바뀐다. 그 와중에 오래 써온 물건, 늘 다니던 길, 매일 반복하는 하루의 순서 같은 것들은 쉽게 바꾸려 하지 않게 된다.
이미 많은 걸 떠나보낸 상태에서 손에 익은 것들까지 내주고 나면 내가 누구인지조차 흐려질 것 같은 불안이 든다. 주변에서 보기엔 별것 아닌 습관 하나를 고집하는 것 같아도, 본인에게는 흔들리는 일상을 붙잡아주는 마지막 손잡이에 가깝다. 고집처럼 보이는 행동 밑에는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깔려 있다.

3. 내 일은 내가 정하고 싶어서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서 대신 결정해주려는 일이 늘어난다. 운전을 그만하라는 말, 사는 곳을 옮기라는 말, 이렇게 하는 게 편하다는 권유가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진다. 다 염려해서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그런 말을 들을수록 마음은 오히려 단단하게 굳는다.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일이 하나씩 줄어드는 시기에는 남아 있는 선택만큼은 내 손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누군가 그 선택을 대신하려 들면 괜히 반대로 가서라도 지키고 싶어진다. 같은 이야기라도 정해주는 말이 아니라 결정을 맡기는 말로 들으면, 생각보다 쉽게 마음이 움직인다.

고집이 세졌다는 건 사람이 굳어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평생 남의 뜻에 맞춰온 사람이 이제야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뜻에 가깝다. 그 목소리가 고집으로만 들리지 않으려면 결론보다 이유를 먼저 꺼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유를 말할 줄 아는 어른 앞에서는 누구도 쉽게 고집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