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고려대의 핵심 양준의 각오, “전력 저하? 평가를 뒤집을 수 있다”

※ 본 인터뷰는 3월 22에 진행했으며,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4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고려대는 지난 2년간 대학리그 최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상황은 다소 다르다. 에이스인 문정현은 남아있지만, 주축 선수들이 대거 떠났기 때문. 그래서 양준의 활약은 더 중요해졌다. 양준은 “밖에서는 우리가 약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팀은 충분히 그런 상황을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팀이다. 그러기 위해서,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팀의 목표는 언제나처럼 우승이다”라는 각오를 남겼다. 고려대는 양준의 말처럼 대학리그 3연패라는 대업을 이룰 수 있을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농구
양준은 중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중학교 3학년 때 양준의 키는 197cm이었다. 그렇기에 구력은 짧아도 팀에서 중용 받을 수 있었다. 당시를 회상한 양준은 “농구공 자체를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졌다. 원래는 친구들이 동아리 농구부를 하자고 해서 같이 갔다. 농구를 접한 처음부터 농구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1달 정도 동아리 농구를 하고 바로 엘리트 농구의 길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이어, “정말 짧게 농구를 했지만, 농구가 너무 좋았다. 그냥 농구 자체가 좋았다. 드리블도 좋고 슛도 좋고 리바운드도 좋았다”라며 농구를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그리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주변에서 너무 늦게 시작한다고 이야기해주셨다. 특히 당시 중학교 선생님께서 반대하셨다. 하지만 그러한 반대 의견을 뒤집고 싶었다. 나에겐 동기부여가 됐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한 것 같다”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너무 힘들었어요”
호기롭게 엘리트 농구를 시작했지만,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동아리와 다르게 엘리트 농구는 1주일에 매일 연습했다. 키는 컸지만, 기본기가 없었고 체력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양준은 기본기와 체력에 더 집중했다. “사실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 산도 뛰고 맨날 체력 훈련을 했다. 정말로 토할 때까지 뛰었다. 하지만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안 했다. 그래도 농구하는 것이 즐거웠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계속해 “그러다가 첫 대회부터 기회를 받았다. 그때는 정말 키만 컸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중학교 3학년이라는 이유로 많은 기회를 받았다. 정작 중요할 때는 다른 선수가 뛰었다. 그리고 너무 긴장해서 평소보다 더 못했다. 긴장한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힘들었다”라며 첫 대회 당시 심정을 말했다.
그 후, “그래도 1년 정도 운동을 하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전주고로 입학하다
전주남중을 졸업한 양준은 자연스럽게 전주고로 진학했다. 하지만 중학교 농구와 고등학교 농구는 또 달랐다. 양준은 “중학교 농구가 적응될 때쯤 고등학교로 갔다. (웃음) 중학교 때도 못 했는데 고등학교는 더 힘들고 더 어려웠다. 적응도 못 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며 고등학교 입학 당시 어려움을 전했다.
이후 양준에게 어떤 것이 어려웠냐 묻자 “고등학교는 사소한 것들부터 달랐다. 코치님께서 박스아웃, 골밑슛 등 기본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그런 것을 지적하시니 맨탈이 무너졌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당시 200cm가 넘는 양준은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다. 이에 양준은 “첫 대회부터 주전은 아니었지만, 식스맨 역할은 맡았다. 당시 힘은 많이 밀렸지만, 달리기는 자신 있었고 코치님께서도 기동력을 많이 강조하셨다”라며 본인이 맡았던 역할을 설명했다.
우승을 차지하다
양준에게 중학교 생활을 묻자 “1학년 때 3학년에 잘하는 형들이 있었다. 그래서 형들과 함께 뛰면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정말 재밌었다. 그때는 우승도 처음 해보고 종별대회와 전국체전에서는 준우승도 기록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도 준우승은 해봤지만, 우승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농구를 잘 못해서 ‘이렇게 좋은 성적을 받아도 되나?’싶었다. (웃음) 실감이 안 났다”라고 덧붙였다.
또, 양준에게 우승 당시 본인의 활약을 묻자 “결승에서 홍대부고를 만났다. 그때 나는 3쿼터에 들어갔는데 의도치 않게 내 쪽으로 볼이 많이 왔다. 그래서 생각 없이 피벗을 통해 골밑 득점을 올렸는데 팀 분위기가 올라갔다. 이후에도 그걸 몇 번 하닌깐 팀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후 자신감이 확실히 올라왔다”라고 답했다.
성장의 기회가 된 고교 시절
양준이 1학년 때 전주고는 매 대회에서 입상하며 강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3학년들이 졸업하면서 전주고의 전력은 약해졌다. 반대로, 양준은 더 많은 기회를 받게 됐다. 이에 양준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장 많이 성장한 것 같다. 팀 성적은 1학년 때만 못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은 기회를 받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며 팀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3학년 때는 정말 재밌게 농구했다. 그때가 제일 재밌었던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시합이 많이 없었다. 그게 너무 아쉽다. 시합이 1개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라며 아쉬움도 함께 전했다.
고려대로 진학한 양준
전주고를 졸업한 양준은 고려대로 진학했다. 그 이유를 묻자 “잘하는 형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시합의 기회가 적어도 벤치에 앉아서 보면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어려움도 있었다. 양준은 “대학교 농구는 성인 농구다. 고등학교랑 완전히 달랐다. 관중도 있고 팀 움직임도 더 어려웠다. 그리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신경 써야 했다. 그래서 더 예민해졌고 긴장도 많이 했다. 손도 많이 떨렸다”며 대학교 1학년 생활을 돌아봤다.
대학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고려대
양준의 입학과 동시에 고려대는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양준은 당시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다. 당시를 회상한 양준은 “첫 경기 이후 기회를 많이 못 받았다. 그러면서 벤치에서 경기를 많이 봤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벤치에 앉아서 보니깐 느끼고 볼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았다. 비록 코트 경험은 적었지만, 밖에서 많이 배웠다”라고 말했다.
양준이 2학년 때도 고려대는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양준은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다. 2학년 시절을 돌아본 양준은 “작년에도 기회는 받았다. 하지만 감독님께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형들이 드래프트로 나가면서부터 기회를 받았다”라고 이야기했다.
고려대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양준
작년에 최고의 모습을 선보인 고려대였지만, 선수들이 프로에 나가면서 전력 저하를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양준의 활약은 더 중요해졌다.
양준에게 동계 훈련에 대해 묻자 “포스트 움직임에 신경을 많이 섰다. 김태홍 코치님과 다른 선수들과 1대1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러면서 리바운드를 강하게 잡는 연습도 했다. 이제는 내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기대도 있지만, 부담도 커졌다. 3학년인데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마음도 있다. 이제 경기를 더 많이 뛰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불안했다”라며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또한, “밖에서는 우리가 약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팀은 충분히 그런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팀의 목표는 언제나처럼 우승이다”라는 각오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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