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브란트스마 “동조와 방관 속에 ‘우리 vs 그들’ 사고가 극화 초래” [김용출의 한권의책]

김용출 2024. 10. 1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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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 전야에 독일 서부 도시 쾰른에서 약 1000여 명의 난민 신청자들이 여성을 비롯해 행인 등을 대상으로 성폭력이나 강도,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특히 이들 가운데 일부는 새해 축제를 즐기러 나온 젊은 여성들에게 수십 차례 성폭력을 가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01년 9·11테러 장면.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건의 파문이 확산하면서 기존 ‘독일인 vs 난민’이라는 이념적 양극화는 짧은 시간 안에 ‘남녀평등을 존중하는 교양 있는 독일인 vs 여성을 종속하는 이슬람의 구시대적 발상을 지닌 미개한 난민’이라는 개념으로 확산했다. ‘우리 vs 그들’이라는 양극화 구도가 급격히 심화한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양극화가 심화하기도 한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장기간 개신교와 가톨릭교도간 갈등과 대립, 전쟁이 있었다. 벨파스트에 사는 시민 대부분은 가톨릭이냐 개신교를 놓고 선을 긋는 식으로 분쟁에 연루돼 왔다. 이들은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저 사람들은 문제가 있어!”

세계가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주의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주장과 주장이 부딪치고 갈등은 증폭돼, 진영 간 혐오와 불신, 갈등이 끝없이 커져간다. 중간 자리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이슬람 vs 비이슬람, 중동의 아랍 vs 유대인들, 남아프리카의 흑인 vs 백인, 미국의 민주당 vs 공화당....

우리는 왜 양극단에 서게 되고, 그것은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면서 양극화 대응 전략을 테스트하고 양극화 사고 프레임워크를 개발해온 네덜란드의 철학자이자 컨설턴트인 저자는 신간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안은주 옮김, 한스미디어)에서 양극화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구조 분석과 함께, 심화하는 양극화 속에서 중도를 지킬 수 있는 전략과 방법을 제시한다.

사전적으로 양극화는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정치이념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양극화를 가리키기도 한다. 보통 갈등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양극화와 갈등은 분명히 다르다고 저자는 구분한다.

책에 따르면, 양극화는 사람들의 ‘사고 구조’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양극화 지속을 위해선 ‘연료’가 필요하며, 본능에 따른 ‘직감의 역학’이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양극화는 무엇보다도 ‘우리 vs ’이라는 사고구조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맨 먼저 ‘사고 구조’가 양극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여기에서 ‘우리 vs 그들’이라는 생각이 포함된다. 사고 구조 자체가 ‘우리 편과 그들 편’을 나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양극화는 언어나 인식, 생각에 관한 것이다. 이 모두가 물리적 갈등과는 매우 다르다.”(28쪽)

양극화는 “오랫동안 방치할 수 없는 모닥불” 같아서 계속해서 “장작” “연료”를 넣어주어야 한다. 연료 공급이 중단되면 양극화는 무너진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론, “그들은 그런 사람”이라는 식으로 상대 진영에 대한 정체성 발언이 양극화의 연료로 주로 사용된다. 아울러 양극화는 하나부터 열까지 직감의 역학이 작동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를 들면, 9.11테러 당시 미국이 가상의 적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자국민을 희생시켰다는 음모론이 횡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양극화는 논리에 의한 호소인 ‘로고스’보다는 감정에 의한 호소인 ‘파토스’가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직감은 변덕이 심하고 그 자체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직감에 대해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적 아니면 친구라는 관점은 고집이 세다. 그래서 증거가 확실해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42쪽)

양극화에는 극단을 설파하고 강조하는 ‘주동자’, 이들의 주장에 다양한 방식으로 동조하는 ‘동조자’, 양극화 현상에 무관심한 ‘방관자’, 양극화 현상에 의해 피해를 입는 ‘희생자’, 그리고 중간 지대에 위치하면서 중재를 시도하는 ‘중재자’라는 5가지 역할그룹이 있다고 구분한다.

2017년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발생한 테러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양극화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한 뒤, “갈등은 양극화를 촉진하고 양극화는 갈등을 강화한다”며 갈등이야말로 “양극화의 동생”이라고 분석한다. 즉, 수면 위에서는 갈등 현상이 벌어지거나 퇴조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수면 아래에선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갈등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좋은 타이밍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갈등 과정에서는 언제 대화를 시작하면 좋을지 적절한 순간을 알아야 한다.”(128쪽)

저자는 양극화에 맞서 사회적 결속과 대화를 위해서는 이처럼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주동자가 아닌 중간 방관자 그룹으로 목표 설정,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주제 설정, 중립적인 위치 설정, 상대방을 존중하고 진심어린 어조라는 4가지를 통해서 판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간 지대에서 양극화가 발생한다면 양극화를 벗어나는 것도 똑같이 중간 지대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양극화를 방지하려면 중간층에 세심하게 접급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양극단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점을 다른 대상으로 전환하라. 당신의 투자 지역은 중간 지대다. 이는 판도를 바꾸는 4요소 가운데 첫 요소다.”(149쪽)

책의 제1부는 양극화가 보여주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2부는 양극화가 갈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며, 3부에선 양극화에 대한 전략적 해결책과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특히 중도에서 버티기 전략을 상세히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문은 저널리즘의 책임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저널리즘은 관성적인 양비론이나 양 극단만 부각하거나 가해자 대 피해자 맥락만을 제시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 양극화에 쉽게 가담하고 쉽게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며 주동자의 틀에서 벗어나는 새 저널리즘을 진화해야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은 모든 사람을 상반된 극(가해자 대 피해자)으로 여기며, 인터뷰 대상 모두를 이 역할에 끼워 넣는다... 전통적 저널리즘은 이런 역할에 갇힌 채, 가해자 대 피해자의 맥락만을 제시한다. 그들은 정체성 즉,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 꼬리표를 붙여 절망적인 양극화를 조장함으로써 이를 더욱 심화시킨다. 마치 세상에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다는 식이다. 양극단만 존재하는 것이다.”(212쪽)

요컨대, 실용적 실무적 성격의 책은 결국 긴장이 형성되는 우파와 좌파라는 극단적 입장 사이에서 존재하는 중립적 입장을 잘 활용하도록 도전장을 던진다. ‘우리 vs 그들’이라는 사고방식과 직면했을 때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 우리는 도대체 왜 중도를 지켜야 하는 것일까.

“중간 지점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검은색과 흰색 사이에서 회색 영역이 더 나아서만은 아니다. 그저 양극단의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 지점으로 인해 사회가 통합되고 문명적으로 공존할 기회가 생겨서다.”(11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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