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 그림자' 드리운 연금 수책위…"전문성 강화" 주장 맹점은?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2023. 3. 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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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운용위서 가입자단체 몫 줄이고 전문가단체 3명 추천받기로
복지부, 변경안 의결前 관련단체에 추천 요청 등 '사전작업' 논란
수책위 전문위원 "삼성 불법합병 당시 얻은 '독립성' 교훈 어디 있나"
"스튜어드코드십 도입後 대표소송 전무…손해보전 시도 없어" 지적
연금특위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 및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훈식·신현영·최혜영 의원 등,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13일 주최한 국회 토론회. 이은지 기자


글로벌 경기 악화 등으로 국민연금 기금이 지난해 역대 최저 수익률(-8.22%)을 기록한 가운데 정부는 운용 개선의 초점을 '수익률 제고'에 두는 모양새다. 특히 주주권 행사의 방향성을 주도하는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에서 가입자단체(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의 몫을 줄이고 전문가단체 추천 인사를 세우기로 하면서, 정부 입김이 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전문성 강화'를 기금 운용의 최우선 과제이자 수책위 구성 변경의 명목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시민사회계는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서 '득(得)'보다 '실(失)'이 더 많은 결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책위의 생명인 '독립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민주노총·한국노총 등 3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1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윤석열 정부 기금개악 현황과 문제점' 긴급토론회를 열고 이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이 자리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훈식·김민석·남인순·최종윤·최혜영 의원 등이 공동주최했다.

수책위 위원장을 지냈고 이번에 근로자단체의 추천을 받아 수책위 상근 전문위원을 연임하게 된 원종현 박사는 발제자로 나서 국민연금의 수익률의 작년 수익률을 들어 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다수 대두되고 있지만, 일부 오해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원 박사는 "정치적 해석을 걷어내고 나면 국민연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법에 명시돼있듯 연금 급여를 실시해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며 "기금 운용방향에 있어서는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국민연금법 제102조)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간의 아이러니는, 국민연금이 재작년까지 좋은 수익률을 냈을 때는 언론 등 많은 분들이 '장기재정 안정은 위험하다'는 식으로 비판하다가, 최근에는 연기금 수익률이 엉망이란 식으로 주장한다는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기금"이라고 반박했다.

수책위 전문위원인 원종현 박사 발제문 중 일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제공


원 박사는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적립금이 약 890조 규모라고 짚었다. 또 "기금 조성 이후 총 보험료로 거둬들인 돈은 1100조 정도 되고 이미 200조 정도는 연금 급여로 지급됐다. 남아있는 890조 중 거의 절반 정도인 451조 원은 기금 운용으로 나온 것(재정)"이며 "만약 기금 운용을 (제대로) 안하고 조성한 데서만 지출됐었다면 부족했을 부분을 많이 메꿔왔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민연금 기금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낸 것은 2008년(-0.2%)과 2018년(-0.9%), 지난해 등 총 3차례뿐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원 박사는 "혼자만의 느낌일지 모르지만 이번에 마이너스가 난 연금 수익률이 '지배구조를 빨리 바꿔야 한다'는 거센 목소리를 이끌어내려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원 박사는 '운용 전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배구조 문제'라고 봤다. 이번에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수익률 역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위험자산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이유가 크다는 것이다.

그간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들이 기금 운용에 관여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수책위 외 기금운용위에 들어가 있는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 등 모두 "감히 자부하지만, 연금·금융 관련 최고의 전문가들이었고, (이들이 운용) 전문성을 함께 높여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종현 박사 발제문 중 일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제공


그보다는 올해 첫 기금운용위에서 수책위 추천권을 변경한 결정이 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앞서 지난 7일 열린 제1차 기금운용위는 상근 3명, 비상근 위원 6명 등 9명 전원을 가입자 단체가 추천하게 한 운영 규정을 바꿔 비상근 3명을 전문가 단체로부터 추천받도록 했다.

연기금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거나 기금 운용 관련 안건을 검토·심의해야 하는 위원회인 만큼 '더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현재 수책위 구성이 법률가, 회계사 등 특정 분야에 쏠려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기금운용위는 한국금융연구원, 한국증권학회, 한국경영학회, 금융투자협회, 한국연금학회, 한국ESG학회 등 전문가단체가 추천한 비상근 위원 3명을 위촉하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이같은 안건이 기금운용위에서 결정되기 약 2주 전인 지난달 23일 전문가 단체들에 수책위 위원 추천을 요청하는 문서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기금운용위에 오르는 안건을 미리 논의하는 실무평가위원회에서도 수책위 구성 변경안은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기금운용위 당일 회의에서는 가입자단체 추천을 받은 위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등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원 박사는 앞서 박근혜 정부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정경유착'을 막으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수책위의 독립성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탁자 책임 의결권 행사 등 기업 관련 정책에서 정부의 입김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게 (그 사태의) 가장 뼈저린 교훈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수책위는 다른 위원회와 달리 기금운용위원들조차 참석 못하게 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간 다수결이 됐든 합의가 됐든 큰 소음이 없었던 (수책위) 의결의 독립성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까가 앞으로 제일 큰 과제가 될 것"이라며 "기금 운용에서는 수익성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가입자의 안정적 노후연금 지급에 우리 기금이 얼마나 부합해 활동하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탁자책임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상훈 변호사도 "만약 (정부 말처럼) 정말로 전문성 강화가 주목적이라면 추천권은 그대로 두고 추천위원의 자격요건만 변경하면 된다"며 "이를테면 '가입자단체가 추천한 관계전문가 중 2명은 자산운용, ESG 책임투자분야 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하고 있거나 종사했던 사람' 같은 식"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 2019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재선임 안건 등을 꼽으며 "수책위에서 민감한 사안은 한두 명 차이로 (결론이) 바뀌게 된다. 방점은 전문성이 아니라 추천권"이라며 "수책위에 필요한 건 전문성이 아니라 기업의 투명 경영과 상생 의지 등 꾸준한 방향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정부, 재계의 입맛에 맞게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라고도 해석했다.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인 노종화 변호사 또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은 후진적 거버넌스"라며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문제도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 변호사는 "정당한 스튜어드십코드 이행이야말로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은 대표소송을 제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가입자로서 분노해야 하는 지점"이라며 "큰 손해를 입었는데 보전 시도를 전혀 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공무원연금 투자회사인 APG의 경우 "작년 초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직후 HDC현대산업개발 측에 '지속가능경영, 안전 경영 등에 관한 회사의무를 명문화하는 전문 신설' 등을 정관에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며 참고 모델로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검찰 출신 인사'로 논란이 된 한석훈 변호사(국민연금 상근 전문위원) 등을 두고는 "국민연금이 관치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며 정부가 정치적 논란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복지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최혜영 의원 대표발의로 수책위 구성에서 정부의 개입을 막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기금 개입 방지법'을 발의했다. 시행령과 운영 규정에 바탕을 둔 위원 구성의 법적 근거를 국민연금법에 명시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위원 자격은 '금융·경제·자산운용 또는 연금제도 분야 5년 이상 종사자'로 제한하는 법안이다.

발의안에서는 수책위 위원 9명을 모두 가입자 단체가 추천토록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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