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초딩’이라 부를 때 우리가 잃어가는 것 - 김성미(김해 월산초등학교 교장)

knnews 2026. 5. 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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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완전 초딩 입맛이네."

'초딩 같다'는 말이 곧 '나 같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비슷한 말을 자신도 모르게 꺼내는 것도 어쩌면 그 기억의 흔적일지 모른다.

'초딩'이라 부를 때 단순히 언어 감수성만 잃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존엄도 함께 훼손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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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완전 초딩 입맛이네.”

무언가 건강하지 않은 식사 메뉴나 반찬을 고를 때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초딩 입맛, 초딩 수준, 초딩 같다는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인다. 여기에 더해 주식 초보를 ‘주린이’, 요리 초보를 ‘요린이’, 골프 초보를 ‘골린이’라 부른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초딩’이라는 말이 낮춤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잘 모르거나 서툰 상태를 표현하는 데 굳이 어린이를 끌어다 쓰는 것이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어떤 말을 반복하다 보면 그 말에 담긴 인식이 조금씩 스며든다. ‘초딩스럽다’는 말 속에는 초등학생이 미숙하고 유치하며 부족한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주린이, 요린이처럼 어린이를 미숙함의 상징으로 쓰는 표현들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라는 존재 자체를 아직 덜 된 상태로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는 결코 미완성된 어른이 아니다. 어린이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왕성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배우고, 어른이 잃어버린 감수성으로 세상을 느끼며, 아직 굳어지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다.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만든 것은 아이를 어른의 소유물이나 부속품으로 보던 시대에 맞서,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선언하기 위해서였다. 그 정신이 백 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지 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말의 온도를 더 섬세하게 느끼고, 어른들이 일상에서 습관처럼 쓰는 말들을 고스란히 듣고 받아들인다. ‘초딩 같다’는 말이 곧 ‘나 같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낀다. 자신의 나이와 위치가 놀림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기억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비슷한 말을 자신도 모르게 꺼내는 것도 어쩌면 그 기억의 흔적일지 모른다.

무언가에 서툰 상태를 표현하고 싶다면 다른 말이 얼마든지 있다. ‘초보, 입문자, 처음 배우는 사람’과 같은 말에는 어느 특정 집단을 낮추는 뉘앙스가 없다. 말 한마디를 바꾸는 일이 그리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바로 그 한마디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로 여겨지는지를 예민하게 읽어낸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린이’라는 표현이 아동을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하여 부정적 고정관념과 차별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공공기관과 방송에서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말은 세계를 만든다. 무심코 뱉던 말을 한 번 멈추고 가다듬을 때,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이 존중받는 세계에서 자란다고 느낀다. ‘초딩’이라 부를 때 단순히 언어 감수성만 잃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존엄도 함께 훼손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성미(김해 월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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