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부 공시 강화 시점, 드러난 보수·성과 괴리
올해부터 정부가 상장사 임원 보수와 총주주수익률(TSR)을 나란히 공시하도록 강제함에 따라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대폭 강화되는 가운데,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의 과도한 보수 체계가 본격적으로 검토 대상이 되고 있다.
정용진 회장이 이마트를 이끈 최근 3년간 주가는 폭락하고 총주주수익률(TSR)은 마이너스 상태가 지속됐음에도, 연평균 36억원대의 보수를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2023년 이마트가 사상 첫 영업손실을 기록한 해에도 정용진 회장이 상여와 성과급을 합쳐 16억2700만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왜곡된 보수 체계가 가능해진 배경에는 정용진 회장이 12년 이상 '미등기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미등기임원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경영진의 최고 의사결정을 주도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면서, 동시에 주주들의 통제와 감시 밖에서 보수를 책정하고 있는 것이다.
▮▮ 극단적 대조: 영업손실 속 보수 유지의 내막
지난 3년간의 경영 실적을 살펴보면 정용진 회장의 보수 책정 방식의 문제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2023년 정용진 회장의 연간 보수는 36억9900만원이었고, 2024년에는 36억900만원으로 전년 대비 2.4%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이마트의 영업 성과는 어땠을까? 2023년 이마트는 사업보고서 기준 영업손실 469억원을 기록하며 2011년 신세계로부터 분할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적자 상태에 빠졌다.
특히 영업손실 시기에도 정용진 회장이 받은 상여·성과급이 눈에 띈다. 2023년 영업손실 상황에도 정용진 회장은 급여 19억8200만원에 상여·성과급 16억2700만원을 합쳐 총 36억9900만원을 수령했는데, 이는 그가 2021년 부회장 시절 경영 부진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인상받은 사례와 일맥상통한다. 2021년 정용진 부회장의 보수는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전문경영인인 강희석 대표이사의 보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 주주가치 침해: TSR 마이너스에도 고정보수 유지
정용진 회장의 보수 문제는 장기 주주가치 침해로도 드러난다. 신세계그룹의 총주주수익률(TSR)은 최근 수년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주주 수익률이 음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정용진 회장의 기본급과 성과급은 연 36억원대로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용진 회장이 등기임원이 아닌 '미등기임원'이라는 신분 때문이다. 미등기임원은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보수를 책정할 수 있으며, 회사의 민·형사상 법적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현재 이마트의 주주총회는 전체 임원의 보수 총액 한도만 승인하는 형태로 운영되는데, 이 한도 자체가 미등기임원인 정용진 회장을 제외하고 책정되기 때문에 주주들이 그의 보수를 직접 통제할 방법이 없다.
▮▮ 실적 개선 신호가 나왔지만 구조적 문제는 남아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정용진 회장은 2024년 이마트 회장에 취임한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마트는 2024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 471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일회성 비용 2132억원을 제외한 '실질 영업이익'은 2603억원에 달했으며, 최소 배당금도 기존 주당 2000원에서 2500원으로 25% 상향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영 성과가 정용진 회장의 보수 책정 방식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전문경영진이 아닌 최대주주가 미등기임원으로서 명확한 보수 책정 기준 없이 연 36억원대를 수령하는 것은 여전히 국내 기업 지배구조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2024년 기준 자산규모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의 총수 78명 중 20명(25.6%)이 미등기임원이며, 정용진 회장은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상장사 그룹의 최고경영자로 기능하고 있다.
▮▮ 정부 정책 전환: 투명성 강화의 분수령
정부는 2026년부터 상장사 임원 보수와 총주주수익률을 나란히 공시하도록 강제해 임원 보수와 실제 경영 성과의 연관성을 주주들이 직접 확인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임원이 받은 보수의 산정 근거를 명시하도록 기업공시서식을 개정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최근 3년간 총주주수익률이나 영업이익 등을 임원 보수 총액과 함께 기재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2025년 5월부터는 5억원 이상을 받는 임원의 개인별 주식기준보상을 상세하게 공시하도록 했으며, 주식매수선택권 등 보수총액에 포함되지 않는 보상도 함께 공개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 상장사의 경우 CEO와 고액 연봉 임원의 개인별 보수를 공시하고 임원 보수와 재무 성과 간 상관관계도 설명하는 국제 기준에 맞추는 조치다.
한편 정용진 회장은 지난해 11월 그랜드오푸스홀딩(신세계와 알리바바의 G마켓 합작 회사)의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으나, 신세계나 이마트의 등기이사 선임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실제 경영권을 행사하는 이마트에서도 등기임원으로의 전환 요구가 점점 커지는 추세다.
▮▮ 소액주주의 목소리와 제도 개선의 과제
이마트의 소액주주들은 2024년과 2025년 주주총회를 통해 정용진 회장의 등기임원 취임과 명확한 보수 책정 기준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법인의 최고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최대주주가 법적 책임 없이 보수를 수령하는 것은 현행 상법상 이사보수 규정과 충돌한다는 주장이다.
국내 상법 제383조는 "이사의 보수는 정관에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주주총회가 '전체 이사의 보수 총액 한도'만 승인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미등기임원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어 투명성과 합리성이 크게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보수 책정의 근거로서 경영 성과 지표, 동종업계 평균 보수 수준, 회사의 재무 상황을 모두 고려하는 '성과연계형 보수 체계'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총수도 미등기임원이면 주주들의 통제권 밖에 있기 때문에, 등기임원 전환과 명문화된 보수 규정 마련이 책임경영의 첫걸음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용진 회장의 연 36억원대 보수 유지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보상 책정을 넘어 국내 상장기업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정부의 공시 강화 정책이 본격화되고 소액주주들의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기업 최고경영자의 권한과 책임 일치 원칙이 실제로 작동하는지가 2026년 공시 의무화 이후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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