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 양손 결박, 구멍 난 두개골…헤르손 러軍 ‘처형’ 범죄 확인

권윤희 2022. 11. 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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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외곽 마을 프라우디네의 공동묘지에서 러시아군 전쟁범죄 조사에 나선 경찰이 총알 구멍이 난 두개골 사진을 찍고 있다. 2022.11.29 EPA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퇴각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전쟁범죄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2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헤르손 외곽에서 ‘처형’ 흔적이 역력한 주민들 유해가 발굴됐다고 보도했다.

28일 헤르손 외곽 마을 프라우다의 공동묘지에 전쟁범죄 조사단이 진입했다. 러시아군 전쟁범죄 제보를 받은 조사단은 현지에서 남성 6명의 유해를 발굴했다.

조심스레 땅을 파헤치자 작은 뼛조각이 쏟아져나왔다. 얼마를 더 파내려가자 이번엔 손이 묶인 시신과 구멍 난 두개골이 드러났다. 러시아군이 살해한 여섯 사람의 시신이었다.

발굴된 유해는 처형 흔적이 역력했다. 눈을 가리고 양손을 결박한 채 등 뒤에서 근거리 사격한 정황이 포착됐다. 전쟁범죄 조사단의 코스티안틴 포돌리아크 검사는 “모두 우크라이나 사람들이었다”라고 밝혔다.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외곽 마을 프라우디네의 공동묘지에서 경찰 관계자와 법의학 전문가, 전쟁범죄 조사단 검사들이 러시아군이 살해한 민간인 시신을 발굴하고 있다. 2022.11.29 EPA 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외곽 마을 프라우디네의 공동묘지에서 현지 법의학 전문가 이호르 모트리치(맨 오른쪽)가 민간인 유해 발굴 작업 중이다. 2022.11.29 EPA 연합뉴스

마을 사람들은 발굴된 유해가 스파이로 몰린 현지 농기업 경비원들의 것이라고 밝혔다. 경비원 중 한 명이 의붓아버지 학대에 시달리는 소녀 한 명을 알게 됐는데, 자신의 학대가 드러날까 우려한 소녀의 의붓아버지가 러시아군에 경비원들을 밀고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그리고 얼마 후 마을에서 큰 폭발음이 일었다. 아나톨리 시코자라는 이름의 주민은 “4월 중순이었다. 폭발음이 들려 나가 보니 잔해 속에 경비원들과 15세 소녀가 널브러져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모두 폭발로 사망한 줄 알았으나, 가까이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시코자는 “경비원 7명 중 1명의 시신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고, 경비원 몇몇은 눈이 가려지고 양손이 뒤로 결박돼 있었다. 소녀는 목이 졸려 숨진 것 같았다”라고 전했다.

주민들은 러시아군에게 시신을 수습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거절했다. 방치된 시신은 유기견 먹잇감이 됐다.

주민들은 재차 시신을 매장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5주 후 러시아군은 마지못해 시신 수습을 허락했다.

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외곽 마을 프라우디네의 공동묘지에서 주민들이 경찰 관계자와 법의학 전문가, 전쟁범죄 조사단 검사들을 도와 러시아군이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15세 소녀의 유해 발굴하고 있다. 2022.11.30 EPA 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외곽 마을 프라우디네의 공동묘지에서 주민들이 경찰 관계자와 법의학 전문가, 전쟁범죄 조사단 검사들을 도와 러시아군이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15세 소녀의 유해 발굴하고 있다. 2022.11.30 EPA 연합뉴스

그리고 지난 11일, 러시아군은 점령 8개월 만에 헤르손에서 물러났다. 우크라이나는 헤르손에 전쟁범죄 조사단을 파견해 러시아군의 만행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경비원들의 죽음도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유해 발굴에 동원된 인부는 “힘들 줄은 알았지만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모두 알고 지낸 사람들이다. 얼마 전까지 농담을 주고받던 이들이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을 보라”고 한탄했다.

뉴욕타임스는 발굴 현장의 참혹한 광경에 베테랑 조사관들조차 동요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말없이 유해를 분류하는 조사관들 눈은 구멍 난 두개골에 머물러 있었다고 매체는 전했다.

28년 경력의 검시관 세르히 모리치도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이 일을 너무 오래해서 별 감정이 없다”면서도 그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조카가 방금 전선에서 전사했다”고 털어놓는 그의 목소리에 고뇌가 가득했다고 했다.

“이 전쟁은...”이라고 다시 입을 연 검시관은 끝내 말을 맺지 못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외곽 마을 프라우디네의 공동묘지에서 주민들이 경찰 관계자와 법의학 전문가, 전쟁범죄 조사단 검사들을 도와 러시아군이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15세 소녀의 유해 발굴하고 있다. 2022.11.30 EPA 연합뉴스

이 같은 러시아군 전쟁범죄는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확인됐다. 4월에는 부차 등 수도 키이우 일대에서 민간인 시신 수백구가 쏟아져나왔다. 주민들은 러시아군이 이유 없이 민간인을 처형했다고 증언했다. 9월 이지움과 10월 리만에서도 비슷한 집단매장지가 잇따라 발견됐다.

헤르손도 예외는 아니었다. 러시아군 퇴각 직후인 1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헤르손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민간인을 살해했다. 수사관들이 이미 400건 이상의 러시아군 전쟁범죄를 문서화했다”고 말한 바 있다.

21일에는 우크라이나 검찰청이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가두고 고문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4곳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청에 따르면 해당 시설에서는 고무 곤봉과 나무 배트, 백열등, 전기 고문 장치가 발견됐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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