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목어가 살아 숨 쉬는 청정 계곡
물 따라 걷는 산길, 자연이 만든 유산

흐르는 물소리만이 계곡 안을 채운다. 투명한 물줄기 아래 조용히 숨어 있는 한 생명체가 있다. 눈이 붉고 은빛 몸통을 지닌 이 작은 물고기는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흔적, 열목어다.
그리고 그 열목어가 사는 곳은, 다름 아닌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의 백천계곡.
해발 650미터 이상 고원지대를 따라 16킬로미터에 걸쳐 흐르는 이 계곡은, 태백산에서 발원한 옥계수가 만들어낸 자연의 유산이다.
백천계곡은 맑고 수온이 낮아 열목어가 살아가는 세계 최남단 서식지로 기록된다.
열목어는 환경에 민감한 희귀 어족으로, 산소가 풍부하고 공해가 없는 청정 수역에서만 서식할 수 있다.
물속 용존산소가 10ppm 이상이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까다로운 조건을 갖춘 탓에, 이들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곧 백천계곡의 수질과 생태 환경이 얼마나 우수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고산에 둘러싸인 숨은 생태 보고
백천계곡은 태백산뿐 아니라 연화봉(1,052m), 청옥산(1,276m), 조록바위봉(1,087m) 등 천 미터가 넘는 고봉들에 둘러싸여 있어, 외부 오염원이 닿기 어려운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다.

덕분에 수온은 낮고, 유속은 맑고 안정적이며, 자연 생태계가 오랜 시간 온전히 보존되어 왔다.
이곳의 열목어 서식지는 낙동강의 상류 지역이며, ‘봉화 대현리 열목어서식지’로 불린다. 1962년 천연기념물 제74호로 지정됐으며, 일부 구간은 천연림 보호지역으로 묶여 출입이 제한된다.
이는 단순한 관광지나 피서지가 아닌, 보호와 보존의 가치를 갖춘 생태유산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계곡은 사계절 내내 풍부한 수량을 유지하며, 특히 여름철이면 무더위 속에서도 낮은 수온 덕분에 열기가 닿지 않는 청량함을 제공한다.
백천계곡이 다른 계곡과 뚜렷이 구별되는 지점이다. 같은 위도에 있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열목어가 여전히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용히, 그러나 깊게 걷는 산길
백천계곡 탐방은 대현리의 연화광업소와 대현초등학교를 지나, ‘현불사’라 적힌 표지판을 따라가며 시작된다.

입구에는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희생자들을 기리는 호국영령위령탑이 세워져 있어, 산행의 시작에서부터 경건함과 숙연함을 마주하게 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조록바위봉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로로, 왕복 약 4시간이 소요된다.
2006년 9월, 석포면사무소의 지원으로 대형 종합안내판과 위치표시판, 위험구간 로프 등이 설치되어, 초보자도 안전하게 백천의 자연을 누릴 수 있도록 등산로가 정비됐다.
계곡의 물줄기는 길 따라 꾸준히 동행한다. 때로는 옆에서, 때로는 발 아래서 흐르며 숲길을 걷는 여행자에게 시원한 위로를 건넨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숨을 고르면, 이곳이 왜 특별한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현불사를 지나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면 열목어 서식지로 지정된 보호구역이 나타난다. 이 구역은 천연림보호지역이기도 하며, 지정된 탐방 이외의 접근은 제한된다. 그만큼 생태적 가치와 보호 필요성이 동시에 강조되는 구간이다.
청정 자연이 허락한 단 하나의 자리
백천계곡은 연중무휴로 개방되며,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주차는 약 30대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계곡이 보호받아야 할 생태 공간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열목어는 아무 물에서나 살아갈 수 있는 어종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 계곡 또한, 아무렇게나 다가가서는 안 되는 귀한 자연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고, 모든 발자국이 생명을 존중하는 자세로 이어져야 한다.
여름이 깊어지는 지금, 백천계곡은 잠시 도시의 소음을 내려놓고, 물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생명의 흔적을 따라가는 특별한 여행을 허락한다.
이 계곡의 진짜 주인을 만나는 시간은, 그 자체로 깊고도 단단한 울림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