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내 중복·비주력사업들의 통폐합 시나리오를 점검합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위아의 방산 부문을 현대로템으로 통합하는 등 하드웨어(HW) 사업 재편에 착수한 가운데 소프트웨어(SW) 부문에서도 '교통정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드웨어 중심 제조기업에서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및 피지컬 인공지능(AI) 기업으로의 체질개선에 속도를 내는 만큼 그룹에 분산된 SW 역량을 한 곳으로 결집하는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현대오토에버는 유력한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현대오토에버에 미래 핵심사업을 집중시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이를 향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활용하려는 재무적·거버넌스적 고려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W 통합의 현실적인 거점, 현대오토에버
현대차그룹 내 SW 개발 체계는 계열사별로 분산돼 있다. AVP본부는 그룹 차원의 SDV 개발과 자율주행 전략을 총괄하고 포티투닷은 자율주행 알고리즘과 차량용 운영체제(OS) 등 핵심 기술을 주도한다. 현대오토에버는 이들 기술을 실제 차량과 스마트팩토리 인프라에 적용하고 클라우드로 연결하는 차량용 SW 플랫폼과 엔터프라이즈 정보기술(IT)을 담당한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기술 간의 유기적 결합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SDV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원천기술을 빠르게 양산 차량에 적용하고 검증하기 위해서는 통합된 플랫폼과 개발체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오토에버는 SW 실무기능 통합의 중심으로 거론된다. 기술적 근거 중 하나는 차량제어 미들웨어인 '모빌진'이다. 모빌진은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섀시 등 차량 전 영역에서 HW와 SW를 연결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포티투닷이 설계하는 차세대 OS도 모빌진과의 통합 및 검증 과정을 거쳐야 양산에 적용될 수 있다. 이미 다양한 차종에 적용되며 안정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표준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SDV의 핵심인 무선업데이트(OTA)와 커넥티드카서비스(CCS) 능력에서도 현대오토에버의 입지는 독보적이다. 현대오토에버는 그룹의 유일한 IT 인프라 전문기업으로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서버 운영권을 가졌다. 차량내부(In-Vehicle)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외부(Out-of-Vehicle) 클라우드 인프라를 단일체계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은 데이터 기반의 자율주행 기술 구현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이러한 엔드투엔드(End-to-End)의 연결성으로 현대오토에버는 단순한 IT기업을 넘어 SDV 운영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조직 측면에서 변수도 존재한다. AVP본부와 포티투닷이 그룹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위상을 고려할 때 기술적으로는 현대오토에버 중심의 통합이 유력하더라도 실행 과정에서는 조직 간 권한과 역할에 대한 조율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업가치 상승, 지배구조 개편의 레버리지
현대오토에버의 기업가치 상승은 단순한 사업 성과를 넘어 향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재정적 레버리지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오토에버 지분 7.33%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2.73%), 기아(1.81%), 현대모비스(0.33%)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다. 현대차그룹이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현대모비스를 지배구조의 정점에 두려면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 회장이 매입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수조원의 현금이 필요하다.
현대오토에버가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경우 정 회장이 가진 지분가치가 급격히 상승한다. 이 자산을 활용하면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에 필요한 현금을 확보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시장에서는 현대오토에버의 기업가치가 극대화된 시점에 지분을 매각해 현금화하거나 이를 담보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현대오토에버와 현대글로비스 간 합병 가능성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오토에버를 정 회장의 지분율이 20%에 달하는 현대글로비스에 편입하는 구상이다.
실제로 두 회사의 결합은 'AI·SW 기반 스마트모빌리티 플랫폼'이라는 사업 논리로 포장될 수 있다. 앞서 현대오토에버는 2021년 현대엠엔소프트·현대오트론을 흡수합병하며 모빌리티 SW 종합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최근에는 현대차그룹의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장 도입 계획과 맞물리며 AI 인프라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역시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10.94%를 보유한 상태에서 스마트물류와 로보틱스 간 시너지를 도모하고 있다.
주식교환 비율 측면에서도 현대오토에버 합병 이후 기업가치가 커진 현대글로비스는 현대모비스와의 향후 분할·합병 과정에서 더 유리한 교환비율을 확보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SW 통합작업이 실제로 진행될 경우 표면적인 목표는 SDV 시대에 대비한 기술경쟁력 강화지만 그 과정에서 분산된 역량을 결집해 대주주의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전략적 고려가 작동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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