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중 인종차별?! [Allie의 영어로 먹고사는 이야기]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 않기 위한 유럽 식당 에티켓

세월아 네월아.
밥을 다 먹은 지 한참이 지다. 쏟아지는 햇살아래 이색적이고 생경한 풍경들을 충분히 담았다. 잠이 쏟아질 듯하다. 기다리고 기다린다. 하염없이 그렇게 기다린다. 나는 망부석이다… 생각하며 혹시라도 지나가는 서버를 놓치지는 않을까 살피며 눈이 마주치기를 그저 기다린다. 한국이었으면 계산서를 들고 계산 대로 바로 향하면 될 일인데. 속으로 푸념을 내어놓는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수고로움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양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만들며 계산하겠다는 신호를 소리와 큰 동작은 피한 채 온몸으로 보낸다. 미소와 함께 알았다는 신호를 받았다. 기뻤다. 드디어 계산하고 나갈 수 있구나.
그런데. 또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름다웠던 경치에 눌려있던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한다. 불편하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지나 목으로 들어온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이렇게 애연가일 줄은 몰랐다.
문득, 괜한 생각이 스친다.
‘내가 동양인이라 그런가… 인종차별인 것인가?’ 동양인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비교할 수는 없었다.
혼자 속으로 오해일지 사실일지 모르는 생각에 사로잡혀 뾰로통해있을 때 처음 주문을 받았던 서버가 계산서를 가지고 왔다. 반갑기 그지없다. 소정의 팁과 함께 계산을 마쳤다.

“당케 쉔(Danke schön)!”

(정말 감사합니다. Thank you so much에 해당하는 독어) 인사와 함께 나의 강제적으로 여유로워진 점식 식사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나오니 한 시간 반은 훌쩍 지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 나는 차별받았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내가 무지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무지가 서로 간의 불편으로 이어지고. 이는 엄청난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어느 식당에서 직접 찍은 나이프와 포크

유럽 식당 에티켓

유럽 여행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낯설었다. 10년도 훨씬 전 온 가족이 패키지로 다녀왔던 그때와는 달랐다. 올 초 파견 나와 일을 하고 있는 동생 집에서 머물면서 로컬 시민과 같은 생활과 잠시 관광하는 여행객이 같이 어우러진 이 주 정도의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레스토랑 에티켓은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다. 동생이 동행하며 알게 된 것들은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오해는 여행지에서의 낭만과 감성과 모든 좋은 기억들 마저 와르르 무너트리기도 다.

비엔나의 모차르트 생가에서 행복을 만끽하며 찍은 골목. 모르트는 이 골목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식당에 도착하면 직원이 안내할 때까지 입구에서 기다린다.

한국에서는 손님이 많아 기다릴 때나 입구밖에서 서있는다. 유럽에서는 식당 안에 자리가 많이 있어도, 종업원이 입구에 없어도 기다리며 직원이 안내해 줄 때까지 기다린다. 직이 오면 인사를 나누고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는다. 이를 알지 못해서 무작정 식당 안으로 들어가 앉아버리면 식당 측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좀 친절하지 않은 것 같은 응대로 돌아올 수 있다.

  • 담당 서버가 메인 요리를 주문받기 전에 음료 주문을 먼저 받는다

한국에서는 메뉴와 함께 물이 같이 나온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메뉴를 주면서 음료 주문을 받는다. 이때 물을 주문할 수 있다. 탄산수(Sparkling water)와 일반물(Still water)을 구분해서 주문하면 된다. 여행객들이 먹던 생수를 들고 가서 먹어도 상관없으나 물이 아니어도 콜라나 맥주 등의 음료를 주문하는 분위기이다.

  • 메뉴를 결정했다면 메뉴판을 덮고, 서버를 기다렸다가 눈짓하거나 가볍게 손을 든다

한국에서는 사장님~~~! 하고 시원하게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요즘에는 분위기를 보고 손님이 다 결정한 듯하면 와서 주문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은 매너가 아니라고 여겨진다.
유럽 레스토랑은 귀족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웨이터를 차분하고 우하게 기다리며 서비스 제공자를 존종하는 것이다. 메뉴를 결정했다는 의미로 메뉴판을 덮어 놓고 기다린다.

  • 큰 소리를 내거나 손을 크게 들지 않는다

식사 중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기다렸다가 눈을 마주치거나 손을 가볍게 들어 신호를 보내야 한다. 유럽 사람들이 가장 신기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직을 부르는 버튼 벨이라고 한다. 효율이 중요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받아들여진다. 그들에게는 에티켓을 무너트리거나 서비스 제공자를 존중하지 않는 장치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눈이 마주쳤다고 해서 웨이터가 바로 와줄 거라는 기대도 잠시 묻어두어야 한다.

  • 계산은 테이블에서 담당 서버에게, 팁은 알아서 적당히

그토록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 계산하는 시간이다. 테이블 계산은 한국에서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계산대에 가서 계산을 한다. 하지만 계산할 때도 기다려야 한다.
첫날 나도 ‘아무나 와서 계산해 주지... 왜 이토록 기다리게 하는 걸까...?’ 뾰로통했다.
팁 문화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계산을 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팁 문화가 있다면 달라진다. 테이블 담당 서버의 팁이니 기다려야 한다. 팁을 포함한 금액을 말하고 계산해 달라고 하면 된다.

빈 시내의 스타벅스. 스타벅스는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인종차별이 아닌 나의 오해

두 주간의 시간 동안 오스트리아의 몇몇 식당을 방문하면서 나의 무지로 인한 오해는 말끔히 사라졌다. 독일어를 사용하고 여행자 차림이 아닌 오스트리아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서버와 눈 마주침을 하며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잠깐의 시간, 3분이 될 수도 10분이 될 수도 있는 그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나와 달랐다.

온전히 식사 시간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흘러나온다. 땀이 쏟아지는 더위에도 (오스트리아는 여러 가지 제재로 대부분의 식당이나 건물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여유로워 보였다. 우아했다. 합스부르크가로 약 7세기 동안 유럽의 많은 지을 통치했던 오스트리아의 귀족문화 이런 것인가.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애를 태우며 레스토랑 직원분이 혹시나 나를 잊은 거는 아닌 가 하는 쓸데없는 초조함과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념 따위는 버리게 되었다. 적응하는 인간이다. 오히려 느긋해졌다.왜 그렇게 급하게 밥을 먹으며, 밥을 먹고 쉬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었던가 싶었다. 밥을 먹는 것이 '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언어만큼 중요한 문화의 이해

식당 문을 격하게 열고 들어가 자리를 떠억 하고 앉아서 큰 소리로 Excuse me! 를 외치고는 왜 안 오는 거야? 인종차별하는 거야? 하며 뾰로통하고 뚱한 표정으로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되어버리는 것은 한순 간 일 수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관광지가 아닌 로컬 식당에서는 독어만 구사하시는 서버 분들도 많았다. 트램에서도 안내방송에서도 영어는 없었다.

영어를 못해서, 아시안이라서 인종차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에티켓을 지키지 못하는 불쾌한 진상 손님이라 불쾌감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그 순간이 여행의 모든 기억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될 수도 있고, 그들에게는 불쾌한 손님, 방문하지 않았으면 하는 손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먹는다는 것이 여행에서, 삶에서 얼마나 물리적, 정신적으로 커다란 의미인지 생각해 보면 식(食) 문화, 식당 에티켓은 미리 알아두어야겠다 다짐한다.

여유로움 그 자체. 겨울왕국의 배경지 할슈타트(Hallstatt)

빨리빨리는 한국에 두고 떠나자

한국의 국제번호 82 가 ‘빨리빨리’에서 유래한 것 아니냐는 글을 보고는 빵 터지게 웃었던 적이 있다. 나는 이 빠름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유학생활 나를 가장 답답하게 했던 것도 것이 늦은 행정 처리, 감감무소식 AS 등의 속도에서 기인한 것들 이었.

그럼에도 이번에 현지 주민처럼 살아본 여행가운데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느림의 미학이랄까. 쫓기듯 식사하지 않고 가족들의 목소리에 여유롭게 귀 기울이고, 한번 더 얼굴을 쳐다보고, 주변의 풍경을 살피는 그런 나를 더욱 존중하는 듯한 그런 식사의 시간과 공을 경험했다. 유럽 여행을 준비한다면 느림의 여유는 꼭 담아가기로 했다.


글쓴이 : ‘통역사로 먹고살기’를 출간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세상과 세상, 언어와 언어사이의 소통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전 세계와 소통하며 그로 인해 확장된 경험을, 국내파로서 영어교육과 학습에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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