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 축구대표팀은 언제나 끝판 대장이었다.
FIFA월드컵에서 5회 우승을 차지했다. 1958년, 1962년, 1970년 , 1994년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역사상 최다 우승국이다. 수많은 스타도 배출했다. 펠레, 가린샤, 마리우 자갈로, 자이르지뉴, 호마리우, 베베토, 둥가,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등. 세계 축구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스타들이 브라질의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피치 위를 누볐다.
브라질 대표팀이 또 다시 한국을 찾는다. 10일 저녁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대한민국 대표팀과 A매치를 치른다. 2022년 12월 5일 열렸던 카타르월드컵 16강전 이후 3년만의 맞대결이다. 이 경기를 앞두고 한국 축구와 브라질의 과거 인연을 살펴봤다.

A대표팀간의 첫 맞대결은 1995년 8월 12일 수원 종합 운동장이었다. 당시 한국은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위해 일본과 경쟁 중이었다. 한국의 축구 사랑을 전세계에 알려야 했다. 스타군단이자 1년전 미국 월드컵 우승팀인 브라질을 초청해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브라질전이 전세계로 송출되면 한국의 축구 열기를 지구촌이 모두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브라질은 한국 축구가 맞대결하는 최고 레벨의 상대였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세계 레벨과는 차이가 꽤 컸다. 세계 최강급팀들과의 맞대결은 1986년, 1990년, 1994년 월드컵에서나 가능했다. 그 외의 무대에서 한국은 코리아컵(예전 박스컵 혹은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서 이집트나 미국, 인도네시아, 소련, 몰타 같은 팀과 맞붙거나 다이너스티컵에 나가 일본, 중국 등과 대결할 뿐이었다. 이 브라질전 이전 월드컵 본선이 아닌 무대에서 세계 최정상급 팀과 맞대결한 것은 1988년 6월 대통령배 축구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상대한 것 뿐이었다. 그마저도 이탈리아는 21세 이하 팀이었다. 그 이전 기록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6개월 앞두고 열린 멕시코 원정에서 헝가리, 멕시코를 상대했다. 결국 이 브라질전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세계 최정상급 팀을 상대로 가진 홈경기였다.

허정무 임시 감독의 지도 아래 한국은 브라질을 상대로 선전했다. 당시 브라질에는 둥가, 레오나르드, 호날다우 같은 미국 월드컵 우승 멤버가 있었다. 또한 주니뉴 파울리스타와 제 호베르투같은 차세대 스타들도 포진해있었다. 황선홍, 홍명보, 서정원, 유상철 등으로 구성된 한국은 0대1로 석패했다. 전반 34분 브라질의 주장 둥가가 결승골을 넣었다.
이 경기는 원래 개최 목적이었던 2002년 월드컵 유치 경쟁에도 큰 힘을 보탰다. 전세계 22개국에 중계됐으며, 브라질 취재진도 11명이나 방한했다.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파도타기 응원등은 브라질 취재진의 눈길을 끌었다.
2만 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수원 종합 운동장에는 입석까지 포함해 3만 5000명이 입장했다. 또한 당시 한국의 골문을 지키던 김병지는 경기 종료 9분을 남기고 직접 드리블로 상대 진영까지 들어가 관중들로부터 환호를 받기도 했다.

두번째 맞대결은 1997년 8월 10일 서울 잠실 종합 운동장이었다. 결과는 1대2로 한국의 패배. 그러나 내용에서 한국은 상당히 좋았다.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그 해 6월 열린 코리아컵에서 이집트, 가나, 유고 슬라비아를 상대로 2승 1무를 거두며 우승했다. 상승세였다. 브라질을 맞이하며 자신감에 차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에도 성공했다. 한국 내 축구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이 시점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을 데려와 축구 붐을 한층 더 일으키려 했다.
브라질의 라인업은 더욱 화려했다. 둥가, 레오나르두는 물론이고, 호나우두와 호베르투 카를로스, 데니우손 등이 모두 출전했다. 이를 상대로 한국은 전반 7분 김도근의 강력한 슈팅으로 앞서나갔다. 이후 한국은 후반 39분까지 리드를 지켰다. 다만 후반 39분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내줬다. 그리고 경기 종료 1분전 안데르손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잠실벌의 대반란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날이 밝았다.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잠실벌의 승리. 1999년 3월 28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이었다.
1년 7개월만에 브라질은 다시 한국을 찾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에 밀리며 아쉽게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그들은 역시 최강팀이었다. 브라질의 면면은 화려했다. 히바우두, 제 호베르투,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카푸 등이 총망라됐다.
한국은 이런 브라질을 상대로 투지를 불태웠다. 꽃샘 추위도 큰 힘이 됐다. 영상 4도의 쌀쌀한 날씨. 칼바람까지 불어 체감 기온은 영하 4~5도였다. 한국 선수들은 브라질의 개인기에 고전했다. 그렇지만 강력한 몸싸움을 펼치며 브라질을 막아냈다. 김병지의 선방쇼도 펼쳐졌다. 그리고 후반 추가시간. 그 장면이 나왔다. 홍명보가 올라와 오른쪽으로 패스를 찔렀다. 최성용이 얼리 크로스를 올렸다. 뒷공간을 파고들던 김도훈이 슬라이딩하며 그대로 슈팅, 골망을 갈랐다.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브라질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한국은 브라질과 5번을 더 만났다. 결과는 5전 전패.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2002년 월드컵 직후 5개월만이었던 2002년 11월 서울에서의 격돌이었다. 당시 한국은 설기현과 안정환의 골로 선전했지만 2대3으로 졌다.
가장 최근 맞대결은 2022년 12월 5일 카타르 도하 스타디움 574에서 열린 월드컵 16강전. 한국은 분전했지만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1대4로 완패했다. 현재까지 한국의 브라질전 전적은 8전 1승 7패. 6골을 넣고 20골을 내줬다.

여담으로 브라질은 우리에게 대패의 아픔도 선사한 적이 있다. A대표팀은 아니다. 20세 이하 대표팀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10골을 내준 적이 있다. 때는 1997년 6월 22일이었다. 당시 박이천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1997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현재 20세 이하 월드컵)에 나섰다. 1승 상대였던 남아공을 잡지 못했다. 0대0으로 비겼다. 2차전은 프랑스. 당시 경기에서 한국은 프랑스 소속이던 티에리 앙리와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각각 2골씩 내주며 2대4로 졌다.
1무 1패인 상황에서 맞이한 3차전. 상대는 브라질이었다.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열렸던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한국을 무참히 짓밟았다. 10골을 몰아쳤다. 당시 스트라이커였던 아다일톤은 혼자 6골을 넣었다. 이 기록은 훗날인 2019년 노르웨이의 얼링 홀란의 9골 이전까지 20세 이하 월드컵 개인 한 경기 최다골이었다. 아다일톤은 이후 르마, PSG, 헬라스 베로나, 제노아, 볼로냐 등에서 뛰었다.

#이번 대표팀 선수들과 브라질의 인연
주장 손흥민은 브라질과는 좋은 인연이 아니다. A대표팀에서 브라질을 총 4번 상대했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4번을 뛰었지만 모두 졌다. 손흥민 역시 브라질의 골문을 단 한번도 열지 못했다. 브라질 땅과도 인연이 없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8강에서 온두라스에게 지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2009년에는 17세 이하 대표팀 소속으로 일본 센다이에서 브라질과 상대했다. 이 경기에서도 0대1로 졌다.
손흥민은 이번에 한국에 오는 브라질 대표팀 선수들과는 인연이 깊다. 우선 히샬리송과는 토트넘에서 오랜 기간 한솥밥을 먹었다. 지난 8월에도 함께 한국 투어를 왔었다.
황희찬 역시 이번 브라질 대표팀 선수들과 친분이 두텁다. 우선 안드레와 조앙 고메스와는 현재도 울버햄턴에서 함께 뛰고 있다. 또한 맨유로 이적한 마테우스 쿠냐와는 지난 시즌까지 울버햄턴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강인 역시 마찬가지다. 센터백 루카스 베랄도와 PSG에서 함께 뛰고 있다.
한국의 철벽 김민재는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를 상대로 설욕을 다짐한다. 2023~2024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비니시우스는 김민재를 제치고 2골을 넣으며 팀을 결승 진출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