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셀카, SK는 웨이퍼…4대 그룹이 읽은 이재명 정부

4대 그룹이 선보인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축하 메시지.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을 맞아 주요 대기업들이 일제히 축하 메시지를 냈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이른바 4대 그룹은 최근 주요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게재하며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와 협력 의지를 내비쳤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관련 광고에는 공통적으로 '함께', '미래', '새로운 대한민국'과 같은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다만 표현 방식은 그룹별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따라 결을 달리한다. 정치적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시대정신에 대한 해석은 피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삼성- 4명의 대통령에게 보낸 각기 다른 인사

국내 재계 1위인 삼성은 수채화풍 일러스트를 활용해 이재명 대통령과 시민들이 함께 셀카를 찍는 장면을 연출했다. 노인·청년·어린이·자영업자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가운데 "새로운 대한민국에 삼성도 힘을 보태겠습니다"라는 문구도 더했다. 정치적 의도를 최소화하면서도 사회적 연결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한 구성이다.

과거부터 삼성은 정권의 성격과 시대 분위기에 따라 취임 축하 메시지의 형식·수위·정서 밀도를 유연하게 조절해왔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당시 삼성은 그의 얼굴 사진을 전면에 배치한 인쇄광고를 통해 감정적 공감대를 적극적으로 형성하려 했다. 광고에는 "당신의 꿈이 궁금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직접적인 축하 문장까지 담겼다. 캠페인에 가까운 톤으로 당시 정치권에 과감하게 호흡을 맞췄다는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정농단 사태로 몰락했고 삼성은 최순실 씨와의 커넥션, 이재용 회장에 재판 등 사법 리스크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후 삼성이 정치 메시지를 다루는 방식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박근혜(왼쪽)·문재인(오른쪽) 대통령 취임 당시 삼성이 선보인 축하 광고.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삼성은 대통령 이미지를 아예 배제했다. 대신 햇살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한 아이의 모습을 중심에 배치했다. 정치색을 철저히 지운채 미래·아동·희망 등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만을 전면에 세운 구성이다. 정치권에 거리를 두면서도 시대정신에는 간접적으로 응답한 리스크 회피형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평가된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 취임 당시 삼성은 다시 대통령의 모습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윤 대통령이 아이를 안은 일러스트를 중심에 배치하고 소방관·자영업자·농부  등 각계각층의 시민을 배경에 세웠다.

SK - 웨이퍼 든 대통령, 산업정책 맞물린 '전략적 축하'

SK그룹은 푸른 하늘 아래 반도체 웨이퍼를 양손에 든 이 대통령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웠다. 웨이퍼는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SK가 역량을 집중해온 핵심 전략 품목이다. 동시에 새 정부가 지정한 국가 전략산업의 상징이기도 하다.

눈에 띄는 점은  SK가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대통령의 실물을 광고 이미지에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이 대통령의 산업정책 철학과 그룹의 미래 핵심사업을 직접적으로 연결지은 구도다. SK는 축하 메시지를 통해 "대한민국이 더 강한 경쟁력을 갖추고, 국민 모두가 일상 속에서 더 단단한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SK도 묵묵히 힘을 더하겠습니다"라고 밝히며 정책 연계와 산업 기여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SK그룹이 선보인 이재명 대통령 취임 축하 광고.

그룹 전략과도 높은 정합성을 보인다. SK는 최태원 회장 주도로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투자를 그룹 성장의 축으로 삼고 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정부가 추진 중인 K반도체 벨트 구상과 발맞춰 대규모 국내 투자 및 고용 창출을 이어가며 사실상 정책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해왔다.

이번 취임 축하 광고는 그런 연장선에서 새 정부와의 산업 기조 공조를 공식화하고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선제적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 첫 경제 행보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를 방문한 바 있다.

현대차·LG - 함께 가되 가깝지는 않다? 절제된 전략

현대차그룹은 특유의 절제된 톤으로 메시지를 구성했다. 광고에는 인물 얼굴 없이 초록색 운동화 끈을 매는 손만을 클로즈업한 이미지가 담겼다. "대한민국은 함께 희망의 새 길로 나아갑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공동체적 연대와 실천적 희망의 서사를 강조했다.

대통령의 모습을 배제하고 상징만을 남긴 점은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피하면서도 전환기적 시대 분위기를 조명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군더더기 없는 구성이 현대차 특유의 중립성과 신중함을 드러낸다는 평가다.

문재인(왼쪽)·윤석열(가운데)·이재명(오른쪽) 대통령 취임 당시 LG그룹이 선보인 축하 광고. 구광모 회장 체제 전후의 톤 변화가 드러난다.

LG그룹의 경우 다소 독특하다. LG는 들판 위에서 청년들이 점프하는 장면과 "미래, 같이"라는 카피를 통해 연대와 희망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했다.

전체적인 정서는 이전 정부 때와 유사한 연장선상에 있다. 앞서 윤 대통령 취임 당시에도 LG는 짧은 문구와 종이비행기 날리는 이미지를 활용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보편성에 집중하는 전략을 유지했다. 연출의 명확성이나 시각적 완성도 면에서는 다소 평면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같은 접근은 구광모 회장 체제 이후 LG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커뮤니케이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LG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고객 경험, 기술 혁신 등을 중심에 두며 정치적 사안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다. 이번 메시지 역시 직접적 언급은 지양하면서도 '같이 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시대정신에는 조용히 호응하는 방식이다.

이는 과거와의 대비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2017년 문 대통령 취임 당시에는 고(故) 구본무 회장 체제 아래 대통령 사진과 명시적 축하 문구가 광고에 포함됐다. 2018년 구 회장 체제 이후부터는 메시지의 톤과 형식이 전반적으로 실용주의적이고 비정치적인 방향으로 재편됐다는 평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임 대통령 취임 축하 메시지는 대체로 희망, 연대, 새로운 출발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며 "각 그룹이 고유 슬로건과 연결해 브랜드 메시지를 강화하는 경우도 많아 문구와 이미지 구성에 많은 공을 들인다"고 설명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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