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손글씨대회 1위 모하메드 군 “손글씨엔 영혼 담겨있어”

이지윤 기자 2024. 10. 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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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손글씨대회 개최 10주년을 맞아 신설된 외국인 부문에서 으뜸상(1위)을 수상한 이집트 출신 모하메드 호세이파 군(사진).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손글쓰기문화확산위원회가 주관하고 교보문고, 대산문화재단, 교보생명이 공동 주최하는 ‘교보손글씨대회’가 10주년을 맞아 신설한 외국인 부문에서 으뜸상(1위)을 수상한 모하메드 호세이파 군(19)은 인천에 사는 이집트인이다. 정치외교학과 진학을 꿈꾸는 ‘고3’ 수험생이기도 하다. 수험 생활 와중에도 짬을 내 출품한 작품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남긴 유언이다.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1910년 3월 25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글이다.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시상식을 앞두고 모하메드 군을 만났다.

“손글씨 대회 참여를 통해 저만의 글씨를 찾았지만, 요즘에는 남의 글씨를 따라 써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 사람이 글을 쓰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 보게 되더라고요.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손글씨에는 사람의 생각과 영혼이 담겼습니다.”

올해 처음 치른 외국인 부문에는 35개국 출신 400여 명이 출품했다. 19명이 참여한 심사에서 모하메드 군은 만장일치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신달자 시인(81)은 “놀랍다. 정교하고 리듬까지 느껴진다”며 “한글의 아름다움을 이쯤 표현하려면 한국을 이만큼은 이해하고 있을 듯하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평했다.

모하메드 군의 출품작.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언 ‘동포에게 고함’을 적었다. 교보문고 제공

안중근 의사는 모하메드 군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모하메드 군은 “안중근 의사의 확고한 신념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안 의사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2022년 고등학교 1학년 한국사 수업 시간에 하얼빈 의거를 배우면서였다. 재판 참관기를 찾아 읽었고,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안 의사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는 “역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집 속 ‘동포에게 고함’에 닿게 된 것이다.

모하메드 군은 수상소감에서 “76년 동안 땅이 빼앗기며 억압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자유와 해방을 염원하며 썼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한국에 알리고 싶어서 대회 참여를 결심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발발한 뒤, 모하메드 군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접하고 있다. 그는 “1년 넘게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이 지속되면서 4만2000여 명이 희생되었고 그중 70%는 어린이와 여성이다”라고 했다.

“한국에 사는 아랍인으로서, 그리고 이집트인으로서 한국 사람들이 아랍권과 이슬람권에 갖는 편견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양측 다 제국주의 식민지배로 고통을 받은 공통점이 있어요. 공통점을 통해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안중근 의사의 ‘동포에게 고함’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국제 사회의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공감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날 흰색 바탕에 검은색 체크무늬가 들어간 ‘케피예’(keffiyeh · 중동 남성들의 전통 두건)를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검은 체크무늬 케피예는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 남성이 많이 두르다보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도 여겨진다.

그가 외교관이 되고 싶은 이유도 아랍권과 한국을 잇는 통로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가 먼 한국과 아랍권은 왜 서로를 더 알고 이해해야 할까. 모하메드 군은 ‘인류애’를 강조했다. “사람들이 종교나 인종, 성별 등의 차별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더 나은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제10회 교보손글씨대회 시상식이 열렸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그는 2018년 한국 땅을 밟았다. 13세 때의 일이었다. 모하메드 군의 가족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왔다. 아버지가 반(反)독재 활동을 해 자주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그래도 국내나 인접국에 머물렀지만 이집트 정치 환경이 계속 나빠졌다. 2013년 쿠데타를 주도한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이 이듬해 정권을 잡은 데 이어 2018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결국 그의 가족은 이집트를 떠나게 됐다. 시시 대통령은 현재도 집권 중이다.

13세에 한국에 온 모하메드 군은 한국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경험했다. 입국 직후 인천 한누리학교에서 6개월간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운 후 일반 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당시엔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점심시간에 축구하면서 친구들과 친해졌다고 한다. 선생님 말씀을 놓치기도 하고 어려움이 없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늘 곁에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괜찮았다”고 했다.

한국은 모하메드 군의 두 번째 고향이 됐다. 2021년에는 마침내 난민 인정도 받았다. 학교에서는 반장으로 뽑혔고, 학생회와 동아리 활동을 하며 분주하게 산다. 친구들과 있으면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어도 매우 유창하게 구사한다. 인터뷰 도중 “편하게 제 이름 호세이파로 불러달라”고 넉살 좋게 말하다가도, 생각을 물어보면 문어체가 묻어나는 문장으로 답했다. 그는 뉴스와 정치 서적을 좋아한다고 한다. “친구들은 추상적인 걸 싫어하는 것 같다”며 대신 신문 읽기 동아리와 법정치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했다.

수상작은 이달 30일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전시된다. 교보문고 웹사이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올해는 아동, 청소년, 일반, 외국인 부문에 4만4993명이 응모해 예·결선 심사와 고객 투표를 거쳐 으뜸상 11명, 버금상 23명이 선정됐다.

교보손글씨대회는 손글쓰기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다양한 손글쓰기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손글쓰기문화확산위원회가 주관하고 교보문고, 대산문화재단, 교보생명이 공동 주최하고 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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