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시골에 집 짓고 싶다" 전문가들은 뜯어 말리는 이유

중년들의 꿈 전원주택 찬반 논란

“분수에 맞게 살면 되고, 돈 없으면 시골로 이사 가세요. 힘들게 도시거지로 살지 말고요.” “요즘 귀촌하면 월 200만원으로 충분히 생활 가능합니다. 텃밭은 시골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지원도 많고요.”

콘크리트 숲의 성냥갑 아파트에서 새 소리, 물 소리가 들리는 시골로 이사를 가면,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게 될까요? 노후 보금자리는 인생 후반전의 승패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변수입니다. 나이가 들면 젊을 때처럼 생활 터전을 옮기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은퇴 후 주거지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요?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장년층이 많다. /사진=게티

✅전원 생활은 전월세살이부터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란 중노년층 중에는 전원주택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자연 속에서 텃밭도 소소하게 일구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최근 전원주택 시장 상황은 ‘언덕 위 그림 같은 집’을 꿈꾸는 은퇴자에겐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코로나 이후 건축비가 2~3배씩 올라서 예상했던 것보다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노후 자금을 전원주택 건축비로 쏟아 부으면 통장 잔고는 바닥나고, 시골살이 낭만은 말년 악몽으로 변하게 됩니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란 중노년층 중에는 전원주택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사진=게티

75세엔 도시 유턴 고민해야

노후 준비 서적을 다수 펴낸 송양민 가천대 특수치료대학원장은 “코로나 이후 전원주택 건축 비용이 급등해서 예전에 3억이면 충분히 지었을 집이 지금 견적을 내면 6억이 넘는다”면서 “초기 투자 비용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전원 생활을 꿈꿔왔던 은퇴 가구라면 집을 새로 짓기보다는 전월세살이를 추천한다”고 말했습니다.

잘 지어진 전원주택을 빌려서 일정 기간 살아보면서 노후에 살아도 괜찮을지 먼저 따져보라는 것이죠. 5도2촌(5일은 도시, 2일은 시골) 형식으로 일종의 수습 기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전월세살이보다 더 합리적인 비용으로 전원 생활을 즐겨보고 싶다면 이동식 주택인 컨테이너 농막(農幕)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농막은 기성복처럼 미리 만들어져 있어서 1억원 미만 비용으로 설치할 수 있고, 법적으로 주택 수에도 포함되지 않아 세금 부담이 없습니다.

지어진 전원주택을 빌려서 일정 기간 살아보면서 노후에 살아도 괜찮을지 먼저 따져보라는 것이 좋다. /사진=게티

✅전원주택을 둘러싼 찬반 논쟁

인터넷에는 전원주택의 실상을 고발하는 글과 동영상이 넘쳐 납니다. 사는 순간 바로 손실 확정인 악성 매물들이 많이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부실하게 지어졌는데 호가는 비싸서 고인건비 시대에 수리비가 집값보다 더 많이 들 것이란 괴담도 나옵니다.

고금리로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짓다가 만 전원주택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원주택=골병주택’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집주인이 신경 써야 할 일들도 산더미입니다.

하지만 막상 귀촌해서 전원 생활을 오래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장점이 너무 많기 때문에 불편한 점들은 전부 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닭장 아파트에 갇혀 지내면서 층간소음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특히 그렇습니다. “아침엔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고, 저녁엔 별을 보면서 잠드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는 전원주택의 실상을 고발하는 글과 동영상이 넘쳐 난다. /사진=게티

✅강남집 월 400만원 세놓고 시골 이주

노후 주거지 선택은 각자 인생관에 따라 정하는 것이므로 정답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전원주택을 투자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매수하거나 신축한다면, 나중에 팔 때 본전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은 알아둬야 합니다. 아파트는 규격화된 상품이어서 매매가 수월하지만, 전원주택은 매수자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한테는 자연에 둘러싸인 멋진 별장 같아도 남들에겐 평범한 주택일 수 있기 때문이죠.

전원주택은 베이비붐 세대의 욕망이 나타난 공간이며, 젊은 세대의 공간 욕망은 이전 세대와 다르다는 전문가 지적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인구감소 충격이 닥쳐오는 시점에 나이 든 은퇴자가 가치 하락이 예상되는 자산에 노후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말리고 싶다”면서 “차라리 거주와 소유를 분리하는 듀얼라이프(두 지역살이) 전략으로 노후에 살 집을 정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거주지는 옮겨도 소유는 전환하지 않는다면 내가 가진 자산 가치는 변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강남 아파트를 보유한 한 은퇴 부부는 월 400만원에 세를 놓고 강원도 전원주택으로 이주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경은 객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