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슈퍼카 시장이 성장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페라리에서도 신제품을 출시했다. 그동안 페라리 제품들의 작명법이 꽤나 직관적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만큼 직관적인 모델이 또 있을까. 페라리는 지난 5월 30일 자사의 신제품인 ‘12칠린드리’를 인천 인스파이어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개했다.

이번 출시에 주목할 점은 미국 마이애미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한 이후 한 달 만에 한국에 선보인 것으로, 그만큼 한국 시장의 성장세에 대해 페라리 본사에서도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행사에는 페라리 본사의 엠마뉴엘레 카란도 글로벌 마케팅 총괄도 자리하며 한국 시장에 대한 페라리의 관심도를 알 수 있었다. 그는 “12칠린드리는 최고 수준의 편안함, 혁신기술로 탄생한 뛰어난 성능 그리고 순수한 운전의 스릴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 차량으로 스포츠카 드라이버와 레이싱 드라이버 모두를 만족시키는, 페라리 포지셔닝 맵에서 중간을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모델”이라고 밝혔다.

이름의 ‘칠린드리(Cilindri)’는 이탈리아어로 ‘실린더(Cylinder)’를 뜻하는 말로, 이전 12기통 모델인 ‘812 슈퍼패스트’는 ‘최고출력이 800마력인 12기통 모델’이라는 나름의 규칙을 담아 이름을 지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규칙마저 없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인 12기통을 이름에 못박아버렸다.


외관은 1950~60년대 전설적인 그랜드 투어러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클래식한 느낌의 외관이지만 현대적 디자인 요소들을 곳곳에 담아놓아 어색함이 없는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제품 포지션은 페라리 라인업 정중앙에 위치해 스포츠카와 레이싱카 양쪽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모델로 만들어졌다. 전면부는 보닛에 프런트 윙을 통합했으며, 윙에서 절단선을 제거해 매끄러운 표면으로 근육질의 모습을 보여준다. 후면은 리어 스포일러 대신 2개의 액티브 플랩을 적용해 일체화된 느낌을 준다.

실내는 운전석과 동승자석이 각각의 개별 조종석인 것처럼 보이도록 대칭적으로 디자인됐다. 동승자석에도 주행 정보 및 인포테인먼트를 실행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이 대시보드에 내장됐으며, 운전자용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은 중앙 송풍구 하단에 마련되었다. 실내 곳곳을 덮고있는 알칸타라 내장재는 65% 재활용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해 제작된 것으로, 페라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요소다.

이름에도 담긴 페라리 최신의 자연흡기 V형 12기통 엔진은 6.5L의 배기량에 프론트 미드 방식으로 탑재됐으며, 최고출력은 830마력, 최대토크는 678Nm의 강력한 성능으로 제로백(0-100km/h)은 2.9초, 제로이백(0-200km/h)은 7.9초에 불과하고 최고속도는 340km/h 이상이다. 엔진 회전수를 높이기 위해 엔진 부품의 무게와 관성을 줄였는데, 커넥팅 로드는 티타늄으로 제작해 회전 질량을 줄였으며, 피스톤은 알루미늄 함금을 사용하고 리밸런스 크랭크샤프트는 무게를 3% 줄이는 등의 노력이 더해졌다. 또한 포뮬러 1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밸브트레인에 DLC 코팅 처리한 슬라이딩 핑거 팔로워를 적용, 마찰 계수를 줄여 기계적 효율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변속기는 8단 DCT가 적용되며, 선택한 기어 단수에 따라 최대토크를 변경하는 흡기식 토크 쉐이핑(Aspirated Torque Shaping, ATS) 기술이 적용됐는데, 전자식을 정교한 제어가 이루어져 3단과 4단에서도 토크 곡선을 형성한다. 또한 흡배기 라인 최적화로 자연흡기 V12 특유의 선명하고 풍성한 고주파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12칠린드리에는 고성능에 걸맞은 다양한 최첨단 동역학 제어기술이 적용되는데, 먼저 전자식으로 제어하는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brake-by-wire)를 도입해 제동 거리는 출이고 제동 반복성이 정확해졌다. 또한 ABS-Evo와 6w-CDS 센서가 더해지는데, 이 중 6w-CDS 센서는 버추얼 숏 휠베이스(PCV) 3.0과 사이드 슬립 컨트롤(SSC) 8.0 시스템이 정밀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4륜 독립 스티어링(4WS)가 적용되어 각 휠을 독립적으로 관리, 코너링에서 차량의 좌우 흔들림(yaw)을 제어하고, 급커브 등에서 신속한 반응이 가능하다. 또한 각 휠의 액추에이터의 정밀 제어를 통해 차축 반응 시간을 앞당겨 코너링에서의 반응성도 향상됐다. 그리고 812 슈퍼패스트 대비 20mm 줄어든 휠베이스와 앞 48.3%, 뒤 51.7%의 이상적인 무게 배분 등이 더해져 뛰어난 핸들링과 반응성을 보여준다.

페라리 공식 수입원 FMK의 김광철 대표이사는 “한국은 페라리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열정을 가진 고객이 많은 시장인 만큼, 지난 12기통 모델인 푸로산게에 이어 12칠린드리를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선보일 수 있게 되어 매우 감격스럽다”며 “12칠린드리를 통해 국내 페라리 팬들이 페라리 파워트레인 철학의 정수와 대체불가한 12기통 엔진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제는 터보차저 등을 사용하는 다운사이징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자연흡기만의 빠릿한 반응이 사라지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12칠린드리와 같은 자연흡기 고성능 모델의 등장은 내연기관 마니아의 입장에서 반길만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지막 V12 자연흡기 모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어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앞으로 전동화의 흐름에 따라 결국 사라지겠지만, 전기차에서도 12칠린드리에 담긴 정신을 페라리가 변치말고 이어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