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美 IRA 보조금 축소 날벼락...영향은?
“미 IRA 보조금 폐지 땐 타격 불가피”
정부 "美 전기차 보조금 폐지 여부 미확정"
IRA에 의존하지 않는 수익구조 창출 중요
국내 배터리 업계(K-배터리)가 정권교체기인 미국 행정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차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련한 목소리가 잇따르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기간 내내 IRA를 비판하며 폐지를 공언한데 이어 15일에는 '트럼프 2기' 정권 인수팀이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최대 대당 7500달러 규모)을 폐지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아직 섣부른 예측을 할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국내 배터리 3사(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IRA보조금 수혜를 입었는데 전기차보조금 폐지가 현실화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IRA 전기차보조금 관련 폐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정부는 업종별 간담회 등 업계와 긴밀히 소통하며 불확실성에 대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 왔고 향후 미 측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IRA 폐지 땐 배터리업계 타격 불가피"
IRA는 미국이 글로벌 전기차·배터리 생산 중심지가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에서 추진됐다. 이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생산자가 배터리를 생산할 때마다 보조금을 받는다. 또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면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까지 주어진다. AMPC는 배터리 등 친환경 에너지와 같이 첨단제조기술을 활용한 산업의 미국 내 투자·생산 확대를 위해 도입한 세액공제 제도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미국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42.4%로, 전년 대비 6.2%포인트(p) 상승했다. 일본(40.7%)보다도 앞선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IRA에 적합한 투자를 단행해 온 결과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현지 공급망을 구축하고 제조공장 건설에 주력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주에서 제너럴모터스(GM)와 세 번째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삼성SDI는 인디애나주에서 스텔란티스와 2곳, GM과 1곳을 계약하고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온은 테네시주에서 포드와 손잡고 공장을 짓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내 생산 케파(능력)는 지난해 117기가와트시(GWh)에 달한다. 그동안 발표한 투자계획을 합치면 2027년까지 635GWh로 늘어난다.
"극심한 불황에 그나마 AMPC가 지탱해줘"
전문가들은 최근 전기차 케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글로벌 고금리와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 트럼프 2기 출범으로 IRA 지원 규모까지 줄어들 경우 국내 배터리 업계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올해 극심한 불황 속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를 지탱해 준 건 그나마 AMPC 영향이 컸다. 올해 3분기 배터리 3사 실적에서 AMPC를 제외하면 흑자를 낸 곳은 삼성SDI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영업이익 4483억원 가운데 AMPC가 4660억원을 차지했는데 AMPC 혜택을 제외하면 177억원 적자다. 분사 이후 첫 분기 흑자를 기록한 SK온도 608억원대인 AMPC를 제외하면 영업손실 규모가 368억원이다.
올해 3분기까지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가 받은 AMPC 보조금 총액은 △1분기 2741억원 △2분기 5675억원 △3분기 5371억원으로 모두 1조3787억원에 이른다. 업체별로는 LG에너지솔루션이 1조1027억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SK온 2111억원, 삼성SDI가 649억원이다. 업계에서는 AMPC 규모가 2025년 10조원, 2026년 20조원에 이르고 보조금이 전액 지급되는 2029년 총 9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트럼프 재선 후 IRA가 폐지되려면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을 차지하고 이탈표까지 방지해야 하는데 공화당 의원·일부 지역의 이해관계를 따졌을 때 간단하지 않다”라며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행정부 권한을 활용해 IRA효과가 축소될 가능성은 높고 이 경우 기업들이 미래 이익을 기대하고 단행한 대규모 투자는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화 나선 정부…"민관협력 긴밀 대응"
정부는 이번 전기차보조금 폐지 계획과 관련해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IRA는 크게 △소비자 대상 전기차 세액공제 △투자 세액공제 △생산 세액공제 등 3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투자 세액공제는 배터리, 신재생 분야의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할 경우 투자 기업에 투자 규모의 최대 30%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생산 세액공제는 배터리, 신재생 분야 기업이 미국 내에서 생산·판매 시에 품목별로 규정된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외신 보도에서 투자 세액공제 및 생산 세액공제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IRA는 전기차뿐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만큼 제대로 된 가이드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강남에서 열린 제4회 '배터리 산업의 날' 행사에서 “보조금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며 “LG에너지솔루션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가 미국 대선 시나리오에 그동안 준비해왔고 앞으로도 잘 대응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석희 SK온 대표이사 사장은 13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배터리 업계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후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IRA에 포함된 AMPC인데 급격한 변화는 어렵지 않을까 판단한다”고 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IRA에 의존하지 않는 수익 창출이 중요하다며 공장운영 효율화를 비롯해 원가경쟁력 강화, 원재료 공급망 다변화, 기술혁신 등을 주문했다.
미국 현지에선 IRA 도입 후 확정 발표된 투자액 3460억달러(약 480조5940억원)이 대부분 공화당 의원들의 지역구에 배정돼 있다며 지역구 의원들이 트럼프의 뜻대로 지역구 의원들이 움직여 주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현지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지역구 의원들을 무시하고 IRA 보조금을 폐지하거나 축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했다.
더칼럼니스트 문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