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브랜드였어? 슈프림, 포르쉐와 협업한 '헬리녹스' 성공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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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녹스Helinox. 8년 전엔 이렇게 유명하지 않았어요. 언젠가부터 ‘슈프림과 최초로 협업한 한국 브랜드’로 알려지더니 나이키·포르쉐·BTS·라이카·디즈니…

쟁쟁한 글로벌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하더군요. 유명해진 덕일까요. 2018년만 해도 300억원이던 매출액은 2022년 770억원으로 올랐네요.

캠핑 의자에서 출발한 한국 브랜드인데, 꽤 대단하지 않나요? 궁금해져서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와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유럽 출장 중인 라 대표와 화상으로 꽤 오래 대화를 나눴죠.


헬리녹스 라영환 대표. ⓒ헬리녹스
📢스피커 :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

체어원. 지금의 헬리녹스를 만든 제품입니다. 접으면 어른 팔뚝만 합니다. 펼친 모양은 단순해요.

조개껍데기처럼 움푹 들어간 네모난 패브릭 의자에, 얇은 알루미늄 폴대 다리 네 개가 달려있어요. 의자 한 개 무게는 890g. 145㎏의 하중을 견딜 수 있죠.

2012년에 나온 이 의자 덕에, 헬리녹스는 세계 아웃도어 시장에서 꽤 알려진 브랜드가 됐습니다.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여기에서 나오죠.

단순해 보이지만 저희 가족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게 다 녹아있는 의자기도 해요.


아버지와 아들, 브랜드를 만들기로 하다

동아알루미늄DAC, 낯선 이름이죠. 아버지(라제건 대표)가 1988년 세운 회사예요. 텐트를 지탱하는 가느다란 폴대를 만듭니다.

백패킹 텐트 시장에서 텐트폴 점유율이 가장 높아요. 세계 3대 텐트 회사인 스웨덴 힐레베르그, 미국 빅아그네스와 니모 모두 우리 텐트폴을 씁니다.

어렸을 때 캠핑 좀 다녔겠다고요. 전혀요. 아버지는 늘 바쁘셨어요. 전 세계로 출장을 다니셨거든요. 얼굴 뵙기가 어려웠죠. 휴가철이 되면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하셨어요.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건 2009년이에요. 막 군을 제대하고 휴학 중이었죠. 글로벌 금융위기로 회사가 휘청였습니다. 뭐라도 도와야 했어요.


아웃도어 브랜드를 수입해 파는 일을 1년쯤 했을까요? 어느 날 아버지가 브랜드를 만들자고 하시더군요.

평생 남의 브랜드에 소재를 공급해 오셨잖아요. “우리 걸 만들어 팔아야 뭔가가 쌓일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아직 사업을 몰랐지만, 전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아웃도어 제품을 보면 늘 궁금했거든요. ‘왜 프라다 가방은 200만원인데 노스페이스 가방은 50만원일까.

뜯어보면 노스페이스 가방에 좋은 소재와 기술이 더 많이 들어가 있는데’라고 생각했어요. 브랜드란 뭘까, 프리미엄이란 뭘까를 고민하던 때였어요.

헬리녹스란 이름은 아버지가 지으셨어요. 태양의 신 헬리오스Helios와 밤의 여신 녹스Nox를 합친 말이었죠.

정사각형 도형에 빛이 새어 나오는 모양의 심벌은 제가 직접 그렸습니다. 이클립스, 개기일식을 형상화했어요.

헬리녹스 로고. ⓒ헬리녹스

체어원 : 강력한 제품은 가격에 구애받지 않는다

의자는 개발실 구석에서 한참 굴러다니던 아이템이었어요. 텐트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패브릭에 다리 네 개를 달면 되겠다는 아이디어만 분명했죠.

문제는 가격이었어요. 그땐 캠핑 의자가 보통 20~30달러였어요. 우리가 생각한 의자를 만들려고 하니 아무리 계산해도 도저히 팔 수 없는 가격이 나오는 거예요.

어느 날 아버지가 플라스틱으로 허브hub를 만들어오셨어요. 의자 양쪽 아래에서, 다섯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폴대를 잡아주는 장치였어요.

여러 개의 축으로 폴대를 접었다 펼 수 있었죠. 어떤 기술자가 와도 ‘이건 제대로 설계했다’고 할 정도로 멋진 부품이었어요. 개발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아버지는 수십, 수백번 설계도를 고쳐 그리신 거예요.

이거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전히 시장가보다 세 배는 비쌌지만,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공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서울의 원사 회사부터 대구의 제직 공장까지 찾아갔죠. 오래 앉아도 뒤틀리거나 늘어나지 않을, 아주 튼튼한 원단이 필요했어요.

봉제를 잡는 과정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중국의 봉제 공장에서 초기 물량 5000개에 모두 앉아보기도 했어요.

앉은 느낌이 편안하면 “예스”, 어디 한곳이 틀어졌거나 어색한 느낌이 들면 “노”를 외쳤죠.

그렇게 불량을 골라내 1000개가 넘는 제품을 버렸어요. 어떻게 박음질을 해야 할지 공장과 함께 찾아나간 거예요.


그렇게 만든 의자의 판매 가격은 99달러(약 12만8000원). ‘너무 비싸지 않을까’ 두려웠는데 괜한 우려였어요. 제품을 본 아웃도어 유통사들은 모두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미국 최대 아웃도어 매장 REI가 “PB 제품을 내자”고 제안할 정도로요. 체어원은 잘 팔렸습니다.

체어원이 왜 인기였을까, 가끔 생각해봅니다. 초반에 저희 의자에 열광했던 이들은 백팩커로 불리는 아웃도어 마니아들이었어요. 차나 자전거 없이, 배낭에 모든 생존 물품을 챙겨 산을 오르는 이들이었죠.

이들에게 체어원은 ‘세상에 없던 제품’이었다고 하더군요. 이 정도 휴대성에, 이 정도 편안함을 동시에 갖춘 의자가 그동안은 없었던 거예요.

그때 확인했어요. 일단 돈을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제품을 만드는 게 먼저란 걸 말이에요.

헬리녹스의 의자(체어제로)는 2017년 ‘백팩커스 에디터스 초이스’와 ‘아웃도어 어워즈 골드위너’ 상을 받았어요. 유럽 아웃도어 시장에서 최고라는 인정을 받기까지 5년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이에요.

헬리녹스 체어원 제품. ⓒ헬리녹스

컬래버레이션 : 꽃은 나비를 따라가지 않는다

한국에서 헬리녹스가 유명해진 건 2016년 슈프림과의 컬래버레이션 때였을 겁니다. 이후 세계적 브랜드와의 협업이 이어졌어요.

셀 수 없이 많이요. 가장 최근엔 스타벅스와 손잡고 사이드 테이블을 만들어 내놨죠.

저희는 매체 광고를 하지 않아요. 마케팅에 큰돈을 써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도 헬리녹스를 아는 분이 많은 건,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일 거예요.

헬리녹스가 어떤 브랜드와 무엇을 만들었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해요. 협업으로 탄생한 제품은 한정적이니 매력이 더 올라가죠. 자연히 광고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퍼지더군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곳과 컬래버를 할 수 있었냐고요. 헬리녹스가 먼저 협업을 제안한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희는 작은 브랜드잖아요. 큰 브랜드에 제안해 봐야 잘 성사되지도 않을 거예요. 글로벌 브랜드가 보통 저희에게 제안을 하죠. 슈프림도, 나이키와 포르쉐도 그랬어요.

그런 제안을 받을 때면 전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떠올라요. 할아버지가 생전에 늘 그러셨대요. “꽃이 나비를 따라가지 않는다”고요.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제품을 잘 만들면 된다, 그러면 영업이며 마케팅은 저절로 된다”는 말씀이셨어요. 아버지는 늘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사셨죠.


잊을 수 없는 협업은, 지난달 나온 베어브릭BE@RBRICK과의 컬래버 장난감이에요. 파란색 알루미늄으로 베어브릭을 만들고 가슴에 헬리녹스의 심벌을 새겨 넣었죠.

드물게 저희가 먼저 제안한 컬래버였어요. 제가 베어브릭을 좋아하거든요. 이 회사가 원목 베어브릭은 일본 최고 가구회사인 가리모쿠와, 크리스털 베어브릭은 유명 크리스털 브랜드인 바카라와 이미 만들었더군요.

그렇다면 알루미늄 제품은 꼭 우리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3년 반 동안 조금씩 손을 봐서 완성했고, 528만원에 한정판 출시했어요. 딱 50개만 만들었죠.

알루미늄으로 만든 아트토이가 아웃도어 브랜드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영혼을 담아 만든 물건은 어디에 둬도 멋지고, 영감을 전해줍니다.

그게 헬리녹스의 정신과 맞닿아 있어요. 그걸 보여줄 수 있으면 충분히 좋은 컬래버레이션 아닐까요.

2023년 6월 출시된 헬리녹스X베어브릭. ⓒ헬리녹스

세상이 끝날 것처럼 제품에 매달린다는 것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제품을 설계하는 데 참여하니 디자이너라고 할까, 아니면 제품을 만드니 제조업자라고 할까.

지금은 그냥 사업가라고 소개합니다. 결국 모든 걸 다 합친 게 사업이니까요.

헬리녹스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장인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물건을 만드는 일에 진심을 다해 몰입하는 사람.

아버지는 장인이세요. 저는 아버지와 제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똑같다고 하더군요.

장인에 대한 존경심이 있습니다. 제대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만큼 멋진 사람들은 없어요.

예전에 영광스럽게도 에르메스의 경영진을 만난 적이 있어요. 6대손이란 여성분을 만나 이야기도 들었고요.

인상적인 건,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어놓고 지금도 이 사람들은 오로지 제품에 매달려 살고 있다는 거였어요. 세상 진지하게요. 이걸 제대로 못 만들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요.

저런 마음으로 6대를 내리 살면 이런 브랜드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헬리녹스의 장인 정신이 담겨있는 스토리, 어떠셨나요? 오늘의 노트가 여러분의 하는 일과 만드는 제품·브랜드에 영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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