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만에 ‘괌옥’ 탈출한 관광객들...“1.5L 생수 한병으로 온 가족이 씻었다”
29일 오후 9시 26분 인천국제공항 제1 터미널 입국장 B게이트 앞. ‘수퍼 태풍 마와르’의 영향으로 현지 공항이 폐쇄돼 괌에 일주일째 체류 중이던 관광객 188명이 입국했다.
단전·단수와 생필품 부족에 시달렸던 관광객들은 대부분 모자를 쓰거나 후드티를 입는 등 단출한 차림새였다. 콧수염·턱수염이 거뭇거뭇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GUAM’이라는 글자가 적힌 가방이나 모자 등 기념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휴양지에서 입을 법한 야자수 무늬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셔츠를 입고 활짝 웃은 채로 입국하는 사람도 보였다.
이날 공항엔 일주일 넘게 얼굴을 못 본 가족을 환영하기 위해 입국장에서 대기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아내를 마중 나온 김모(42)씨는 “지난 20일에 아내가 친정 언니들과 함께 출국해서, 꼬박 열흘 간 아이들이 엄마를 보지 못했다”며 “아이들이 스케치북에 환영한다는 그림을 그려 같이 마중 나오게 됐다”고 했다.
남매가 함께 들고 있는 스케치북엔 ‘2023.05.20 괌 →2023.05.29 한국.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열흘 만에 만나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들은 두 팔을 벌리는 자세를 취하더니 “엄마를 꼭 안아 줄거예요!”라고 답했다.
그간 태풍으로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면서 “관광객들이 괌옥(獄)에 갇혔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188명의 관광객들은 항공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자마자 손뼉을 치고 환호 했다고 한다. 이들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깨끗한 물에 씻고 에어컨을 틀고 눕고 싶다”고 했다.
처음으로 입국장에 들어온 조모(38)씨는 “호텔에서 쫓겨나 렌터카 안에서 친구와 쪽잠을 자며 지냈다”며 “현지에서 알게 된 한국 관광객들의 도움을 받아 물이 나오는 호텔 방을 찾아다니며 간신히 샤워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조씨는 “집에 가자마자 샤워부터 개운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19일부터 가족 11명과 함께 괌 여행을 갔다는 김연(40)씨는 “단수가 된 상황에서 1.5L짜리 생수 한 병으로 가족들이 간신히 씻었다”며 “80세가 넘은 할머니와 2살배기 아이가 가장 고생이 많아 3명이 먼저 귀국하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이틀 동안 조리도 하지 않은 생 햇반과 단무지를 먹으며 버텼는데, 내일 당장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20일부터 괌에 체류했다는 박태홍(35)씨는 “부모님과 형제 4명이서 여행했는데 그간 숙소를 3번 정도 옮겨 다녔다”며 “노숙만 간신히 면했다”고 했다. 코로나 탓에 못 갔던 신혼여행을 뒤늦게 괌으로 갔던 홍모(34)씨는 “변기 물도 없어서 수영장 물을 퍼다 나르기도 했는데, 물과 전기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느꼈다”며 “여행을 갈 때보다 집에 돌아가는 게 더 설렐 줄은 몰랐다”고 했다.
만삭의 몸으로 남편과 여행을 떠난 안다경(33)씨는 “처음엔 어머니를 다시 보면 울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웃음만 나온다”며 “비행기가 한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박수를 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했다. 결혼 기념일 여행을 갔다는 김용길(58)씨는 “당뇨약을 챙겨먹는데, 5일치 분량의 약만 가져가서 마지막엔 약을 쪼개서 조절해 먹었다”며 “가족들이 무척 걱정했는데 드디어 귀국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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