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의 알짜 계열사인 HD현대오일뱅크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정기선 체제 전환을 맞은 그룹의 '친환경' 행보에 걸음을 맞춰왔지만 최근 환경오염 이슈에 연루되며 이미지 손상이 불가피해졌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기업공개(IPO)를 추진했으나 모두 무산됐다. 따라서 이번 악재로 HD현대가 10여년 간 공들여온 에너지 사업이 위축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금자산 늘었지만…단기차입금 2년 새 3.5배 폭증
HD현대오일뱅크는 정유사들의 최대 수익 지표인 정제마진 하락과 물가 상승 압력 등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에 따라 최근까지 '현금 곳간'을 불려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는 단기 차입금 증가에 따른 '착시효과'로 해석된다. 단기차입금은 1년 내 갚아야 하는 빚으로 장기차입금에 비해 이자율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HD현대오일뱅크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022년말 1764억원에서 올해 6월말 5208억원으로 집계됐다. 현금자산이 늘었지만 이는 차입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다. 같은 기간 단기차입금 규모도 덩달아 늘었다. 실제로 HD현대오일뱅크는 2022년 2313억원에 불과했던 단기차입금을 올해 6월 말 기준 7935억원으로 3.5배 가까이 늘렸다.
부채 증가도 부담 요소다. HD현대오일뱅크의 연결 기준 부채총액은 2021년말 12조8086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말 13조856억원으로 약 2년 새 88.9% 증가했다. 총 부채의 증가가 부채비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HD현대오일뱅크의 부채비율은 2018년 129.2%, 2019년 136.3%, 2020년 178.4%까지 치솟았다. 2021년 217.8%를 찍은 부채비율은 2022년 184.8%로 소폭 하락 이후 올해 상반기말 208.8%로 올랐다. 일반적으로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갈 때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불안하다고 판단한다. HD현대오일뱅크의 부채비율은 정유업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쟁사인 에쓰오일(S-Oil)의 부채비율은 올 상반기 기준 129.87%로 집계됐다.
HD현대오일뱅크의 '급전 당기기'는 현재진행형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올해에만 약 45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며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는 올 6월 3년물 700억원, 5년물 800억원 등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은 전액 채무상환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앞서 지난 2월 공모 회사채 발행에서도 2·3·5년물 등 총 3000억원 증액 발행에 나섰다.

과징금·배상액·사후조치까지…'1509억+α' 추산
공교롭게도 가장 최근 회사채 1500억원의 발행 시점은 환경부의 과징금 사전 통보 시점과 맞물린다. 환경부는 올 1월 HD현대오일뱅크에 공장폐수 무단반출 혐의(물환경보전법 위반)로 1509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사전 통보했다. 문제는 '페놀 오염수 배출' 사건과 관련해 HD현대오일뱅크가 부과받은 과징금 총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기존 과징금 1509억원에 페놀 폐수의 대기 증발 내용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HD현대오일뱅크 가스세정시설의 냉각수로 사용된 폐수 약 353만톤 중 36%인 약 130만톤을 대기로 증발됐다. 검찰에 따르면 의정부 의정부지검 환경범죄 합동 전문수사팀은 화학실험,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폐수 증발 시 페놀 성분이 함께 포함된 사실을 확인했다. 공무원 현장 점검, 악취로 인한 외부 민원 발생 시 일시적으로 폐수 차단 후 깨끗한 용수를 투입하는 수법으로 범행을 은폐한 정황까지 포착됐다. 금강유역환경청과 환경부는 현재 해당 내용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 시민사회의 책임 촉구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이들은 HD현대오일뱅크가 대산공단 전 노동자와 지역주민에게 사과하고 건강 역학조사를 진행할 것을 요청했다. 서산 지역사회 주민들도 집단소송을 예고했다. 한석화 서산시의회 환경오염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도 직결된 만큼 배상금을 비롯해 추가 집단행동을 이행할 것"이라며 "나아가 HD현대오일뱅크 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역주민 피해보상, 사업장 안전관리에 대한 사후조치까지 포함한다면 추후 HD현대오일뱅크가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친환경'…HD현대오일뱅크는 빠졌다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그간 '친환경' 전환에 앞장 서왔다. 이달 초에도 정기선 사장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가스텍 2023 현장에서 "친환경 시대 선도적인 첨단 기술 개발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HD현대오일뱅크의 악재가 HD현대 그룹 이미지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간 정기선 사장은 조선·에너지·산업기계 부문 삼각편대를 완성하고 그룹 친환경 미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수차례 밝혔다. 정 사장은 지난해 열린 그룹 50주년 기념식에서 직접 미래 비전을 발표하며 '바다의 무한한 잠재력 실현(조선 부문)', '지속 가능한 미래 에너지 생태계 구현(에너지 부문)', '시공간적 한계를 초월하는 산업솔루션 제공(산업기계 부문)' 등 3대 핵심 사업 비전을 소개했다.
이같은 그룹 행보에 발을 맞춰온 HD현대오일뱅크는 '페놀 사태'로 곤혹스러운 모양새다. 앞서 HD현대오일뱅크는 지속적인 친환경에너지 신규사업 추진을 통해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수소에너지, 이산화탄소 자원화, 화이트 바이오 등 미래 비전을 창출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연구개발 비용만 연간 수백억 원에 달한다.
HD현대오일뱅크는 현재 85%에 달하는 정유사업 매출 비중을 2030년까지 45%로 줄이고 수소, 화이트 바이오, 친환경 화학·소재 등의 영업이익 비중을 7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이번 사태로 발목이 잡혔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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