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좋은 명분이 천주교였죠
안동 김씨 내에서도
천주교 신자들 몇 있었고

이를 빌미로 풍양 조씨는
천주교 무리를 척결해야 한다는 논리로
천주교 신자들과
안동 김씨 및 그 일파를 엮어
안동 김씨 세력을 많이 위축시켰죠

성리학만을 고집하던 조선에서
천주교란 역모와 동일하게
간주되었기에
수렴청정을 맡던 순원왕후조차
안동 김씨였음에도
자신의 가문을 지켜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안동 김씨가
많이 위축이 되어 있던 시기에
기해박해로부터 2년 후 1841년
순원왕후는 여론에 몰려
수렴청정을 거두기로 하고
헌종은 15살의 나이로
친정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또 2년 후였던 1843년에는
안동 김씨 집안의 헌종 아내
효현왕후 김씨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안동 김씨의 위세는 그 이전에 비해
정말 추락하였고
이 틈을 타 풍양 조씨가 득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