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가까이 ‘왜’ 죽였는지도 몰라…이승만 정부 민간인 학살 ‘민낯’
최근 창원지법 마산지원서 재심 무죄 판결 선고
“이승만 때 좌익몰이 피해…과거사 바로 세워야”

서울에 거주하는 심재섭(76) 씨는 지난 3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을 찾았다. 이날 고 심상직 씨 국가보안법·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2호(이하 미군정포고령 제2호) 위반 재심 사건을 심리한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형사1부(한지형 부장판사, 손고은·김도윤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심상직 씨는 심 씨 아버지다.
심상직 씨 미군정포고령 제2호 위반 사건은 구체적 혐의도 없는 무고한 민간인을 국가가 학살한 적나라한 과거사의 한 단면이다. 세계사의 큰 흐름이 한 민간인과 가족 삶에 미친 영향을 엿볼 수도 있다.
심상직 씨는 1949년 3월 2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진해경찰서에 구속됐다. 중국 대륙에서 국민혁명군과 인민해방군 사이에 일어난 국공내전 승기가 중국공산당으로 기울던 즈음이다. 세계사도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하면서 냉전기에 접어든 때다.
"당시 할아버지께서 남조선노동당 지구당 위원장을 맡았었고 여운형계(좌우합작을 주장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초대 위원장)였던 것 같아. 아버지가 붙잡히기 전 할아버지를 설득해 전향 각서를 썼다고 들었어. 그리고 이듬해 봄 아버지가 끌려가셨지. 처음 조부께서는 큰일이 아닌 것처럼 여겼다고 들었어. 아버지가 붙잡힌 뒤 나를 낳고 얼마 안 된 어머니까지 조사를 받자 그때서야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으신 것 같아."
심상직 씨는 구속 10일 만인 1949년 3월 30일 부산지방검찰청 마산지청으로 넘겨져 마산형무소에 수감됐다. 이듬해인 1950년 4월 18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국가보안법, 미군정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심상직 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공포됐다.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을 계승했다. 일본 내 공산주의자를 처벌하려고 제정됐던 치안유지법은 조선 독립운동, 사회주의 운동까지 탄압하는 수단으로도 쓰였다. 치안유지법은 1945년 연합군 최고사령부령으로 폐지됐다가, 반국가단체 활동을 규제하는 국가보안법으로 되살아났다.
징역형으로 마무리됐어야 할 사건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비극으로 끝맺었다. 1950년 7~9월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 마산지구CIC(방첩부대), 마산지구헌병대, 마산경찰서 경찰, 마산형무소 형무관에게 마산형무소 재소자와 구금됐던 보도연맹원이 총살되거나 옛 마산 구산면 바다에 수장됐다.
최소 717명,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등으로 신원이 확인된 수만 359명이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파악한 마산형무소 희생자 명단에는 심상직 씨 이름도 있었다. 마산육군헌병대에 이감돼 군법회의에서 '사형'이 언도됐다. 심상직 씨 나이 31세 때 일이다.
지금까지 심상직 씨에게 적용된 정확한 공소사실은 밝혀진 적이 없다. 범죄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판결문, 수사·공판기록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남로당원이었던 점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민간인이 구체적 혐의도 없이 '좌익'으로 몰려 목숨을 잃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2년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심 씨 사건을 진실규명 결정했다. 미군정포고령 제2호는 1945년 8월 15일 일본군이 연합군에 항복한 뒤 당시 맥아더 태평양미육군최고사령관이 한반도 북위 38도선 이남에 미군정을 공포할 때 포고했다. 1949년 심 씨가 붙잡힐 때는 이미 미군정은 종식됐다.
미군정포고령 제2호 자체도 적용범위가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라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돼 위헌·무효라는 것이 진실화해위원회와 사법부 판단이다. 심상직 씨 재심 사건을 심리한 창원지법 마산지원 한지형 부장판사도 "죄형법정주의 위배가 명백한 포고 제2호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위헌·무효인 법령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소송기록이나 증거가 발견되거나 제출되지 않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승만 정부가 수많은 사람을 적으로, '좌익'으로 몰아서 죽였던 거지. 이후에도 단죄하지 못한 역사의 아픔이 있기 때문에 과거사 진상규명은 계속돼야 해. 여전히 한 맺힌 유족과 피해자가 많을 거야." 심재섭 씨가 말했다.
/최환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