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는 취식 안되는 데 왜 지하철은 될까 [질문+]
2018년 조례 제정 이후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 등
버스에 들고 탑승할 수 없어
같은 대중교통인 지하철은
관련 조례 등 법망 아예 없어
불편은 애먼 승객 몫으로 남아
마시던 음료를 들고 버스에 올라서면 탑승을 제지당한다. 버스기사의 법적 권한이다. 서울시는 2018년 관련 조례를 만들어 시내버스에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ㆍ포장을 뜯은 음식 등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하철에는 관련법이 없다. 그래서인지 승객들이 지하철에서 '먹방'을 하는 일이 영상을 타기도 한다. 왜일까.
# 20대 직장인 차은경씨는 며칠 전 출근길 지하철에서 불편한 상황을 겪었다.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고 있는데 바로 옆 사람이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해온 음료를 들고 있더라고요. 저랑 부딪혀서 옷에 묻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였어요."
# 대학생 이현주씨는 지난해 하굣길 지하철에서 옆자리 사람이 쏟은 커피에 옷이 흠뻑 젖은 경험을 갖고 있다. "그 사람이 미안하다고 사과하길래 세탁비를 요구했어요. 그랬더니 되레 '거지냐'고 비난하더라고요. 그래서 지하철에 탈 때면 지금도 조심해요."
# 은경씨와 현주씨가 예민해서일까. 아니다. 지하철에서 '테이크아웃 음료'를 마시는 이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흘린 음료 탓에 피해를 봤다는 시민들의 경험담도 숱하다. 이는 사람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대나 타고 내릴 때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행여 음료를 바닥에 쏟기라도 하면 '미끄러짐' 등 2차 사고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지하철만 이런 걸까. 버스는 어떨까.
답은 뜻밖이다. 지하철과 달리 버스는 음료를 들고 탈 수 없다(서울 시내버스 기준). 서울시가 2018년 조례를 제정해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테이크아웃 음료)나 포장을 뜯은 음식 등을 들고 시내버스에 타지 못하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이 조례(서울특별시 시내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 운행기준에 관한 조례 제11조 6항)를 근거로 버스기사는 음료를 들고 타려는 승객의 탑승을 거부할 수 있다. 음료가 다른 승객에게 흘러 생기는 사고와 차내 혼잡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럼 지하철엔 왜 테이크아웃 음료 등을 들고 탑승할 수 있는 걸까. 무엇보다 관련법이나 조례가 없다. 법이 없는 이유는 버스와 지하철의 사정이 다르다는 거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버스와 달리 지하철은 진동이 적고 급정거하지도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역내 모든 상황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버스는 승객이 탑승할 때 기사가 확인할 수 있지만 지하철은 기관사와 승객의 공간이 분리돼 있다. 적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유는 또 있다. 지하철은 버스와 달리 운영기관이 많다. 가령, 서울교통공사는 1~8호선, 9호선 2단계 구간을, 서울시메트로는 9호선 1단계 구간을 운영하는 식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버스와 달리 서울 지하철의 운영기관은 13개나 있어서 일괄적으로 합의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철도운영기관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은 건 아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여객운송약관'에 "불결 또는 악취로 다른 여객에게 불쾌감을 줄 우려가 있는 물건의 휴대를 금한다"는 내용을 명시했지만, '테이크아웃 음료'가 불쾌감을 줄 우려가 있는 물건인지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지하철 1~4호선의 환경을 담당하는 서울메트로환경이 2019년 설치한 '음료 수거함'도 효과가 불투명하다. 이는 수거함에 음료를 쏟으면 관을 타고 내려가 생수통에 고이는 방식이다. 서울 지하철 전체 276개 역사 중 196개 역사에서 음료 수거함(691개)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홍보가 부족해 음료 수거함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숱하다.
이런 이유로 일부 국가는 지하철에서의 음식물 섭취를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 이를 어길 시에 대만은 7500TWD(약 31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싱가포르도 51만원 상당의 벌금을 매긴다. 굳이 해외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서울시 버스 규제'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올해 초 한 시민은 JTBC '사건반장'이란 프로그램에 오전시간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2호선에서 곰탕 컵라면을 먹는 승객의 모습을 제보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한 승객이 지하철에서 젓가락을 들고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영상을 본 이들 중 상당수는 '지하철에선 왜 취식이 가능한지'란 의문을 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시와 철도운영기관은 법망을 강화할 계획이 없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현재 운영 중인 '여객운송약관'을 근거로 시민들의 불편 신고가 들어오면 보안관ㆍ역직원이 출동하고 있다"면서 "당장은 버스처럼 관련 법망을 구축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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