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원 깨지던 모바일 게임을 3000만원에, 한국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

UGC 게임 기반 커넥티드 미디어 스튜디오 ‘벌스워크’ 윤영근 대표
UGC 게임 기반 커넥티드 미디어 스튜디오 ‘벌스워크’ 윤영근 대표. /더비비드

게임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승부를 겨루며 즐기는 놀이를 말한다. 최근 이러한 정의를 뛰어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등장했다. 게임 속 세상에서 상황극을 하거나, 정해진 규칙 대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게임이 곧 하나의 세계관이 되고, 사용자들은 그 안에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용자 생성 콘텐츠를 뜻하는 UGC(User Generated Contents)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UGC 기반 커넥티드 미디어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윤영근(39) 벌스워크 대표가 주목한 시장이 바로 여기다. 윤 대표를 만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어떤 시장보다 선명한 UGC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오징어 게임

14억 플레이를 돌파한 솔스 RNG. /윤영근 대표 제공

벌스워크는 아시아 최대 UGC 게임 개발사다. 단순히 게임을 만드는 것을 넘어 게임과 영상 콘텐츠를 연결한 ‘커넥티드 미디어 스튜디오’를 지향한다. 로블록스(ROBLOX)나 포트나이트의 UEFN(Unreal Editor for Fortnite)과 같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게임 속 캐릭터·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다시 유튜브·틱톡 등으로 바이럴해 게임으로 유입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개인 창작자를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도 한다. 로블록스 생태계에서 자란 사용자 중 개발 역량이 뛰어난 이들을 발굴하고 있다. 2025년 상반기에는 800만원의 상금을 걸고 로블록스 게임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현재 로블록스 인기 게임 중 하나인 솔스 RNG(Sol's RNG)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2025년 벌스워크X노페어 게임 대회 시상식 현장. /윤영근 대표 제공

UGC 게임 개발사의 주 수입원은 로블록스에 있다. 로블록스를 통해 공개한 게임에서 유저가 결제하면 그 금액의 37.5%가 개발자에게 돌아간다. IP사와 직접 협업하기도 한다. 벌스워크는 네이버 웹툰, 더 핑크퐁 컴퍼니 등과 IP 관련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지난 8월에는 ‘오징어 게임’을 활용한 2종의 게임을 선보였다. '오징어 게임: 팀 데스매치'는 오징어 게임 배경의 전장에서 진행되는 팀 데스매치 모드다. '세모 시뮬레이터'에서는 사용자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탈락자를 처리하는 세모 병정의 역할이 된다.

◇TV, 유튜브, 그다음은 게임?

서울대에서 시각디자인학을 복수 전공하며 그렸던 그림(왼쪽)과 졸업 전시(오른쪽). /윤영근 대표 제공

서울대 경제학과 06학번이다. 시각디자인학을 복수 전공하고 제일기획 사회 공헌 캠페인 본부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당시만 해도 유튜브는 10대가 주로 쓰는 플랫폼이었는데요. 자유분방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걸 보면서 조만간 TV 전성시대를 무너뜨리겠다고 느꼈죠. 마침 CJ ENM에 유튜브 전담팀이 생겼습니다. 2015년 사업 담당자로 입사해 PD·영업·매니저를 한꺼번에 맡았어요. 유튜버를 발굴하거나 함께 콘텐츠를 기획하고 촬영도 했습니다.”

당시 글로벌 시청 시간을 기준으로 상위 100개 유튜브 채널·영상을 보면 절반 이상이 ‘마인크래프트’였다. 마인크래프트는 채광을 콘셉트로 한 게임으로, 오픈월드(룰·보상·처벌이 열려있는 게임) 샌드박스(사용자가 게임을 변형해 새로운 모드를 만들 수 있는 구조) 방식이다. “마인크래프트 게임 유튜버와 예능 콘텐츠를 촬영했을 때, 유명 BJ와 비교해 방송 기량이 부족한데도 시청 시간은 훨씬 길더군요. 앞으로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게 될 10대들이 게임과 영상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소비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CJ ENM 대형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제작진과 함께 촬영한 기념 사진. /윤영근 대표 제공

유튜브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더 확신을 굳혔다. “기존에는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도 광고주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다 보면 콘텐츠의 소재부터 기획·제작이 모두 한정적이죠. 유튜브 제작 방식은 정반대예요. 자본에서 자유로운 콘텐츠는 확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전문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대중이 직접 제작자가 되기 때문이죠. 게임계의 유튜브는 ‘로블록스’라는 플랫폼입니다. 커뮤니티적인 성격도 짙어요. 로블록스를 활용해 애니메이션·게임·영상 콘텐츠를 결합한 스튜디오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CJ ENM 재직 시절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사내 벤처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2019년 사직서를 제출했다. “혼자 뛰어들기엔 큰 프로젝트였어요.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 김창욱(49) 대표의 도움으로 사내에 팀을 꾸렸습니다. 네이버라는 울타리 안에서 제페토 게임을 만들어보면서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죠. 드라마·예능·애니메이션으로 게임을 만들고, 이 IP(창작물 권리)로 게임을 만들어서 유튜브·틱톡으로 바이럴하는 구조를 떠올렸습니다. 이른바 ‘커넥티드 미디어(connected media)’죠. 그 전략 중 하나로 유튜브 채널 픽시드(pixid·2025년 9월 기준 구독자수 76.9만명)도 만들었습니다.”

◇10대가 소비하는 콘텐츠, 10대에게 답을 구한다

UEFN에서 1위를 했던 BOX PVP. /윤영근 대표 제공

2022년 UGC 게임 기반 커넥티드 미디어 스튜디오 ‘벌스워크’를 설립했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았어요. 전투 게임 중 하나인 ‘포트나이트’가 UEFN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는데요. 게임 내에서 총싸움 게임 모드를 변형해 개발한 ‘BOX PVP’가 전체 유저 제작 게임 중 전 세계 1등을 했습니다. 월 매출이 15억원에 달했죠. ‘이제 됐구나’ 싶었지만 2개월 만에 사용자 수가 급격히 줄더군요. 기대가 커서인지 실망도 컸습니다.”

로블록스 내 게임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MAU(월 순 사용자 수) 200만명 규모의 게임을 만들었지만 순위권에 들지는 못했습니다. 직접 만들기보다 잘 만드는 친구들을 섭외하는 전략으로 선회했어요. 그때 만난 팀이 솔스 RNG였습니다. 회사를 같이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팀원들이 모두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부모님의 동의를 받기까지 6개월 가까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솔스 RNG가 자회사로 합류하면서부터 벌스워크도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2024년 미국 로블록스 본사에 방문해 벌스워크를 소개하는 모습. /윤영근 대표 제공

벌스워크의 핵심 경쟁력은 로블록스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창작자들을 발굴하는 것이다. “솔스 RNG 개발자를 통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로블록스 유튜버인 ‘노페어’도 만났어요. 로블록스 개발은 로블록스 경험이 없으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아무리 유능한 모바일 게임 개발자라도 이 생태계에선 통하지 않죠. 평균 연봉 2억~3억원을 받는 사람보다 로블록스 생태계에서 성장한 10대 개발자들이 훨씬 더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윤 대표가 직접 솔스 RNG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 한번 시작하면 1시간 정도는 금세 지나간다. /더비비드

비즈니스 모델도 확실하다. 유튜브가 조회수로 수익을 정산하듯 로블록스 내 정산 시스템이 있다. 사용자가 결제한 금액의 37.5%를 크리에이터(개발자)가 가져간다. 그 외에도 체류시간, 리텐션(특정 기간 서비스를 계속 사용하는 고객의 비율), 결제율에 따라 보너스가 주어진다. “IP를 가진 브랜드(IP 홀더)와 협업해 게임을 공동개발하기도 합니다.벌스워크는 네이버 웹툰, 더 핑크퐁 컴퍼니와 IP 협약을 맺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비롯 많은 IP 홀더들이 UGC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새로운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그 IP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겠죠. 게임 산업도 중요한 활용처 중 하나예요. 다만 기존 공식으로 모바일 게임을 만들면 최소 수십억을 들여서 3년 이상 개발해야 합니다. UGC를 이용하면 3000만원으로 3개월 만에 만들 수도 있어요. 빠르게 유행이 바뀌어가는 콘텐츠 시장에서 UGC가 경쟁력이 있는 이유죠. 가령 지금 로블릭스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활용한 맵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UGC 게임 산업, 지금이 바로 ‘골든 타임’

벌스워크 사무실 입구에는 VW MineCrafe, 픽시드, 썰플리 등 유튜브 채널 골드·실버 버튼과 아기유니콘, 백만불 수출탑 등 상패가 전시돼 있었다. /더비비드

벌스워크의 매출은 2022년 30억 원, 2023년 20억 원이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50억 원을 기록하며 연 매출 10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지원재단)의 도움을 받아 일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일본은 뒤늦게 UGG 관련 스타트업을 밀어주는 분위기입니다. 개발자가 많지는 않지만 일본 정부와 덴즈라는 광고회사가 8000억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죠. 코단샤(출판사), 반다이남코(게임 개발사), 토에이(영화 배급사) 같은 회사들도 다 로블록스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게임을 규제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페이커’ 같은 스타 플레이어가 나오면서 게임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점차 바뀌는 중이죠. 하지만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강합니다.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기보다는 그라운드 자체를 장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UGC가 바로 미래 세대의 게임과 영상 콘텐츠가 펼쳐질 그라운드예요. 감히 단언컨대, UGC에 대한 지원이 늦을수록 국가적 손해입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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