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펀드 원금 100% 반환 배경은…'허위·과장' 인정
거짓 신용·재무로 투자 권유…'계약취소' 해당
최대 판매사 신한투자증권 "법률 검토 진행"
4800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으로 물의를 빚은 독일 헤리티지 펀드에 대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투자금 전액반환 결정을 내렸다. 펀드 상품제안서의 주요 내용이 부풀려지거나 거짓으로 작성돼 투자자의 착오를 부르기 충분했다는 게 그 근거다.
금감원은 다만 헤리티지 펀드를 판매한 국내 증권사와 은행들의 '고의성'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사기일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지만 결국 이를 입증하지 못했고 앞서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에도 적용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논리를 따랐다.
신한투자증권을 비롯한 펀드 판매사들이 만약 이번 결과를 받아들여 분쟁조정이 성립되면 일반투자자 기준 약 4300억원의 투자원금이 반환될 전망이다.
시행사 자본잠식 등 엉터리…이면계약에 수수료 무려 24%
김범준 금감원 소비자권익보호 담당 부원장보는 22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진행한 백브리핑에서 "6건의 분쟁조정 신청 민원에 대해 민법 제109조에 따른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인정하고 투자원금 전액반환을 6개 판매사에 권고키로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당초 독일 헤리티지 펀드와 관련해 금감원에 들어온 분쟁조정 신청은 총 190건이다. 신한투자증권이 153건으로 가장 많고 NH투자증권 17건, 현대차증권 11건, 하나은행 4건, 우리은행 4건, SK증권 1건 순이다. 다만 금감원은 이들 펀드 판매사별로 1건씩을 대표해 총 6건을 분조위 테이블에 올리고 심의해 이번 결과를 도출했다. 이에 따라 나머지 184건에 대해서도 '원금 전액반환' 권고가 그대로 적용된다.
독일 헤리티지 펀드는 판매 당시 현지 시행사였던 돌핀트러스트(현재 저먼프로퍼티그룹·GPG)가 독일 문화재 등재 부동산을 사들여 고급 주거시설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에 싱가포르의 반자란자산운용이 대출펀드를 조성하고, 국내 금융회사 7곳이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DLS) 형태로 판매했다. 그러나 시행사가 재개발 인허가 취득에 실패하고 파산하면서 펀드 환매가 무기한 중단됐다.
펀드를 판매한 금융회사는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하나은행 △우리은행 △현대차증권 △SK증권 △하나증권 등 7곳이다. 2017년 4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판매된 4885억원 가운데 신한투자증권(3799억원) 비중이 80%에 육박해 가장 크다. 피해계좌 수 또한 신한투자증권(1523좌)이 전체 1849좌의 82% 이상으로 가장 많다.
김범준 부원장보는 "손해배상과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이번 분쟁조정을 진행했다"며 "2번의 법률자문과 3번의 사전간담회, 연이은 분조위를 통해 검토한 결과 환매 중단의 원인이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분조위는 헤리티지 펀드 상품제안서에 기재된 내용 대부분이 거짓 또는 과장이었기 때문에 계획대로 사업이 시행되는 것은 물론 투자 및 회수 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헤리티지 펀드에서는 독일 현지 시행사의 사업 이력과 신용도, 재무상태가 매우 중요했다. 만기 상환을 담보하는 주요 장치가 모두 시행사에 맡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 부원장보는 그러나 "제안서에 기재된 시행사의 많은 사업 이력과 높은 신용등급은 거짓 또는 과장이었고, 재무상태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다"며 "시행사의 재무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첫번째 안전장치인 시행사의 20% 수준 투자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행사가 20% 수준의 투자를 해야 할 계약상의 의무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면서 "후순위 투자가 이행되지 않으면 담보비율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담보 부동산을 매각하더라도 투자금을 정상적으로 회수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언급했다.
실제 헤리티지 펀드 상품제안서에는 독일 시행사가 현지 톱5 회사로 2008년 설립 이후 총 52개의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현재 5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기재돼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고 사업이력 역시 헤리티지 사업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동산 매입 시 △시행사가 매입금액의 20%를 투자하고 △분양률이 65% 미만이면 △은행대출로 상환하고 '인허가·분양과 무관하게' △시행사의 신용으로 상환한다는 내용 또한 거짓으로 밝혀졌다. 시행사의 신용등급과 재무상태로는 20%의 투자가 불가능했던 데다 실제 투자한 사실도 없었던 것이다. 김 부원장보는 "확보한 2014년 재무제표상 시행사와 자회사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시행사의 신용을 통한 투자금 상환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부연했다.
상품제안서와는 다른 이면계약 사실도 드러났다. 당초 헤리티지 펀드는 투자 이후 2년간 약 5.5%의 수수료만 지급한다고만 설명했다. 국내 판매사 선취수수료 2.5%에 싱가포르 운용사의 운용수수료 3%가 더해진 수치다. 그러나 금감원 확인 결과 이면계약이 있었고 실제 수수료는 무려 24.5%에 달했다. 이 수수료를 지급하면 시행사가 투자를 예정했던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분조위는 이 같은 허위사실로 펀드가 판매된 만큼 일반투자자에게 자기 책임의 원칙을 묻기는 어렵다고 봤다. 김 부원장보는 "제대로 된 정보만 주어졌다면 누구라도 이 펀드에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신한투자증권 등 판매사들이 투자자 착오를 유발한 것으로 인정해 이들이 투자원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판매사도 수락하면 20일 이내 조정 성립…4300억 반환될 듯
이번 분조위 결과는 분쟁조정 양 신청인인 투자자들과 펀드 판매사들에게 각각 통보된다. 이들은 이후 20일 이내에 조정안 수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판매사들까지 투자금 전액반환을 받아들이면 금융소비자보호법 제39조에 따라 이들 분쟁조정에는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
조정이 성립되면 나머지 일반투자자에 대해서도 이번 결정내용에 따라 자율조정이 진행된다. 원만하게 조정절차가 이뤄질 경우 약 4300억원의 투자원금이 반환된다.
문제는 판매사가 불복할 경우다. 이 경우 분쟁조정은 결렬되고 소송 등으로 이어져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 다만 금감원은 이에 대한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진 않다.
이날 브리핑에 함께 참석한 윤덕진 금감원 분쟁조정3국장은 "소송으로 가면 여러 가지 변수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과거 (라임·옵티머스) 사례를 보면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판매사들이 조정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라임·옵티머스 펀드에 대해서도 분조위는 투자금 100% 반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판매사들은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이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헤리티지 펀드 판매사들도 분조위 조정을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펀드 최대 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은 이날 "분조위의 계약취소 결정에 대해 법률 검토를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투자자 보호와 신뢰 회복이라는 원칙 아래 종합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고, 이사회에서 조정안 수락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판매금액이 243억원으로 두번째로 많은 NH투자증권 측은 "분조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내부 의사결정기구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금감원은 독일 헤리티지 펀드의 '사기' 판매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았다. 펀드 판매사들이 사전에 펀드의 부실 여부를 인지하고도 이를 팔았는지에 대한 의심이다. 그러나 사기 성립의 전제조건인 '고의성'을 금감원은 끝내 입증하지 못했다.
윤 국장은 "판매사들이 헤리티지 펀드의 부실을 언제부터 알았는지에 대한 부분은 우리 금감원도 상당히 궁금한 부분"이라며 "그러나 판매사들은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려면 고의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현지 시행사나 판매사의 고의 여부를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한수연 (papyrus@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