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온기가 이불 사이로 스며든 이른 봄, 나른하게 늘어진 몸을 이끌고 요가원을 찾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땀 한 땀 자세를 만들어가며 애쓰기를 수차례. 어느덧 인내에 익숙해진 몸에서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조화로움의 절정, 하타요가
요가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한 후에야 요가에도 종류가 여럿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가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긴 역사만큼 종류도 방대하다. 현대인들에게 흔히 알려진 요가는 4개. 한 동작을 긴 호흡으로 오래 유지하면서 자신의 몸에 집중하는 하타요가, 동작이 물 흐르듯 연결돼 유산소 운동 효과가 있는 빈야사 요가, 여러 가지 시퀀스 동작을 연결하는 아쉬탕가 요가, 명상과 휴식을 중심의 힐링 요가로 알려진 시바난다 요가 등이다. 그중에서 하타요가를 선택한 건 쉽게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작이 어려운 만큼 몸과 정신 건강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체적으로 올바른 자세와 코어 근육 강화에 도움을 줘 관절염과 비만, 비대칭을 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운동이다.
하타요가의 자세한 뜻을 찾아보면 이렇다. ‘하’는 힘차고 강한 해를 ‘타’는 부드럽고 미세한 달을 뜻하는 글자를 의미해, 음과 양의 에너지 조화를 수행하면서 몸과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해주는 수련 방법이다. 하타요가는 자세, 호흡, 명상 3가지로 이루어진다. 한 동작을 최소 2~7분 이상 머무는 정적인 수련 방법이기 때문에 유연성과 근력을 키워주는 것은 물론, 한 동작에 머무는 시간 동안 마음을 다스리면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호흡할 수 있다. 이는 몸과 마음에 평화를 주기 때문에 인도에서는 19세기부터 정신 수행법으로 지정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례없는 재해와 질병을 겪으며 몸과 마음을 함께 챙기는 방식으로 요가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요가 인구는 3억 명, 우리나라의 요가 인구도 무려 300만 명에 달한다. 이전에는 건강법과 미용법으로, 또는 일종의 명상으로 보급되었다면 지금의 요가는 몸과 호흡을 단련하며 주어진 삶을 지혜롭게 대하는 자세를 배우는 수련이다.
인도의 하타요가 창시자 스와미 시바난다는 이렇게 말했다. “하타요가는 인간 존재의 발전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육체의 잠재력을 탐구하고 마음과 육체를 꾀하며 더 높은 자아와 접촉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의 아주 작은 행위에도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쏟아라. 이것이 곧 성공의 비결이다”
스스로를 돌보는 경험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에디터를 늘 따라다니는 고질병이 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생긴 일자목과 장시간 지탱하느라 뻐근한 허리, 일상 곳곳에서 얻는 스트레스는 각종 통증으로 ‘어서 어떻게 좀 해봐!’라며 호소하고 있었다. 물리치료부터 헬스까지 안 해본 게 없으나 근본적인 원인이 사라지지 않으니 일시적으로 좋아질 뿐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원점이었다. 각종 치료는 매일 꾸준히 하기에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난 토요일, 버릇처럼 목과 어깨를 잡고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을 본 한 친구가 요가를 추천했다. 일상은 반복되는데, 잠깐의 신체적인 치료만으로는 나을 수 없다는 것. 요가로 꾸준한 수련을 통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건강해졌다고 말하는 친구의 얼굴이 유달리 평온하고 밝아 보여 설득력이 있었다. 바로 다음날, 친구가 참여하는 하타요가 원데이 클래스에 따라나섰다.
요가원에 들어서자 청량한 종소리와 함께 향긋한 레몬그라스향이 밀려왔다. 일요일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양껏 쏟아지는 큰 창문과 정갈한 원목가구들, 곳곳에 늘어진 풀잎들까지.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만으로 벌써 힐링이 시작된 듯한 기분이다. 줄지어 정리된 요가 매트 하나를 골라 자리를 잡고 매트를 펼쳤다. 내 몸보다 살짝 큰 이 사각형의 공간이 오늘의 내 수련 공간이다.
인원이 모두 모이자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시작됐다. 첫 번째 동작은 수카아사나Sukhasana. 언뜻 ‘아빠 다리’와 비슷해 보이는 요가의 기본자세다. 매트 가장 안쪽에 엉덩이뼈를 바닥에 꾹 붙여 앉아 다리를 곧게 편 후 오른발을 왼 대퇴부 아래, 왼발을 오른 대퇴부 아래 가져온다. 머리와 목, 등까지 수직으로 곧게 세운 다음 눈을 감고 전신을 이완한다. 팔 역시 곧게 펴지 않도록 힘을 빼며, 손은 편안하게 무릎에 올려둔다. 전신에 힘이 충분히 빠진 상태에서 가슴 위에 손을 얹고 호흡을 느껴본다. “나의 호흡을 바라보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이 처음에는 의문스러웠으나 곧 코와 입을 통해 퍼져 나온 호흡이 느껴졌다. 평소에 의식하지 않던 호흡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다음은 두 발을 맞대고 사타구니 쪽으로 가져와 두 손으로 발을 가볍게 잡는 나비 자세, 받다코나아사나Baddha Konasana. 골반과 허리 부위 근육을 강화해 주는 동작이다. 천천히 무릎을 모아 발등이 바닥에 닿도록 무릎을 꿇어 비라아사나Virasana로 자세를 바꾼다. 이때 다리를 양옆으로 살짝 빼내어 엉덩이가 바닥에 닿도록, 발바닥은 하늘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발목과 무릎을 유연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복부를 편안하게 해줘 소화를 돕는다. 비라아사나 자세를 유지하며 양 팔을 교차해 등을 감싸안아 날개 뼈가 서로 멀어지도록 한다. 이후 뒤로 손깍지를 한 채 바닥에 붙여 날개 뼈가 서로 가까워지도록 한다. 한 동작마다 오래 호흡하기 때문에 뼈의 움직임과 근육의 쓰임이 놀라울 만큼 세밀히 느껴졌다. 동작을 수행할 때마다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곳을 움직이며 몸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기분을 느끼며 평생 내 몸을 의식하고 돌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하타요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동작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러닝이나 헬스처럼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는 수련시간이 길고 한 자세에 오래 머물기 때문에 입문자에게는 힘들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디터처럼 오래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은 몸이 굳어 인내의 시간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왼쪽 무릎을 구부려 바닥에 대고, 오른쪽 발로 땅을 디딘 후 팔을 꼬아 드는 바타야나아사나Vatayanasana 동작부터 인내는 더욱 썼다. 한쪽 발과 한쪽 무릎으로 균형을 잡기도 힘든데 팔을 가운데로 꼬아 들고 있으려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떨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악어 자세라 불리는 휴식 자세인 마카라사나Makarasana에 들어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마카라사나는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다리를 최대한 벌리고, 팔꿈치를 접어 양손을 이마 아래 받치는 자세다. 하늘을 바라보고 완전히 이완하는 휴식 자세인 사바아사나Savasana와 달리 목과 머리를 바로 세우고 있기 때문에 잠이 들지 않는 자세로 ‘회복 자세’로 간주된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힘든 동작들 사이에 찾아온 마카라사나는 한없이 달콤했다. 단지 자세가 편해서만은 아니다.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근육과 뼈들이 이전의 동작들을 수행하면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동작이 기대되기 시작하면서, 이래서 ‘회복 자세’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악어 자세 이후 몸을 들어 아도무카 스바나아사나Adho Mukha Svanasana 자세를 취했다. 양손과 양발을 바닥에 댄 채 엉덩이를 높이 들어 몸이 ㅅ자가 되도록 만드는 동작이다. 상체는 상체대로, 하체는 하체대로 완벽한 ‘一’자가 되기 위해 애쓰다 보니 전신 근육 강화와 스트레칭이 동시에 이뤄졌다. 이 동작은 척주와 어깨, 코어 근육을 강화하고 햄스트링과 종아리 스트레칭을 도와주며 혈액순환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작은 극락조 자세라고도 불리는 스바르가드비자아사나Svargadvijasana다. 한쪽 무릎을 ㄱ자로 굽히고 다른 한쪽 다리와 양팔은 곧게 편 비라바드라Virabhadra2 자세에서 한쪽 팔을 땅에 짚고 다른 한쪽 팔을 사선으로 곧게 뻗는 파르스바코나아사나Parsvakonasana자세로 바꾼 후 뻗었던 팔과 땅을 짚은 팔을 다리 사이로 마주 잡아 그대로 들어 올려 한쪽 다리로 균형을 잡고 선다. 스무스하게 연결되는 선생님의 동작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는 자세다. 일단 구부린 다리 사이로 손을 맞잡는 것부터 근육이 당겨오기 시작했다. 두 발이 땅을 딛고 있는데도 몸이 휘청거리는데, 여기서 구부렸던 다리를 하늘로 뻗어야 한다. 나의 머뭇거림을 눈치챈 선생님이 천천히 다리를 받쳐 올려주었다. 그러자 어설프게나마 스바르가드비자아사나 동작이 완성됐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묘한 쾌감이 전신에 번져나갔다.
동작을 빚어내듯
하타요가의 동작들은 한 번에 이뤄지는 법이 없다. 흙을 빚어 원하는 모양의 자기를 완성하듯 신체를 한 땀 한 땀 움직여 자세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허리를 세우고 무릎을 구부리고 손끝을 뻗고 호흡을 하며 동작이 완성된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동작도 발끝, 무릎, 고관절, 척추를 따라 천천히 만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완성돼 있다. 이토록 내 몸에 정성을 들여 본 적이 있던가. 찌뿌둥했던 몸도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한결 가뿐하고 여유로워졌다. 동작이 바뀌고 사용하는 근육과 뼈는 달라지더라도 한 자세에 머무르는 동안의 인내와 균형을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하타요가의 동작은 몸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하나하나 움직여 빚어나갑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도 마찬가지예요. 인내하면서 정성스럽게 빚어나가다 보면 만족스러운 삶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그 첫걸음이 되었길 바랍니다” 사바아사나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선생님의 인사와 함께 수업이 마무리됐다.
그간 요가는 머나먼 세상의 것처럼 느껴졌다. 연예인들의 몸매 비결이나 정신 수련을 위해 오지로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접했던 탓일까. 도심 한복판의 작은 상가 건물 안에서 경험한 하타요가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깝고 친근했다. 일상의 작은 변화로 몸과 마음, 나아가 삶까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