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오명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 “AI 강국으로 가는 길, 원로들이 일조하겠다”
시니어들이 AI 시대 발목잡아서는 안돼
사상 유례없는 싱크탱크 '원지원'설립
30년 후, 100년 후 AI시대 한국 그린다
40여년 전 정보기술(IT)혁명의 씨앗을 뿌리고, 세계 최초 기술 상용화를 견인했던 그다. 세상이 인공지능(AI) 시대로 대전환하는 시기, 오명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은 이제 원로들의 역량을 끌어모으고 있다.
올해 5월 상임의장으로 취임한 그는 5개월간의 재정비를 마무리했다. 국가원로회의는 29일 33주년 기념식에서 33인의 공동의장 체제로 전환을 발표한다. 더불어, 내로라하는 각 분야 원로들로 구성된 원지원(元智院, 원로들의 지혜를 모은 연구원) 출범도 공식화한다. 원지원에 합류하겠다고 밝힌 이들만 벌써 100여명에 이른다. 국가를 한 축에서 경영해본 인물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발전에 직접 기여해 온 전직 장·차관, 대학총장, 연구원장 등 각 분야 석학과 최고 전문가들이 모였다.
오명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은 정보통신혁명을 떠올리며 “AI 시대가 오는데, (과거처럼) 우리 세대들이 걸림돌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반문하면서 “하지만 우리는 IT 혁명을 주도한 세대로, AI 혁명도 주도해 우리나라를 다시 한번 AI 강국으로 도약시키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시니어 세대가 앞장서 AI 혁명을 이끈다면 틀림없이 AI 강국 지름길로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명 상임의장은 이러한 국가원로회의 활동을 통해 30년 후, 100년 후 대한민국을 그려내고자 한다. AI 강국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각 분야별로 그러한 미래를 그리고,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또한 필요한 AI는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를 도출해 내야 한다. 시대는 달라졌고, 기술역시 발전했지만 새로운 길을 가는 방법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전자신문은 지난 25일 오명 상임의장 인터뷰를 통해 AI 강국을 향한 원로들의 열망과 비전을 들었다.
다음은 오명 상임의장과 일문일답.
-국가원로회의 재탄생을 준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국가원로회의는 지난 1991년 두번째 3.1운동의 정신으로 사회 각계 원로 33인이 창립한 단체다.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한 원로들이 모여 후대에 살기 좋은 국가를 물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원로들의 경험과 지혜를 결집시킬 만한 계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29일 33주년 기념식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국가원로회의가 국가 발전을 견인하고 국민 삶의 행복을 지향하는 구심점으로 만들고자 한다. 국가원로회의 창립 당시 33인 원로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 33주년을 맞아 새롭게 33인 공동의장 체제로 만들 계획이다. 행사에는 창립 멤버 33인 중 생존해 계신 서의현 전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해 김계춘 원로 신부, 김형석 연세대 원로 교수, 조완규 전 문교부 장관, 이길여 총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등이 고문으로 참석해 자리를 빛낼 예정이다. 또한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전직 장·차관,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유장희 전 동반성장위원장 등이 33인 공동의장으로 국가원로회의와 함께하기 위해 참석한다.
-원지원은 이름부터 뜻깊은 조직으로 들린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는가.
▲원지원은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도 유례없는 가장 격조높은 조직이 될 것이다. AI 강국으로 나아가고자 원로들 경험과 지혜를 결집시키기 위해 만든 싱크탱크가 원지원이다. 원지원에는 국가원로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원로들도 참여해 힘을 보탤 예정이다. 원로 뿐만이 아니라 AI를 잘 아는 차세대 리더들도 참여한다.
AI 혁명은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 그 방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원지원을 꾸렸다. 원지원은 국가원로회의를 운영하는 각종위원회처럼 하나의 기구로 운영되지만, 모든 활동은 독립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AI는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원지원은 그 분야에서 우리가 바라는 미래상을 그리고, 소위 말하는 국가 경영을 해 봤던 경험으로 그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의료·교육·정치·일자리 혁신.. AI가 도울 것
-AI가 가져올 미래는 어떤 미래여야 할까.
▲그 미래는 전자신문과 같은 전문 언론이 함께 그려줬으면 한다. 과거 스웨덴이 군대를 혁신할 때, 기득권을 제외하고 소위·중위와 같은 차세대 리더들을 모아 30년 후 모습을 그려보자 했다. 이들이 사회각계 인터뷰를 하고 심도 깊게 논의한 결과, 식민지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시대는 끝났으니 국토 방위 중심으로 군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에 따라 군의 구조는 어떠해야 하며, 어떤 무기 체계를 갖춰야 하는지도 각론이 나왔다. 30년 후 미래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고위직들도 불만이 없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니 혁신 속도가 빨랐다. 10여년만에 군의 혁신을 이뤄냈다.
AI 강국이라고 외치기만 해서는 될 것이 아니다. AI 혁명이 가져올 사회가 우리가 원하는 사회여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밑그림을 그리면 AI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가져올 수 있다. 의료·교육·정치 등 각 분야에서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먼저 그려보고자 한다.
대략적으로 우리세대에 가장 필요한 의료복지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우리나라 노인들은 상당수가 요양원에서 사망한다. 선진국은 많은 이들이 자기 집에서 죽음을 맞이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의 마지막까지 건강을 관리해줄 수 있는 '패밀리 닥터(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 가까이에서 상담하고 관리해줄 수 있는 패밀리 닥터가 있어야 한다. 패밀리 닥터가 진단해 상급 병원과도 연결시켜주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패밀리 닥터가 동네에서 100가구 정도를 책임질 수 있었는데 AI를 활용해 500~1000가구를 책임질 수 있지 않겠는가. 또 하나는 의사과학자 양성이 시급하다. 웬만한 병은 정복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AI 혁명이 이를 도울 것이다. 이를 이끌 의사과학자들이 있어야 한다.
대학간, 학과간 칸막이 없애고 평생 교육체제 전환 필요
-교육제도와 정치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정년 퇴임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 나이가 일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능력껏 일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걸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 원할 때까지 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학사학위에 매몰된 교육제도는 현재 사회구조의 희망이 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전국민의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결국 저출산 원흉으로까지 지목받지 않는가.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에 집중하고, 전공 교육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전공 하나를 배워서 그걸로 평생 써먹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150세까지 사는 사회에는 맞지 않는 교육제도다. 시간적으로도 낭비다.
전공 과목의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 AI의 도움을 받아서 폭넓게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대 들어간 학생은 왜 서울대에서만 공부하고, 고대 들어간 학생은 왜 고대에서만 공부하나. 대학 칸막이도 없애야 한다. 교육은 파는 사람이 중심이고, 사는 사람이 중심이 아니어서 그렇다. 교수와 대학의 기득권에 의한 제도다.
나는 건국대 총장, 아주대 총장 등 대학 총장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100분 100강의를 만들었다.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100대 테마를 가지고 기원과 역사, 의미를 살펴가는 교육이었다. 스마트폰이 주제라면, 단파와 장파로 구분되는 파장부터 통신 주파수의 원리, 도청의 원리 등을 100분 동안 설명하는 식이다. 흥미를 갖게 된 학생들은 세부적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해 갈 수 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세부적인 지식은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정치 제도 역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의회정치는 산업혁명과 함께 태어났다. 군주제가 무너진 후 국민들이 자신을 대표할 만한 사람을 뽑은 것이 의회정치다. 지금은 국민들이 의회가 자신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이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지식이 오픈된 세상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앞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IT 혁명의 역사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가
▲1980년대 정보화사회 그림을 그리는데 우리에게는 컴퓨터와 통신 기술 모두가 없었다. IT강국의 시초가 된 시분할전자교환기(TDX)는 전세계에 없는 제품이었다. 수요자 입장에서 검토를 마친 후 4~5년 만에 개발하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4대 대기업 엔지니어들까지 끌어모았다. 당시 우리나라 수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술이 탄생했다. 모든 역량을 모으니 가능했다. 4M D램 반도체와 슈퍼 미니 컴퓨터 개발도 역량을 끌어모은 정부의 지휘와 지원을 통해 나왔다. 이후 CDMA 휴대폰 개발도 정부가 앞장서서 개발하고 세계 세일즈까지 했다. 우리는 성공스토리가 있다. 광케이블을 전국에 깔아 정보통신 강국으로 올라선 것도 정부 주도였다. 그렇게 정부 주도로 빨리 성공하니 부작용이 걱정됐다. 전화도 많지 않던 시절에 정보화 복지가 이뤄질리 만무했다. 도농격차,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될까 걱정됐다. 그래서 대안으로 전국 통신요금 균일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국에서는 지역마다 요금이 달랐다. 그만큼 장비 투자가 다르기 때문에 지역 차이가 당연할 수 있지만, 복지사회를 만들겠다는 철학으로 요금 단일화를 관철시켰다. 세번째로는 국민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정보문화센터를 만들어서 30년동안 적극적으로 전국 교육 사업을 펼쳤다. 주부 200만 교육이 그렇게 나왔다. 주부와 시니어들 교육을 통해 모두가 정보화 사회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과거 문맹률을 낮추는데 군대가 역할을 했다는 것에 착안해 군을 정보화 교육기지로 키워나갔다. AI 강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AI 기술 보급과 개발만이 아니라 부작용을 줄이는 활동도 함께 펼쳐야 한다. 국가원로회의도 원로들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부터 시작할 방침이다.
○…오명 상임의장은.
40대에 체신부 장관이 된 후 40여년동안 과학기술계 최고의 리더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부 부처, 대학, 언론 등 수많은 분야의 리더로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했다. 오명 상임의장은 1958년 경기고, 1962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공학도의 길을 걸었다. 1972년 뉴욕주립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졸업한 후 1980년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관직에 입문한 것이 시작이었다. 20여년 동안 전두환·노태우·김영삼·노무현 네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했다.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체신부 차관과 장관을 지내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는 교통부와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2003년 과학기술부 장관에 임명된 후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의 자리에 올랐다. 그 사이 대전세계엑스포 조직위원장, 한국야구위원회(KBO)총재, 동아일보 사장·회장, 아주대 총장, 건국대 총장, KAIST 이사장, 국립암센터 이사장 등 넓은 활동 범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한국을 대표하는 테크노크라트, 한국 IT의 그랜드 디자이너로 불리는 그는 이제 원로들의 역량을 모아 AI 강국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문보경 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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