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아직도 벤츠 타니”…성공하면 이젠 제네시스, 그 돈에 왜 샀을까 [세상만車]
2010년대엔 벤츠가 이겼는데
2020년대부터 제네시스 승리
‘성공하면 타는 車’ 대표주자
얼마 전 정비업계에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전문가와 국산차·수입차 품질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들었던 말입니다.
자동차 분야를 취재하다 보면 주위에서 벤츠·BMW 차종을 타다 제네시스 차종으로 바꿨다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2010년대에는 반대였죠. 제네시스(BH·DH)나 현대차 그랜저를 타다가 벤츠·BMW 차종으로 갈아타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 사례에 불과한 것은 아닐 겁니다. 국내 판매성적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네시스가 벤츠에게 “아프냐, 나도 아팠다”고 위로(?)하는 것 같습니다.
주적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좀 더 강했고 경제력을 갖춘 40대 이상이 좀 더 선호하는 ‘삼각별’ 대표주자 벤츠 E클래스였습니다.
1세대 제네시스(BH)는 지난 2008년 출시됐습니다. 2013년에는 2세대 제네시스(DH)로 진화했죠. 제네시스가 2015년 현대차에서 독립해 프리미엄 브랜드로 출범하면서 제네시스(DH)는 G80으로 개명했습니다.
G80은 국내에서는 그랜저에 이어 ‘성공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별’을 달면 타는 대기업 임원용 자동차로 자리잡기 시작해서죠.
임원용 자동차 시장을 먼저 장악한 그랜저보다 더 급이 높은 임원용 차가 됐습니다. 대기업에서 별이 1~2개면 그랜저, 3개 이상이면 G80을 탔죠. 기아 K9도 도전했지만 G80 아성을 넘지 못했습니다.
다이내믹한 주행 감성을 좋아하는 30~40대가 선호하는 BMW 5시리즈와 달리 품격을 추구한 벤츠 E클래스는 G80을 위협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거나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이 벤츠 E클래스를 선호했죠. 일부 기업은 벤츠 E클래스를 임원용 차로도 제공했습니다.
벤츠 E클래스는 2016년 6월 10세대 모델이 출시된 뒤 수입차 1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2019년까지 G80보다도 많이 판매됐습니다. G80의 굴욕입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G80은 2만2625대, 벤츠 E클래스는 3만9788대 각각 판매됐습니다. 벤츠 E클래스가 압승했죠.
새로워진 G80은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디자인, 수입차보다 한 수 위인 편의·안전사양으로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끌어올렸습니다.
전략은 통했습니다. 제네시스는 굴욕을 앙갚음했습니다. ‘타도 벤츠’ 기쁨도 맛봤습니다.
G80은 2020년 5만6150대가 판매됐습니다. 전년(2만2284대)보다 152% 급증하면서 3만2480대가 판매된 벤츠 E클래스를 이겼습니다.
제네시스는 G80을 앞세워 벤츠를 제치고 국내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 1위 자리에도 올랐습니다. 제네시스는 2020년 10만8384대를 판매했습니다. 전년(5만6801대)보다 90.8% 증가했죠.
한국수입차협회(KAIDA)에 따르면 벤츠는 2020년 7만6879대 판매하면서 수입차 1위 자리는 지켰지만 프리미엄 1위 자리는 내줬습니다.
벤츠 E클래스만큼은 아니지만 현대 에쿠스와 EQ900을 거치면서 국내에서 ‘별 다섯’이 타는 ‘성공 끝판왕’ 타이틀을 보유했던 G90의 자존심을 긁어놨기 때문입니다.
G90은 2019년까지는 벤츠 S클래스를 압도했습니다. 2019년 판매대수는 G90이 1만7676대, 벤츠 S클래스가 6563대였습니다.
G90 위기는 2020년부터 시작됐습니다. 판매대수는 1만195대로 전년보다 42.3% 감소했습니다. 반면 벤츠 S클래스는 6223대로 전년도와 비슷한 성적을 거둬들였고, 두 차종의 격차는 크게 줄었습니다.
G90은 2021년 기록적인 참패를 당했습니다. 7세대로 진화한 벤츠 S클래스 때문입니다. 2021년 4월 국내 출시된 신형 벤츠 S클래스는 판매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벤츠 S클래스는 같은 해 총 1만543대 판매됐습니다. 전년(6223대)보다 69.4% 급증했죠.
벤츠 S클래스는 벤츠 E클래스(2만6109대), BMW 5시리즈(1만7740대), 아우디 A6(1만2273대)에 이어 수입차 판매 4위를 기록했습니다.
벤츠 S580 4매틱은 1억원 이상 차종 중 유일하게 수입차 트림별 ‘판매 10위’에 포함됐죠.
G90은 같은 기간 5234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습니다. 벤츠 S클래스 판매대수의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신형 모델 출시를 앞두고 판매가 감소할 때가 많지만 정도가 심했죠.
신형 G90은 품격 있는 실내·외 디자인은 물론 한국차의 장점인 편의성을 집대성한 플래그십 세단으로 거듭났습니다.
실내는 차주가 직접 운전하는 오너드리븐카는 물론 운전기사가 따로 있는 쇼퍼드리븐카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가격이 문제였습니다. 기본 모델 가격은 9000만원대였지만 옵션을 추가하면 1억 중반대로 비싸졌습니다. “그 돈이면 벤츠 산다”는 말이 당연히 나왔죠.
벤츠 S클래스도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에 이어 수입차 판매 3위를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둬들였지만 G90에 국내 플래그십 세단 1위 자리를 다시 내줬습니다.
제네시스는 G80과 G90의 복수혈전 성공에다 GV80과 GV70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활약까지 더해 프리미엄 브랜드 1위 자리도 차지했습니다.
이제는 ‘성공하면 타는 차’ 시장에서 넘사벽(넘기 어려운 사차원의 벽)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올해 1~8월 성적표로 입증됩니다.
브랜드별 판매대수는 제네시스가 9만225대, 벤츠가 3만9672대로 집계됐습니다.
경쟁차종별로 살펴보면 G80이 3만761대, 벤츠 E클래스가 1만2658대 각각 판매됐습니다. G90은 5504대, 벤츠 S클래스는 2845대 각각 팔렸습니다.
제네시스와 벤츠는 예나 지금이나 국내에서 ‘성공하면 타는 차’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두 브랜드 모두 품질과 품격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두 브랜드가 빛난 진짜 이유는 ‘성공 이미지’에 있습니다.
개인적 의견입니다만 상대적으로 벤츠는 ‘경제적 성공’, 제네시스는 ‘사회적 성공’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봅니다. 돈 벌면 벤츠, 별 달면 제네시스라는 뜻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성공한 뒤 제네시스 차종을 구입하거나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뒤 벤츠 차종을 제공받는 사례도 많습니다.
성공한다고 이들 차종만 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BMW 5시리즈와 7시리즈, 아우디 A7과 A8, 렉서스 ES, 볼보 S90, 포르쉐 파나메라 등 다른 차종도 많이 선택합니다. 성공하지 못했다고 살 수 없는 것도 아니죠.
샤넬이나 루이비통 등 명품 소비를 확산시키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와 파노플리(panoplie) 효과도 작용했습니다.
‘세상만車’에서도 소비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으로 자동차 구매심리를 분석할 때 두 효과를 종종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밴드왜건은 일부 부유층에서 시작한 과시적 소비를 주위 사람들이 따라하면서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편승 효과’를 뜻합니다.
파노플리는 특정 계층이 소비하는 상품을 구입해 해당 계층에 자신도 속한다고 여기는 현상을 의미하죠. 상품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습니다.
제네시스와 벤츠가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진짜 이유는 ‘성공’ 이미지와 밴드왜건·파노플리 효과가 시너지를 창출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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