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짓을?" 미국 정부가 저지른 가장 잔혹한 생체실험 5가지
미국이 생물학무기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린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또다시 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이 독일이나 소련보다 먼저 생물학무기를 연구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고안해내길 바랬습니다.
또한 미국은 생화학무기 개발외에도 의학과 과학의 발전을위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생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인도적 배려나 윤리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으며 이런 상태에서 진행된 실험들은 피실험 대상자를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래에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졌던 미국 정부가 저지른 가장 잔혹한 생체실험 5가지를 소개합니다.
5. 겨자가스 생체실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젊은 미군이었던 롤린스 에드워즈(93)는 12명의 다른 군인들과 함께 나무로 만든 가스실로 들어갔습니다. 장교들은 문을 잠궜고, 곧이어 겨자가스와 다른 독가스를 섞은 화학작용제가 파이프를 통해 가스실로 들어왔습니다.
에드워드는 “가스실에 있던 군인들이 비명과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탈출을 시도했다. 몇명은 기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미군이 2차 세계대전 때 자국 군인 6만명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화학가스 실험을 했다는 사실은 지난 1993년에 비밀해제됐지만, 실제 에드워즈가 실험 대상이 된 이유는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흑인과 푸에르토리코 출신 군인들이 화학가스에 좀더 저항력이 있음이 입증되면 이들을 화학전의 최전선에 배치하고 백인들은 후방에 배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제 에드워드도 “당시 장교들이 검은 피부에 화학가스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미군이 실험에 사용한 겨자가스는 접촉 뒤 수초 안에 유전자를 손상시키며, 피부 수포를 유발하고, 심하면 백혈병이나 피부암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실험이었습니다. 실험 대상이 된 군인들은 지금까지도 피부 발진이 계속되는 등의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군은 실험 이후 이들에 대한 건강검진 등 후속 조처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4. 과테말라 매독 생체실험
슈바이처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의사중 한명인 존 커틀러는 1932년, 신문을 통해 매독으로 집단 사망한 지역의 정보를 얻게 됩니다. 당시 앨라배마 주의 메이컨 카운티는 인구의 약 82%가 가난한 흑인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매독으로 사망했습니다.
존 커틀러는 일부러 이 곳에 찾아가 무료 건강검진을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커틀러가 매독 치료제라고 투여한 것은 비타민제였습니다. 환자를 속이고 실험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즉 커틀러는 매독을 치료하지 않으면서 병의 진행과정을 살펴봤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존 커틀러는 '나쁜 피를 뽑아낸다'는 명목으로 뇌척수액을 뽑아 매독균을 손에 넣었습니다. 환자들은 커틀러의 실험에 동원된 채 죽음에 처했습니다. 이후 실험을 더 하려던 커틀러의 눈에 띈 곳은 바로 과테말라였습니다.
존 커틀러는 과테말라의 교도소 관계자를 돈으로 매수한 뒤 본격적으로 실험에 나섰습니다. 일부러 죄수들에게 매독에 감염된 여성과 성관계를 맺게 했고 심지어 정신질환자, 고아원 아이들까지 동원해 총 1600여명의 피해자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생체실험에 동원된 댓가는 고작 담배 한 갑이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존 커틀러 사망 5년 후 미국 웰슬리대학의 역사학자 수잔에 의해 밝혀졌으며 수잔은 존 커틀러를 '백색 가운의 악마'로 소개했습니다. 결국 2010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즉각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과테말라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3. 맨해튼 프로젝트 방사선 실험
많은 사람들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세계최초의 원자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알고 있지만 추가적으로 인간에 대한 방사선의 영향을 테스트하려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물리학자 루이스 슬롯틴 (Louis Slotin)은 1946년 5월21일, 실수로 스크루 드라이버를 노심에 떨어뜨렸습니다. 이 사고로 슬로틴 포함 8명이 입원했고, 전국의 과학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슬로틴의 피폭량은 히로시마 폭심에서 1.6킬로 떨어진 곳에서의 피폭량과 같았습니다.
1945년 8월 21일 로스알라모스연구소의 오메가 사이트에서 젊은 물리학자 한 명이 플루토늄 노심을 조립하던 도중 치명적 방사능에 노출됐습니다. 그는 수 시간 내에 이상증세를 보였고 곧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히로시마 피폭자와 똑같은 증상이었습니다.
그는 24일 동안 버티다가 9월 14일 마침내 사망했는데,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다른 연구원들에 의해 은밀하게 관찰되었습니다. 이후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다양한 질병들이 발생했고 그것이 방사능과 연관이있다고 의심했지만 미국 정부는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방사능 피폭의 실상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2. 다이옥신 테스트
베트남 전쟁 당시 피부과 전문의 클리그만 교수는 미군이 다우케미컬에 의뢰해서 제조한 황색고엽제(Agent Orange)의 인체실험을 위해서 홈스버그 감옥에 있는 죄수를 대상으로 제초제의 인체유해실험을 했습니다. 연구 속도를 높이기위해 클리그만 교수는 안전용량의 468배를 투여한 것으로알려졌습니다.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고엽제'를 사용하기에 앞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교도소에서 사전에 실험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는데요. 결국 1981년 미국 환경보호국에서 '홈스버그 교도소(holmesburg prison)'내에서 벌어졌던 인체실험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를 시작했지만 이미 실험 관련한 모든 기록들은 폐기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다이옥신 성분이 들어있는 제초제 혼합물 고엽제중 하나인 에이전트 오렌지는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콩 게릴라가 숨어 있는 정글을 파괴하기 위해 미군에 의해 대량 살포되었습니다.
다이옥신은 유산, 기형발생, 암, 피부병 등의 장애및 질병을 일으켜 베트남인과 참전 병사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고엽제를 만든 미국의 다우케미컬 사는 1971년 사용이 중단되기 직전까지 고엽제의 독성에 대해 숨겨왔으며 베트남전쟁 중 고엽제 피해를 입은 환자는 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1. 군사세균실험
1950년대와 60년대 사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총 6번이나 가상으로 적의 공격을 받는 비밀 훈련이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이 훈련에는 두 종류의 세균(Bacillus globigii, Serratia marcescens)을 형광입자를 이용하여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뿌렸으며 여기에 최소 80만 명의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이 박테리아를 흡입한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 몸에 무해하다는 판단에 뿌려진 이 박테리아는 10년이 지나서야 요로 염증과 폐렴 증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1981년에는 이 박테리아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가족들이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지만 결국 대법까지 가서 지고 말았습니다. 현재 이 박테리아는 모의 탄저병 균을 만드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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