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용 건축가의 공간기록 S-Log Ep 12. 거창 ‘파노라믹’ 편

공간을 계획하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작업이다.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할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계획하는 일은 아마도 가장 뜻 깊고 보람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집’이라고 표현하는 공간은 누군가는 ‘매물’, 누군가는 ‘물건’, 누군가는 ‘재산’이라고 부르지만 건축가는 ‘작품’이라고 부른다. 복사 붙여넣기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공간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긴 시간과 수많은 고민이 담겨 땅 위에 정성스럽게 앉히는 작업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꼭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과 같기 때문이다. 그동안 ‘작품’이라고 내세울 만큼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지나고 보니 건축주가 의뢰했던 땅들에 대해 누구보다 오래 고민하고 밤새 끄적였던 그림이 벽이 되고 지붕이 되어 공간을 이루고,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함께하는 건축주와 그 가족들을 보면서 내가 계획하고 함께 만들어 왔던 공간들이 누군가에게는 모두 소중한 ‘작품’이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계획 중이거나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는 예비 건축주들을 위해 지난 10여 년의 기간 동안 공간을 계획하면서 건축주와 함께 작품을 만들었던 과정들 중 기억에 남았던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진행 이화정 기자 | 글 김선용(레이어드 건축사사무소)
부지는 도로가 서쪽에 있고 동쪽으로 내리막 경사가 있는 땅이었지만 조망은 남동쪽이 더 좋아 배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대상지로 진입하는 동선은 동쪽에서 북쪽, 그리고 다시 서북쪽으로 감아 올라오는 형태다.
처음 대지 답사를 가는 날은 언제나 설렌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위치해 전망이 좋았던 거창 현장을 찾았을 때는 맑은 날씨가 이어지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부지는 도로가 서쪽에 있고 동쪽으로 내리막 경사가 있는 땅이었지만 조망은 왕복 4차로의 웅양로가 보이는 남동쪽이 더 좋아 배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어린 세 자녀를 둔 건축주 부부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을 꿈꾸었다. 1층은 분리된 주방과 거실, 안방과 드레스룸이 필요했고, 2층은 세 자녀의 침실과 가족실 겸 운동실, 드레스룸 및 화장실, 그리고 놀이방의 역할을 할 다락이 필요했다.

요구사항 1 : 조망과 남향의 고려
대상지로 진입하는 동선은 동쪽에서 북쪽, 그리고 다시 서북쪽으로 감아 올라오는 형태였다. 진입로 주변의 풍경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외부 공간들이 하나의 파노라믹 뷰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진입하는 시퀀스를 계획했다.

대상지의 경계점은 동서남북으로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었지만 조망 축과 맞지 않아 많은 고민이 들었다. 주 건물의 배치를 과감하게 남동쪽으로 각도를 틀어서 앉힌 결과 전면 창은 오후까지도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집 안까지 들어오고, 옆집 및 뒷집과는 서로 창을 마주보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조망을 실내로 끌고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요구사항 2 : 기다란 조망창
창호는 각 공간에 따라 필요한 비율로 재단했다. 긴 복도 끝에는 멀리 있는 산과 하늘의 경계가 보일 수 있도록 세로로 긴 창을, 2층 침실에는 멀리 조망할 수 있는 통창을, 욕조에는 프라이빗한 뒷마당과 하늘이 보이는 정사각형 창을 각각 배치했다.

그리고 파노라믹한 풍경들을 실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각 공간마다 다양한 비율로 디자인된 창들을 배치했고, 입면에서도 각 창들이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 적용됐다.

요구사항 3 : 1층의 순환동선
주변을 둘러 들어오는 진입 경로를 집 내부까지 연장시켜 계단을 중심으로 순환동선을 만들었다. 여기에 거실과 주방의 분리를 원했던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현관에 들어왔을 때 거실과 주방 동선 등 두 개의 공간을 경험하며 이용자가 동선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안방과 드레스룸의 프라이빗한 동선은 바로 화장실로 이어져 하나의 화장실이지만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안방과 드레스룸 사이의 문으로 순환동선을 통제할 수 있어 이용자의 상황에 맞게 공간을 변형할 수 있게 됐다.

밖에서는 주변 경관과 집이 어우러진 모습을 경로에 따라 다채롭게 조망할 수 있었다면, 집 내부에서는 파노라믹한 뷰를 계단을 중심으로 돌며 감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비율의 창호를 계획했다.

각 공간마다 다양한 비율로 디자인된 창들이 배치되었고, 입면에서도 각 창들이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 적용됐다.
진입로 주변의 풍경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외부 공간들이 하나의 파노라믹 뷰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진입하는 시퀀스를 계획했다.
집 내부에서는 파노라믹한 뷰를 계단을 중심으로 돌며 감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비율의 창을 내었다.
현관에 들어왔을 때 거실 동선과 주방 동선을 달리하여 두 공간을 분리했다.
요구사항 4 : 2층의 순환동선
계단을 중심으로 계획된 순환동선은 2층에 위치한 아이들 방과 다락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계획했다. 이 순환동선은 가족 공용으로 사용하는 운동실과 세 자녀의 침실, 그리고 드레스룸과 화장실, 다락방을 각각 연결한다. 특히 동쪽 두 개의 침실은 자녀 방 사이를 서로 연결해 어렸을 때에는 같이 자고 같이 노는 공간으로 활용하다가도 좀 더 나이가 차면 각 방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2층의 순환동선은 시각적으로도 연결된다. 계단의 난간은 일정 높이 이상은 유리로 계획해 가벽의 슬라이딩도어를 닫더라도 반대편의 동선이 보여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한다. 2층의 각 방 창들도 서로 다른 방향의 조망을 담아낼 수 있도록 각각의 비율을 활용해 계획했다.

요구사항5 : 다락
2층의 남는 공간은 지붕이 낮은 다락으로 계획했다. 세 자녀가 함께 모여 책을 보거나 놀 수 있는 공부방 겸 놀이공간으로 만들었고, 지붕 하단의 여유 공간에는 수납장을 설치해 자칫 부족할 수 있는 수납공간을 확보했다. 그리고 긴 가로 창과 측창을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도 외부 풍경을 감상하거나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보통 다락은 사다리나 좁은 계단을 통해야만 마주하지만, 거창 프로젝트의 경우 2층의 남는 공간을 활용했기 때문에 별도의 계단을 통하지 않고도 다락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대부분의 건축가는 설계 아이디어를 현장 답사를 하면서 또는 대지를 분석하면서 얻는다. 그리고 건축주 가족 구성원들의 니즈와 편의를 고려해 각 공간별 구성과 동선을 고민하고 더 확장해 건물의 배치까지 계획한다.

거창 ‘파노라믹’은 단순히 각 공간만 계획한 것이 아니라 집으로 오는 과정에서부터 실내로 들어와서 계단과 공간들이 서로 이어지는 과정인 시퀀스가 고려된 프로젝트이다. 하나의 순환동선으로 각각의 공간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또 다양한 방향으로의 조망 창을 통해 바라보는 외부 풍경은 매 시간 매 계절마다 건축주 가족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자 일상의 행복이다.
계단은 내부 공간 순환동선의 중심이 된다.
계단의 난간은 일정 높이 이상은 유리로 계획해 가벽의 슬라이딩도어를 닫더라도 반대편의 동선이 보여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한다.
2층의 각 방 창들도 서로 다른 방향의 조망을 담아낼 수 있도록 각각의 비율을 활용해 계획했다.
2층의 남는 공간은 지붕이 낮은 다락으로 계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