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배신자? 우리는 프로다…외국인 감독들의 비애
조국 포르투갈 상대하는 벤투
공식 기자회견 날선 질문에
“두 국가 모두 대변할 순 없어
한국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뿐”
한국 축구 사령탑인 파울루 벤투 감독(53·사진)은 지난 23일 카타르 도하 메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얼굴을 붉혔다. ‘포르투갈 사람으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적수로 만나는 기분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받은 뒤였다. 포르투갈 기자가 던진 이 질문에는 과거 포르투갈 축구대표팀 사령탑이었던 그가 돈에 팔린 용병 혹은 배신자가 아니냐고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벤투 감독이 조별리그 H조에서 조국 포르투갈을 만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기도 했다.
실제 유럽 축구에서는 월드컵 같은 빅이벤트에서 조국을 상대해야 하는 자국 출신 감독을 향한 이런 시선이 없지 않다. 그러자 벤투 감독의 답변도 평소보다 톤이 올라갔다. 그는 “난 포르투갈 국적을 갖고 있다. 포르투갈에서 태어났고, 평생 포르투갈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난 프로페셔널 지도자로 한국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마지막에는 억울하다는 느낌의 한숨이 더해졌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사람이 포르투갈을 적으로 상대하는) 이런 상황은 월드컵에서 나올 수 있는 일”이라며 “(동향인)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도 2018년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냐”고 했다. 한국을 상대로 ‘주먹감자’를 날려 익숙한 케이로스 감독은 벤투처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선 포르투갈 대표팀을 맡았으나 2018년 러시아 대회에서는 이란 감독으로 포르투갈을 상대했다.
월드컵 역사에서 벤투 감독과 같은 사례가 종종 나온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선 브라질 출신의 지코 일본 감독이 조별리그에서 브라질을 상대한 적이 있다. 잉글랜드 최초의 외국인 지도자인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도 한·일 월드컵과 독일 월드컵에서 연속으로 조국인 스웨덴과 맞붙었다. 두 사령탑 모두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지만 외국인 지도자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외국인 사령탑이 이끌고 있는 팀은 32개국 가운데 9개 팀이다. 상황에 따라 조국을 상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는 셈이다.
월드컵은 아니지만,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러시아를 이끌고 참가한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 8강에서 조국 네덜란드를 무너뜨린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다만 히딩크 전 감독은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축구 인생에서 거대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냈다”며 개의치 않았다.
벤투 감독에 앞서 외국인 지도자로 한국을 이끌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경질되지 않았다면 본선에서 조국 독일을 상대할 운명이었다.
벤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미드필더로 조별리그 한국전에 출전했다. 박지성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해 포르투갈의 16강 탈락이 확정된 경기다. 이 경기는 축구 선수 벤투의 마지막 A매치였다.
벤투 감독은 “이젠 내가 한국 축구 사령탑으로 월드컵에 참가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두 국가 모두를 대변할 수는 없다. 난 포르투갈을 응원하지만 한국 감독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뿐”이라고 한국 사령탑으로서 책임감을 이야기했다.
도하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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