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신물질 '코리아늄' 탄생할까…韓 중이온가속기 '라온' 가보니

윤현성 기자 2022. 11. 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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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중이온 가속기, 자연에 없는 신물질 '희귀동위원소' 생성에 활용
라온, 세계 최초로 2가지 희귀동위원소 생성 방법 모두 활용
핵심시설 극저온설비동·가속장치·ISOL 모습은?…"방사능 주의해야"
라온, 지난 10월 첫 빔인출 성공…2년 뒤 전세계 이용자 개방 목표

[대전=뉴시스]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라온(RAON)'의 SCL3 초전도가속모듈. (사진=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제공)

[대전=뉴시스]윤현성 기자 =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 원소를 새로 합성해 낼 경우에는 그 원소에 걸맞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 미국의 이름이 붙은 '아메리슘', 일본의 이름이 붙은 '니호늄', 러시아 수도의 이름이 붙은 '모스코븀'의 경우 이들 새로운 원소가 탄생한 지명에서 원소명이 유래된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우리나라도 한국의 이름이 붙은 이른바 '코리아늄'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0여년에 걸쳐 약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 부으며 단군 이래 최대 기초과학 프로젝트라고 불렸던 중이온 가속기 '라온(RAON)'이 그 첫발을 떼는 데 성공하면서다. 이제 태동을 시작한 라온을 눈에 담기 위해 과학도시 대전을 직접 찾아가봤다.

중이온 가속기, 자연에 없는' 희귀동위원소' 생성…우주기원연구부터 암 치료 기술까지 기대

초거대 규모부터 극저온 냉각·방사선까지…보는 이 압도하는 '라온'

[대전=뉴시스]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라온(RAON)'이 있는 대전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전경. (사진=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제공)
중이온 가속기는 이름 그대로 무거운(重) 이온을 가속시키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중이온 빔을 가속해 표적에 충돌시킴으로써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희귀동위원소', 즉 신물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같은 희귀동위원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초기 우주에는 없었던 오늘날의 물질들이 생성된 과정을 연구할 수 있다. 즉 우주의 생성 기원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미래의 신소재 개발·생명현상 연구를 통한 새로운 암 치료 기술 개발·청정 에너지원 확보·물질의 본질 이해 등 상상 속에서만 이뤄졌던 일들까지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하는 방법은 ISOL(Isotope Separation On-Line) 또는 IF(In-flight Fragmanetation)라는 2가지 방식으로 나뉘는데, 기존의 해외 중이온 가속기들은 이 두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첫 중이온 가속기 라온은 두 방식을 모두 사용한다. ISOL 방식을 통해 생성한 희귀동위원소를 IF 방식으로 재가속해 더욱 희귀한 신물질을 생성하는 세계 최초 시설을 꿈꾸고 있다. 두 방식을 모두 활용하면 세계에서 희귀동위원소를 가장 많이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라온은 가속기동의 최대 길이만 550m에 달하고, 그외 다양한 시설 등의 길이까지 모두 합하면 1㎞에 달하는 등 막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 가운데 극히 일부인 ▲극저온설비동 ▲저에너지 가속장치(초전도선형가속기, SCL3)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 ISOL 만을 직접 눈으로 봤을 뿐인데도 그 규모에 압도될 정도였다.
[대전=뉴시스]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라온(RAON)'의 극저온설비동에 액체 헬륨을 제작·저장하는 거대한 탱크들이 들어서 있다. (사진=윤현성 기자)
극저온 설비동에는 액체 헬륨을 제작·저장하는 거대한 탱크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생성되는 액체 헬륨은 파이프·터번 등을 지나며 점차 온도가 낮아지는데, 마지막 터번에서는 헬륨 가스의 온도가 영하 296℃ 수준으로 낮아지게 된다. 라온의 경우 중이온을 광속(초속 30만㎞)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으로 가속시키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이 액체 헬륨으로 냉각시키게 된다.

라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저에너지 가속장치는 지하 터널에 위치해 있었다. 중이온을 가속시키는 과정에서 방사선이 방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에너지 가속장치는 마치 거대한 캐비닛 수십개가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띄고 있는데, 이들을 연결한 주황색의 통로로 중이온 빔이 실제로 이동하고 동시에 액체 헬륨이 냉각을 진행하게 된다.

특히 지하 터널에 위치한 저에너지 가속장치는 가속 과정에서 방사선이 방출될 수 있음은 물론 냉각을 위한 헬륨이 계속해서 공급되는 만큼 라온에서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다. 헬륨이 누출될 경우 작업자가 곧바로 대피해야 하기에 산소 농도가 계속해서 측정되고 있었고, 방사선 관리구역으로 지정된 만큼 실제 가동 시엔 아예 출입이 불가할 뿐더러 애초에는 전문가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다.

[대전=뉴시스]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라온(RAON)'의 저에너지 가속장치가 있는 지하터널에 헬륨 가스 누출 감지를 위한 산소농도 측정기가 설치돼 있다. (사진=윤현성 기자)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하는 ISOL 장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작은 공장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ISOL 장치 또한 저에너지 가속장치와 같이 중이온 빔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방사선이 방출될 수 있기에 두꺼운 콘크리트 벽 내에 구축되어 있다. 장치 중간중간에는 생성된 희귀동위원소를 보내기 위한 수많은 빔라인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ISOL 장치 옆에는 ISOL 시스템에 양성자 빔을 공급해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사이클론트론'이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는데, 싸이클로트론의 경우 시운전이 바로 얼마 전 진행돼 막대한 방사능이 방출되고 있어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이외에도 라온에는 되툄분광장치(KoBRA), 핵데이터생산장치(NDPS), IF 시스템, 질량측정장치(MMS), 빔조사장치(BIS), 대수용다목적핵분광장치(LAMPS) 등 중이온 가속을 통한 희귀동위원소 생성을 돕는 다양한 장치들이 구축(일부는 구축 중)되어 있었다.
[대전=뉴시스]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라온(RAON)'의 일부인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ISOL) 내 입사기. (사진=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제공)

라온, 첫번째 빔인출 성공으로 '첫 발'…"세계 최고되는 과정 밟아가겠다"

라온은 지난달 7일 저에너지 가속구간 첫 번째 빔인출 시험에 성공했다. 전체 54기의 가속모듈 가운데 전단부 5기 모듈이 무사히 작동한 것인데, 이는 극저온설비, 중앙제어장치 등 가속기 운영에 필요한 장치들이 모두 정상 성능을 보였다는 방증이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제작을 완료하고 시동을 걸어 동력발생장치, 조향장치 등 주요 장치 간의 종합적인 연동성과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1단 기어로 저속 주행 시험을 성공한 셈이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나머지 49기 가속모듈 시운전을 목표로 가속시험 구간을 단계적으로 늘려가면서 빔인출 시험을 수행할 계획이다.

라온이 지난해 5월 시설건설을 완공하고 전단부 5기 모듈에서 첫 빔인출을 성공하는 데는 2년 반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 시운전으로 모든 설비가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만큼 나머지 49기 시운전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더해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아직 구축되지 않은 '고에너지 가속구간'을 2단계 사업을 통해 구축할 계획이다.

라온은 오는 2024년 10월 모든 전세계 이용자들에게 개방하는 과정을 거쳐서 본격적인 중이온 가속기 활용 단계에 돌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승우 중이온가속기연구소장은 "이번 첫 번째 빔인출 성공은 그간 만들고 제작하고 설치한 모든 것들이 제대로 돌아갔다는걸 확인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서도 "라온은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아기라고 볼 수 있다. 세계최고가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라온이 좀 더 성숙해져서 저희들이 계획했던 대로 세계 최고가 되는 과정을 밟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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