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만 챙기는 외교부가 또 대북정책을? 통일부는 배제하고?!

[이경렬 전 직업외교관]

또 만들어진 '한미 워킹그룹'

과거의 악몽이 되풀이되려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협력을 통제하고 방해했던 ‘한미 워킹그룹’이 이름을 달리해 출범했다. 외교부는 정연두 외교전략 정보본부장(옛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케빈 킴 주한 미국대사대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범정부 ‘한미 대북정책 조율 고위급 협의’를 예정대로 12월 16일 외교부 청사에서 강행했다. 양국 외교부와 국방부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통일부의 반대로 명칭을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라고 바꿨지만 ‘눈 가리고 아옹’일 뿐이다.

통일부는 참석치 않았다. 그러나 협의회는 대북정책 조율문제까지 다루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협의체 창설의 근거는 지난 11월 14일 발표된 한미 공동 팩트시트의 “양 정상은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긴밀히 공조하기로 합의했다”는 구절이다. 거기에 외교부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없다.

12월 11일에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외교부 계획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과거의 ‘워킹그룹’을 연상시킨다는 우려도 강하게 표출되었다. 통일부는 “외교부가 주도하는 대북정책 조율에는 불참하겠다”며 반발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전날(1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 정책, 남북관계는 주권의 영역”이라며 “미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NSC에서 “대북정책 조율은 통일부 주도”라고 단언했다.

임동원·정세현·이재정·조명균·김연철·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은 “제2의 한미 워킹그룹을 반대한다”고 성명을 밝혔다.

국민주권정부는 달라야 한다

과거 ‘워킹그룹’의 실패 전철을 되풀이하면 안된다는 국민적 목소리는 강력하다. 국민주권정부의 새로운 대북접근 방식을 요구하는 여론이다. 한미 대북공조의 창구는 전통적으로 외교부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미동맹에 경도된 의식에 따라 행해진 관성적인 행태였을 뿐이다. 통일부의 반발과 NSC 참석자들의 반대도 이례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정부의 국민주권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1882년 임오군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민씨 척족이 청나라를 불러들여 독일인 멜렌도르프가 조선의 고문으로 외교에 관여한다. 3년 동안이었다. 2018년 그 찬란한 남북협력의 시절, 한국 정부는 미국의 ‘워킹그룹’ 출범 요구에 굴복해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불러들여 남북협력에 찬물을 끼얹는다. 3년 동안이었다. 2025년 12월 한국 외교부는 다시 케빈 킴 미국 대사대리를 불러들여 우리의 대북정책에 간여할 여지를 제공해줄 태세다. 비건과 케빈 킴이 멜렌도르프와 같지는 않다. 허나 우리의 외세의존 의식은 다를 바 없다.

2018년 '한미 워킹그룹'에서 역할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사진= 연합뉴스

외교부가 주도해선 안되는 까닭

외교부는 두뇌회전이 빠르다. 내년부터 남북대화 재개 추진 등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가 본격 가동될 것으로 예견되는 지금의 상황을 영리하게 낚아채고 싶을 것이다. 두 가지 차원의 계산이 있을 법하다. 하나는 ‘밥그릇’ 챙기기다. ‘빛나는’ 일은 내가 해야겠다는 공명심이다. 물론 공명심이라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요는 관성적인 행태라는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래야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관성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펼쳐야 할 비전이고 국익이다.

다른 하나의 계산은 첫 번째 사고방식과 결부되어 있는 한미동맹 우선주의다. 우리 국익에 앞서 미국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맹목적인 ‘착한’ 마음 자세다. 외교부는 남북문제를 항상 한미동맹 강화의 차원에서 접근해 왔다. 지난 70여년 이상 외교부가 줄곧 외쳐온 ‘한미동맹의 강화’란 미국이 하자는 대로 전부 따르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외교부는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우리 외교의 근간으로 본다는 말을 자기 식으로 해석해 역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한미동맹 근간론’은 국익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만 작동하는 언사다. 다시 말해 ‘무조건적인 한미동맹 우선’, 즉 숭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과거의 ‘워킹그룹’이 2018년 남북 정상의 합의 이행을 번번이 무산시켜 결국 현재의 꽉 막힌 남북 상황을 초래한 주범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철도·도로 연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화상 상봉 장비 반출, 타미플루 대북 지원 등에 제동을 걸었다. 일부에서는 ‘워킹그룹’을 ‘신(新) 조선총독부’에 비유하기도 했다. 2020년 6월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은 ‘워킹그룹’을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7월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진보단체 관계자들이 워킹그룹 해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통일부가 주도해야 하는 까닭

임동원, 정세현 등 전직 통일부 장관 여섯 명은 지난 12월 15일 성명을 내고 “남북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부에 대북정책을 맡길 수 없다”면서 “외교부 주도의 한미 워킹그룹 가동 계획을 중단하고 통일부가 중심이 되어 남북관계 재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옳은 얘기다. 열 명의 여야의원들도 유사한 성명을 발표했다.

시민단체들(참여연대, 자주통일평화연대, 시민평화포럼 등)은 다음날 오전 외교부 앞에서 ‘대북정책 조율협의체’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이 협의체가 제2의 ‘워킹그룹’이라면서 “이미 실패한 대북적대 기조 아래 새 정부의 정책을 통제하고 외교적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더 깊은 적대와 대결의 늪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옳은 지적이다.

굳이 한미 간 조율협의체가 필요하다면 통일부로 하여금 주도하게 할 일이다. 외교부가 해 온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통일부가 대북협의를 주도하게 함으로써 좀 더 자주적인 방향의 정책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부합할 것이다. 통일부가 주도권을 가질 때 남북관계 특수성을 반영하고 독자적인 대북채널을 확보할 수 있다.

외교부 내지는 한미동맹 치중 인사들이 주도할 경우 결국 과거의 실패사례가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동맹 강화라는 협소한 틀에 갇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포괄적인 국익을 훼손할 것이다.

외교부와 통일부의 ‘관할권’ 싸움이 핵심이 아니다. 자주냐 굴종이냐, 국익이냐 매국이냐의 갈림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의 생각이다. 북한은 ‘워킹그룹’을 남북관계 파탄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니 외교부가 다시 나선다면 북한으로서는 우리의 진정성을 심히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자면 새로운 목소리가 필요하다. 남북 간의 진짜 대화와 협력의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지난 무구한 세월 미국의 대변인으로 활약해온 외교부가 할 일은 별로 없다. 외교부는 조인트 팩트시트의 다른 부분을 관리하면 된다. 예컨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숨어들어 있는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우리 국익에 맞도록, 즉 한국이 미국을 위한 총알받이가 되지 않도록, 결기 있게 미국과 협의할 일이다.

한반도정책국 없애고 NSC도 노무현 시절로

나아가 외교부내 외교전략 정보본부의 한반도정책국은 폐쇄해야 한다. 과거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에서 하던 통일 문제와 대북한 정책에 관한 외교정책 수립 업무를 하는 곳이다. 왜 외교부에서 대북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있는가. 미국과의 ‘조율’ 아니 ‘허락’을 위해서? 이제 통일부가 맡으면 된다. 통상외교가 산자부로 넘어간 지 오래 아닌가. 금융외교는 기재부에서 잘 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6자회담이나 북핵협상이 필요한 경우라도 통일부가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우리의 지향점은 진정한 남북협력이다. 새 정책은 새 조직에서 책임질 일이다.

아울러 NSC 체제도 노무현 정부시절로 복귀할 필요가 있다. 외교, 안보, 통일 관련 정책 기획, 부처 간 조정, 위기관리 등을 대통령비서실 라인이 아닌 NSC 사무처를 중심으로 일원화하여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전에는 통일부장관이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대통령비서실 소속의 국가안보실장이 상임위원장이다. 대북정책을 총괄하고 남북협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나가려면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통일부장관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외교부는 전반적인 개혁과 혁신이 필요한 조직이다. 이 글의 초점은 아니지만 검찰처럼 해체해야 할 대상이다. 검찰이 나라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어온 죄가 있다면 외교부는 미국이 나라를 흔들도록 부역해온 죄가 있다. 외세 의존적 사고방식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쇄신되기 힘들다. 해체 후에 다시 제대로 된 외교부를 재창조해야 한다.

빌리 브란트의 주체적 외교 배워야

다시 본론이다. 한미 협의체의 관할권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 한미 협의체니 ‘워킹그룹’이니 하는 것을 아예 구성하지 않는 일이다. 왜 우리가 대북정책을 구상하고 실행하는데 미국의 간섭과 지시를 받아야만 하는가. 왜 우리가 먼저 나서 미국의 관여를 불러들이려 안달인가 말이다. ‘대북정책 조율협의체’는 국내 다양한 시민단체와 이해집단의 의견을 구하는 장소여야 한다.

한미 협의체가 필요하다면 사후적인 정보교환의 장으로 만들면 된다. 우리가 자주적으로 정책을 펼친 후에 필요하다면 미국에 통보하고 협조를 구하는 채널 말이다. 그것이 주권국가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런 주체성이 있어야 북한이 마음을 열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남북협력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초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신동방정책’은 서독이 동독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한 독자적인 외교정책이었다. 동독을 주권국가로 존중한다는 것이 첫걸음이었다. 브란트는 미국과 사전협의하거나 미국의 승인을 구한 적이 없다.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닉슨 행정부나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과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미국은 서독이 독자적으로 너무 앞서나가거나 소련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경계했다.

브란트 정부는 굴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정책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협상 내용을 설명하고 소통하려는 외교적 노력은 지속했다. 그의 결단과 노련함은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그렇지만 브란트의 ‘한 발짝’ 앞서가는 자주적 자세와 결기가 없었다면 신동방정책의 성공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브란트 같은 '주체정신'이다. 이제 ‘신북방정책’이다. ‘워킹그룹’, 당장 집어치울 일이다.


※ 이경렬은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퇴직후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이창천이란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