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와 타이…KBO 최장 ‘21년 원클럽맨’의 퇴장과 '최다안타 루키'의 등장

[베팬알기] ㉔KBO 최장수 원클럽맨 김재호의 은퇴 & 고교 최다안타 박준순 이야기

KBO 최장 21년 원클럽맨 송진우와 김재호, 2025년 루키 박준순(왼쪽부터). ⓒ한화이글스, 두산베어스
“꽃을 피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두산베어스 팬들은 끝까지 나를 믿고 응원해주셨다. 그 덕에 21년의 현역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두산 베어스 김재호

두산 베어스 김재호가 지난해 11월 14일 구단 보도자료를 통해 은퇴를 공식 발표하면서 남긴 말이다.

“유니폼을 입고 나니 정말 좋은 번호라고 느껴진다. 특히 두산의 원클럽맨인 김재호 선배의 번호라서 더 달고 싶었다.”
-두산 베어스 박준순

2025년 두산 베어스 1라운드 지명을 받은 루키 내야수 박준순이 김재호의 52번을 물려받은 뒤 내놓은 소감이다. 박준순은 지난 24일 호주로 떠난 두산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신인 야수 중 유일하게 포함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간의 매듭. 연극 무대의 페이드아웃(Fade-Out)과 페이드인(Fade-In)처럼, 21년간 베어스 무대를 비춰오던 거대한 조명 하나가 꺼지자 작은 조명 하나가 새로운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베팬알기-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기록 이야기]는 21년 원클럽맨으로 은퇴를 선언한 김재호와 2025년 1라운드 지명 내야수 박준순의 등장에 관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이야기를 다뤄보도록 한다.

'스마일맨' 김재호의 앳된 모습. 중앙고를 졸업하면서 2004년 두산 1차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활짝 웃고 있다. ⓒ두산베어스

◆ 베어스 프랜차이즈 최다경기 출장 1위

김재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조명된 기록은 베어스 역대 개인통산 최다경기 출장이다. 두산 원클럽맨으로 1793경기를 뛰었다. 레전드 김동주(1625경기)를 넘었고, 안경현(1716경기)을 제쳤다. 단 한 번도 전경기 출장을 달성한 시즌은 없었지만, 21년간 묵묵히 버텨왔기에 43년 베어스 역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맨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었다.

다음은 역대 베어스 소속 선수 중 개인통산 최다경기 출장 10걸이다.

물론 이 기록이 오래갈 수는 없다.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위 이하 대부분의 선수는 은퇴했지만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현역 선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3위에 포진해 있는 정수빈(1679경기)이 눈길을 모은다. 올 시즌 115경기를 더 뛰면 1위 자리에 오른다. 김재호는 2위로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김재호로서도 정수빈이 자신을 디딤돌 삼아 새 역사를 만들어낸다면 그 자체로 또 다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허경민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은 뒤 kt 위즈로 이적해 베어스 구단 소속 출장 기록은 1548경기에서 멈췄다. 김재환은 아직 김재호에 410경기 뒤지기 때문에 3년간 거의 전 경기를 뛰어야 김재호를 넘을 수 있다.

김재호는 안정적인 수비의 대명사다.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자가 됐다. 2년 연속 수상은 베어스 역대 유격수 중 최초의 기록이다. ⓒ두산베어스

◆김재호가 남긴 발자취

‘김재호’ 하면 떠오르는 건 유격수로서 안정적인 플레이와 빠른 송구 동작이다. 2015~2016년 2년 연속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는데 베어스 역사상 최초였다. 종전까지 김민호(1995년)와 손시헌(2005, 2009년)이 베어스 소속 유격수로 황금장갑을 받았는데 2년 연속 수상은 지금까지 김재호가 유일한 선수다.

김재호는 2016~2019년 올스타전에 참가했으며, 2015년 프리미어12에서는 국가대표로 나서 금메달을 목에 걸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유격수로 인정받기도 했다.

21년간 KBO 통산타율 0.272. 수비가 중시되는 유격수로서 공격력 또한 준수했다. 타격 대부분 지표에서 베어스 역대 선수 10위 안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는 다른 포지션(2루수, 3루수)에서 활약할 때 작성한 기록까지 포함한 숫자다. 자신의 주 포지션인 유격수로 뛴 기록만 집계해 보면 김재호는 베어스 역대 유격수 중 대부분의 지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경기수(1669경기)뿐만 아니라 안타(1126개), 2루타(189개), 타점(543개), 홈런(50개), 볼넷(536개) 등에서 맨 위에 포진해 있다. 유격수로서 3루타(21개)는 김민호(25개)에 이어 2위다.

송진우는 자신의 등번호 21번처럼 21년간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하며 KBO 역대 원클럽맨 중 최장기간 활약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1년 두산맨 김재호가 올해 송진우와 타이기록을 세우면서 은퇴하게 됐다. ⓒ한화 이글스

◆‘21년 원클럽맨’ 김재호, 전설 송진우와 어깨 나란히

김재호가 은퇴를 선언할 때 의외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1년 원클럽맨’은 우리가 대접해줘야 할 기록이다. KBO리그 역대 최장 기간 원클럽맨 기록이기 때문이다.

김재호 이전까지 수많은 스타가 뜨고 졌지만 데뷔부터 은퇴까지 21년간 오로지 한 구단 유니폼만 입은 선수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송골매’ 송진우(전 한화 이글스)가 유일했다. 자신의 등번호 21번처럼 1989년부터 2009년까지 21년간 독수리 군단에서만 활약했다.

물론 KBO리그 역사가 깊어지면서 22년 이상 KBO에 등록되고 있는 선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김강민은 2001년 데뷔해 2024년까지 24년간 프로 무대를 누벼 역대 최장기간 활약한 선수로 기록됐다. 하지만 2023시즌을 마친 뒤 2차드래프트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다. 23년간 원클럽맨이었다가 1년 동안 다른 유니폼을 입었기에 ‘원클럽맨’ 역사에 남지 못했다.

김강민은 24년간 선수생활을 하면서 KBO 최장수 선수가 됐지만 2024년 SSG에서 한화로 이적하면서 원클럽맨이 되지는 못했다. ⓒ한화이글스

고효준도 2002년 데뷔 후 지난해까지 23년의 프로 경력을 지녔지만 원클럽맨이 아니다. 롯데~SK~KIA~롯데~SSG로 이적한 '저니맨'이었다. 역시 23년간(1991~2013년) 활약한 박경완도 쌍방울 레이더스~현대 유니콘스~SK 와이번스로 유니폼이 바뀌었다. 22년 경력의 이호준, 박경수, 우규민, 송은범, 노경은도 팀을 옮기며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21년간 활약한 류택현, 최영필, 김주찬, 이용규, 정우람, 강민호도 한 차례 이상 적을 바꿨다. 최형우는 2002년 삼성에서 데뷔한 시점부터 따지면 23년 경력을 자랑하지만 2005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2007년(경찰야구단)까지 3년간은 KBO리그 소속팀이 없는 신분이었다. 그리고 삼성과 KIA에서 활약했기에 원클럽맨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KBO 소속 선수 기준으로 보면 21년간 한 팀에서만 뛰다 은퇴한 송진우, 김재호가 KBO 역대 원클럽맨 중 최장수 선수라 할 수 있다. 이는 베어스 구단도, 김재호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기록이다.

2004년 중앙고 후 1차지명을 받고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고졸 내야수 김재호. ⓒ두산베어스

◆ ‘천유’ 김재호, 베어스 고졸 내야수 최초 1차지명

김재호는 중앙고 1학년 시절부터 ‘천재 유격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래서 별명도 ‘천유’다.

중앙고는 1910년 야구부를 창단해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그 역사에 비해서는 크게 내세울 실적이 없는 학교였다. 지금까지도 전국대회 우승은 1965년 황금사자기와 1972년 청룡기 2차례뿐. 20세기 결승전 진출도 1975년 황금사자기 대회가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2002년 중앙고가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키며 봉황대기에서 결승까지 진출해 파란을 일으켰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2학년 천재 유격수 김재호는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재호는 2003년 6월에 열린 2004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일찌감치 두산 1차지명을 받았다. 고졸 내야수가 1차지명을 받은 것은 베어스 드래프트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 이전까지 대체적으로 투수가 1차지명을 받았고, 김동주를 비롯한 일부 특급 내야수가 1차지명을 받기도 했지만 모두 대졸 선수였다. 중앙고 출신 내야수가 1차지명을 받은 것도 현재까지 KBO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중앙고는 2003년 봉황대기에서도 결승에 진출했다. 당시 김재호는 제5회 아시아선수권대회 청소년 대표에 발탁되는 바람에 그해 봉황대기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중앙고의 새로운 전성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 이후 중앙고는 한 번도 전국대회 결승 진출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김재호가 재학하던 시기가 21세기 중앙고의 황금기였다.

고교 시절 최고 유격수였지만 프로에서는 자신의 자신의 말처럼 '늦게 핀 꽃'이었다. 입단 이후 손시헌이라는 주전 유격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1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백업과 퓨처스 선수 생활을 했다.

지칠 법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기회가 왔고, 그는 그 기회를 붙잡았다. 2013년을 끝으로 손시헌이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뒤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면서 김재호는 마침내 2014년 주전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그리고는 2024년까지 은하수처럼 은은한 별빛을 내비치며 두산 내야를 밝혔다. 처음부터 끝까지 찬란하게 빛나는 별도 있지만, 김재호는 부침을 겪으면서도 21년간 끈기 있게 같은 그라운드를 지켰다는 점에서 후배들에게 또 다른 귀감이 된다.

박준순은 덕수고 3학년 시절 이마트배와 황금사자기 2개 대회 연속 MVP를 수상하면서 특급 내야수 유망주로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스포팅제국

◆52번 물려받는 루키 박준순

김재호는 베어스에서 ‘52번’으로 대표되는 선수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6번을 달다 2011년부터 52번으로 바꿨는데, 은퇴할 때까지 52번은 우리에게 수많은 추억을 안겼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역사도, 베어스의 왕조도 52번 유격수가 내야수의 중심을 지키고 있었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베어스 52번 주인이 무대 뒤로 퇴장하자 새롭게 그 번호를 물려받은 샛별이 있어서 주목된다. 바로 2025년 KBO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 받은 내야수 박준순(덕수고 출신). 두산은 수많은 투수 유망주들을 제치고 박준순을 가장 먼저 호명했다. 박준순은 2025 신인드래프트 대상자 중 야수 전체 1번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지역연고제가 2023년부터 폐지되면서 1라운드 지명은 과거의 1차지명과 같은 의미다.

베어스 역사상 내야수를 1차지명 또는 1라운드(전면드래프트)에 지명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2004년 김재호 이후로 보면 2021년 안재석(서울고 출신)이 17년 만에 처음이었고, 박준순이 3년 만에 그 계보를 이었다. 전면드래프트로만 따지면 박준순은 베어스 최초 1라운드 지명 내야수라는 역사를 쓰기도 했다.

2025년 1라운드 지명을 받고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루키 박준순. ⓒ두산베어스

◆고교야구 최다안타 루키에 거는 기대

21년 세월을 사이에 두고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김재호와 박준순은 1차지명과 1라운드 지명 내야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주포지션이 유격수(김재호)와 2루수(박준순)로 다르지만 이들은 고교 시절부터 탄탄한 수비력은 물론 공격력에서도 인정받으면서 투수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두산 베어스에 뽑힌 탑티어(top-tier) 내야수들이다.

김재호도 고교 시절엔 방망이가 뜨거웠다. 당시의 고교야구와 오늘날의 고교야구는 팀수와 경기수, 경기제도, 상대팀 등에서 차이가 있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고교야구는 공교롭게도 김재호 재학 시절이던 2003년까지 알루미늄(비목재) 배트를 사용했고, 그 이후 나무배트를 도입했다. 당시엔 주말리그도 없어 공식경기 수도 적었다. 이런 점을 참고해 기록을 볼 필요가 있다.

김재호는 고교 3년간 32경기에서 4할대 타율을 올렸다. 적은 경기수였지만 중앙고 중심타선에 포진해 4할대 후반의 높은 타율로 팀의 돌풍을 이끌었다.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긴 했지만 55안타 중 10개가 홈런이었을 정도로 파워도 보여줬다.

박준순은 2024년 고교 최고 스타로 올라섰다.

덕수고는 중앙고와 달리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 최고 명문고. 지난해 첫 대회인 신세계이마트배와 다음 대회인 황금사자기를 연이어 제패하면서 현존하는 5대 전국대회(이마트배, 황금사자기, 청룡기, 대통령배, 봉황대기)에서만 무려 22차례 우승하는 빛나는 역사를 만들었다. 덕수고는 다른 야구 명문고보다 한참 늦은 1980년 야구부를 창단했지만 경북고와 함께 고교야구 최다 우승 타이기록을 작성했다.

박준순이 ‘최강 덕수’의 중심에 섰다. 이마트배 7경기에서 타율(0.520, 25타수 13안타)과 홈런(4개), 타점(13개) 3관왕에 오르며 MVP를 차지하더니 황금사자기에서도 5경기에 출장해 타율(0.636, 11타수 7안타) 부문과 MVP 수상으로 주가를 높였다.

고교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설 정도로 재능을 보인 그는 2학년 때 33경기를 뛰며 4할대 타율(0.427, 110타수 47안타)을 올렸고, 3학년에 올라와서는 4할대 타율(0.442, 113타수 50안타)과 함께 홈런도 5개를 몰아치며 파워까지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기록 전산화가 이뤄진 2000년 이후 고교야구 최초로 한 시즌 50안타 고지를 넘어서면서 화제를 모았다.

박준순은 김재호 선배가 달던 52번이라는 상징적인 번호를 이어받았다. 두산 신인 야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스프링캠프에 참가할 정도로 타격의 레전드 이승엽 감독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특히 올 시즌 두산은 김재호의 은퇴와 허경민의 이적으로 내야진이 완전히 새롭게 세팅돼야 하는 상황이다. 김재호가 입단할 당시에는 손시헌이라는 큰 벽이 버티고 있었지만, 현재 두산 2루수 자리는 무주공산이다. 박준순에게는 주전의 기회가 열려 있는 셈이다.

박준순이 고교 시절 명성 그대로 곧바로 주전으로 발돋움해 센세이션을 일으킬지, 김재호처럼 오랜 세월 숙성의 시간을 거쳐 주전 내야수로 도약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1차지명과 1라운드 지명 내야수라는 점, 등번호 52번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박준순에게 쏠리는 관심은 가볍지 않다.

21년 원클럽맨 김재호의 시대는 매듭지어졌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두산이다. 장강의 앞물결이 흘러간 뒤 뒷물결이 흘러오듯 박준순이 두산 베어스 내야 세대교체의 주역이 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역사의 교차점. 2024년 9월 24일 두산 베어스 라커룸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김재호(오른쪽)가 1라운드 지명 선수로 초대된 박준순과 악수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