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러시아 원정 실패 이유는 '발진티푸스'...나폴레옹의 전쟁(4)

●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을 계획하게 한 원인제공자 넬슨
프랑스가 자랑하는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이집트 자료는 이집트 원정을 간 군인들이 훔쳐 온 것이 대부분이다. 도둑질의 선봉에 선 나폴레옹 군대의 특징은 전쟁터에 군인만 데려간 것이 아니라 군의관과 학자들이 함께 갔다는 점이다. 군의관은 병원과 의학 발전에 도움이 되었고 학자들은 남의 나라 문물을 훔쳐오고 연구하는 일을 담당했다.
파리 시내에 있는 오벨리우스와 루브르박물관 내에 전시된 피라밋의 일부를 보면 200년도 더 전에 꽤나 홈쳐오는 기술이 발전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습관을 못 버리고 1866년 병인양요 때는 강화도 주민들에게 결국 패퇴하긴 했지만 외규장각 도서를 훔쳐가기도 했다.
1798년 6월 초 이집트로 쳐들어간 나폴레옹이 통치를 시작한 직후 영국 함대가 나일강 입구에서 프랑스군대를 격파하고 강을 봉쇄해 버렸다. 더 내륙쪽에 있던 프랑스 군대는 군수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그 해 8월 1일 나일강 어귀 근처의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이 이끄는 영국군이 마주쳤다. 밤샘 전투가 벌어졌고 2일 새벽이 되자 영국이 승리자가 되었다. 13척의 프랑스 선박과 군대는 전멸당하다시피 했고 넬슨은 이 공로로 남작 지위를 받았다.
나폴레옹에게 있어서 이 전투는 그가 치른 수많은 전투를 감안하면 큰 충격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이 전투 후 프랑스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이듬해에 최고통치자에 오른 후 넬슨에게 빚을 갚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803년 5월이 되자 유럽 대륙의 중서부는 거의 프랑스의 관할에 들어갔지만 넬슨이 이끄는 영국군은 지중해 주변 해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1805년에 나폴레옹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함대를 한데 뭉치기 위해 영국과 한판 전투를 벌이기로 했다. 그 해 10월 20일, 프랑스와 스페인 함대는 프라팔가 앞바다에서 전투를 벌였다.
결과는 영국군의 대승이었다. 노량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승리를 목전에 두고 적의 총탄에 맞은 넬슨은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 의무를 다했으니 만족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 제독의 한 명으로 평가받는 넬슨을 기리기 위해 영국 정부는 (현재 국립미술관과 국립초상화박물관이 있는) 런던시내 중심부 광장이름을 트라팔가 광장이라 이름붙이고 아주 높은 곳에 버킹엄 궁을 바라보고 있는 넬슨 동상을 세워놓았다.

● 전쟁에서 흔히 등장하는 감염병 발진티푸스
세균, 바이러스와 다른 종류의 미생물인 리케차는 그 종류가 많지 않고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감염병도 몇 가지 안 되므로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생물이다. 리케차에 의한 감염병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발진티푸스가 제3군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3군 법정전염병”은 “간헐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그 발생을 감시하고, 예방대책의 수립이 필요한 전염병”이며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예는 거의 없다. 발진티푸스는 심한 열과 함께 피부에 빨간색 반점(발진)이 온몸에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역사적으로는 전쟁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 집단생활을 할 때 흔히 발생하곤 했다.
몸이를 통해 병원체가 전파된다는 사실은 20세기에 알려졌다. 그 후로 과거의 전쟁에서 옷과 침구류를 소독하거나 빨기가 어려웠으므로 유행이 발생하면 빨리 전파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군대에서 발생한 기록은 1480년대 스페인군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는 유행이 크지 않았고 1520년대에 프랑스 군대에 다시 등장했다.
그 후로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 발진티푸스로 추정되는 감염병이 유행했고 때로는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1546년에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과학자, 시인으로 유명한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 1478~1553)는 최초로 발진티푸스를 질병의 하나로 추정하는 기록을 남겼다.
참고로 그가 시에서 매독에 걸린 환장의 이름을 'syphilis'라 한 것이 영어로 매독을 가리키는 용어의 어원이 되었으며 매독의 증상과 수은을 이용한 치료법을 최초로 소개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 후로도 발진티푸스는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독일을 중심으로 벌어진 30년 전쟁 등 여러 전쟁에서 유행하곤 했다. 군대의 이동이 잦았고 집단생활을 하면서도 소독과 위생에 대한 개념은 없었으니 전파되기에는 아주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발진티푸스는 역사를 뒤바꿀 만큼 큰 위력을 발휘할 기회를 호심탐탐 노리고 있었다.

● 차이코프스키의 서곡 '1812년'의 주제가 된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트라팔가 해전에서 참패를 한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의 모든 나라에게 영국과 무역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영국과의 무역이 주된 경제활동이면서 멀리 떨어져 있던 러시아는 이 명령을 무시했다.
나폴레옹은 인생의 목적이 ‘유럽 전체를 통치하기’ 또는 ‘가능한한 넓은 땅을 차지하기’라 할 정도로 정복을 위한 전쟁을 벌이곤 했다. 러시아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 유럽 전체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부터 박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년간 전쟁준비를 했다.
그리하여 1812년 초에 프랑스가 지배하는 여러 나라에서 차출한 약 60만 명의 대부대를 조직했다(그래봐야 1200년도 더 전에 고구려로 쳐들어온 수나라 군대의 반 정도에 불과하다). 군인의 수가 많으면 일사분란하게 명령이 전달되기 어렵고 언어도 통일되지 않았으며 여러 지역에서 온 병사들의 목적의식도 불분명했다.
게다가 러시아 모스크바를 향해 출발하기 직전부터 발진티푸스를 비롯한 감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6월 22일에 행군을 시작한 후 프러시아(현재의 독일)와 폴란드를 거쳐 가는 동안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행히 맞서서 싸우는 이들이 없었으므로 행군에 큰 어려움은 없었고 러시아로 접근해도 러시아 군대는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의 작전은 싸우지 않고 도망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군대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거의 남겨 놓지 않았으며 발진티푸스는 계속 위력을 더해갔다.
병에 걸린 병사들은 주변 건물에 수용되었고 여건이 되는대로 군의관도 함께 남았으므로 프랑스 병원 발전의 계기가 된 것은 좋은 효과였다. 그러나 이것은 특수한 상황이었을뿐 약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력 손실을 커져만 갔다.
1812년 9월 중순 모스크바에 도착한 프랑스군대는 약 10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도 러시아군은 보이지 않았고 모스크바는 대부분의 시민과 음식이 사라진 유령도시에 불과했다. 며칠 후 모스크바가 불타기 시작했다. 남은 게 없는 모스크바에서 겨울을 보낼 음식과 옷을 구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나폴레옹은 10월 중순에 회군 명령을 내렸다.
파리로 돌아오는 과정은 고난의 길이었다. 여러 프랑스 장교들이 남겨 놓은 회상록에 그 내용이 잘 소개되어 있다. 하필이면 1812년에 겨울을 빨리 왔고 추위가 매서웠다. 발진티푸스의 위력은 여전했고 굶주림을 해결할 음식을 구하는 것은 어려웠다. 말을 잡아먹느라 타고 올 말이 없었고 말먹이나 얼음으로 목숨을 부지했으며 많은 병사들이 부대를 이탈하여 각자가 길을 찾아갔다.
모스크바로 가는 길에 환자를 수용한 곳은 시체로 넘쳐났고 병원은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질병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군대의 명령체계는 와해되었고 병사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발진티푸스가 유행을 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 온 군사는 3~4만명 정도였다. 그 직후 영국,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프랑스를 공격하여 1814년에 파리를 함락시킴으로써 나폴레옹의 시대는 종말을 향해 가게 되었다. 1815년에 워털루 전투를 치를 때 나폴레옹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러시아 원정의 실패가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이끈 이유가 되었다.
역사학 책에서는 흔히 추위와 잘못된 작전이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한 가장 큰 이유라 한다. 또 애주가들은 프랑스군은 장교들만 꼬냑을 마시지만 러시아군은 누구나 보드카를 즐기므로 추위를 버티는 능력이 크게 다른 것이 승패를 가른 이유라 한다.
그러나 의학역사에서는 전쟁시작과 동시에 유행하기 시작한 발진티푸스가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한다. 역사적으로 크게 발생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건 외에 의학적 상황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러시아 작곡자 차이코프스키(Piotr Ilyitch Tchaikovsky, 1840-1893)는 1882년에 프랑스를 물리치는 러시아 군대를 소재로 한 서곡 '1812년'을 남겼다. 이 곡 말미에 승전을 축하하는 대포소리가 들리는 것이 특징이다.

● 발진티푸스를 해결한 학자들
19세기 말에 프랑스의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백신을 이용하여 감염병 예방이 가능함을 보여 주었고 독일의 코흐(Robert Koch, 1843-1910)는 감염병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체에 의해 발생함을 발표했다. 이후로 감염병의 병원체와 예방백신을 찾으려는 연구가 유행처럼 진행되었다.
1903년에 튀니지의 파스퇴르연구소에 책임자로 부임한 프랑스의 니콜(Charles Jules Henri Nicolle, 1866-1936)은 이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발진티푸스를 포함한 열대성 질환 연구에 매진했다. 당시 튀니지에 발진티푸스가 수시로 유행하곤 했으므로 니콜은 자연스럽게 발진티푸스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1909년에 몸이(Pediculus humanis)가 발진티푸스 매개체임을 알아냈다. 또 1913년에는 풀랑크(Poulenc) 회사와 함께 발진티푸스 백신을 개발함으로써 예방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니콜은 발진티푸스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192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니콜이 발진티푸스를 연구하고 있을 때 다른 여러 학자들도 발진티푸스의 원인균을 찾아내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미국의 리케츠(Howard T. Ricketts, 1871~1910)는 록키산 (홍반)열의 원인을 처음 알아냈으며 발진티푸스 연구를 위해 미국보다 환자가 더 많은 멕시코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발진티푸스가 록키산 열과 아주 유사함을 알아냈지만 자신이 감염되는 바람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한편 세르비아의 프로바젝(Czech Stanislav Provazek, Stanislaus von Prowazek, 1875~1915)은 1914년에 이스탄불에서 발진티푸스가 유행하자 브라질에서 온 헨리크(Henrique da Rocha Lima, 1879~1856)와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에서 발진티푸스를 연구하던 중 모두 발진티푸스에 걸렸다.
헨리크는 회복되어 발진티푸스가 록키산 열과 마찬가지로 리케차의 한 종류에 의해 발생함으로 알아냈지만 프로바젝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헨리크는 자신의 이름 대신 발진티푸스의 병원체를 연구하다 목숨을 잃은 두 선배 이름을 발진티푸스의 병원체(Rickettsia prowazeki)에 남겨 주었다.
이러한 선구적인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오늘날 발진티푸스는 적절한 치료제를 투여하면 어렵지 않게 치료가능한 병으로 남아 있다.
※ 참고문헌
1. Horatio Nelson. 브리태니커 사전.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Horatio-Nelson/Victory-at-Trafalgar
2. George C. Kohn. Encyclopedia of Plague & Pestilence. Wordsworth Reference. 1998
3, 예병일. 전쟁의 판도를 바꾼 전염병. 살림. 2007
4. 윌리엄 맥닐. 전쟁의 세계사. 신미원 역. 이산. 2005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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