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자율주행로봇에게 '진짜 세상' 학습시킨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정부의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를 발판으로 자율주행 배송로봇을 고도화한다. 자율주행 관련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요한 영상 데이터 원본을 활용해 로봇 이동의 안전성과 정확성을 높일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31일 서울 청계천 광장 일대에서 '자율주행 산업 발전을 위한 실증현장 방문 및 간담회'를 진행했다. 정부는 △우아한형제들(2024년 1월) △뉴빌리티(1월) △카카오모빌리티(3월) △포티투닷(4월) 등 4개 기업을 영상정보 원본 활용 실증특례사업자로 지정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김주현 우아한형제들 정책실장은 <블로터>와 만나 "이전에 자율주행로봇은 얼굴 없는 보행자 정보만 학습했다"며 "이번 실증특례로 보행자의 시선까지 완전히 보이는 '진짜 세상'을 학습해 자율주행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율주행로봇·차량은 라이다 센서와 3D카메라로 주변 상황을 인식한다. 자율주행할 때 카메라를 통해 수집한 영상 데이터는 관련 AI를 고도화하는 기반이 된다. AI 개발에 활용하는 영상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보행자의 얼굴과 자동차 번호를 가명처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우아한형제들의 자율주행로봇이 학습하는 영상에서는 보행자의 얼굴이 가려졌다. 로봇으로서는 목부터 머리까지 없는 사람의 모습만 학습할 수 있었다.
이번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서는 자율주행차와 배달로봇 분야에 한정해 AI 개발 시 영상 데이터 원본을 활용할 수 있다. 김 실장은 "자율주행로봇이 보행로를 다니려면 사람을 제대로 인식하고 피해야 하는데, 기존처럼 얼굴을 가린 영상만 학습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영상 데이터 가명처리로 얼굴 없는 보행자만 학습한 로봇이 보행로에 나가면 그제야 세상을 처음 보는 것"이라며 영상 데이터 원본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자율주행 배송로봇 '딜리(Dilly)'의 운영을 시작했다. 서울시가 시행하는 대규모 서비스로봇 실증 사업의 일환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배달의민족 앱으로 코엑스몰 인근 건물에서 식음료를 주문하면, 딜리가 물건을 싣고 보행로를 자율주행해 지정된 장소까지 배달한다.
자율주행로봇 개발 8년째 …'라스트 마일 대체' 목표
자율주행로봇을 개발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라스트마일(last mile)' 대체다. 라스트마일은 유통과정에서 물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마지막 단계를 뜻한다. 배달원이 소비자가 있는 특정 장소를 일일이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라스트마일은 유통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한 아파트단지의 여러 가정이 배달의민족 앱으로 식음료를 각각 주문한 경우 배달원 한 명이 물품을 가지고 아파트단지로 가는 길은 동일하다. 그러나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각 가정까지 배달하는 라스트마일 경로는 각각 달라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만약 자율주행로봇 여러 대가 아파트단지에서 물품을 나르면 배송시간을 줄일 수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로봇사업실을 조직하고 자율주행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2016년 로봇 사업을 시작한 지 7년 만에 자체 기술력으로 자율주행 배송로봇 딜리를 제작했다. 딜리는 최대 30kg의 물건을 실을 수 있다. 적재함 부피는 2리터 물통 6개를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정도다.
카카오모빌리티, 영상데이터 원본 활용해 '자율주행 레벨4' 고도화
이날 과기정통부와 개인정보위가 개최한 간담회에는 실증특례 지정을 받은 4개 기업과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총 6개 기업이 참여했다. 실증특례 지정 회사인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율주행차량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영상 데이터 원본을 활용한다. 회사는 △인식·제어·관제 소프트웨어 △경로 구축 △차량사물통신(V2X) 등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3월부터 자율주행 기술 기업인 라이드플럭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협력해 제주에서 자율주행차량 서비스 '네모라이드(NEMOride)'를 운영했다. 네모라이드에는 제한된 구역에서 완전 자율주행할 수 있는 '레벨4 자율주행'이 적용됐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레벨4 자율주행 기술을 향후 △물류·대중교통 인력난 해소 △교통체증 해소 서비스 개발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날 포티투닷은 서울 시내에서 실증 운영 중인 자율주행버스를 선보였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과 고학수 개인정보위원장이 이 버스에 시승했다.
이 장관은 "영상정보 원본을 활용해 자율주행 AI를 고도화하겠다는 산업계의 요청에 정부가 화답했다"며 "자율주행 시스템 고도화를 위한 규제개선안이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자율주행차 시장은 매년 15% 정도 급성장하고, 자율주행로봇은 매년 30%에 육박한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며 "전 세계적으로 기술 경쟁이 벌어지는 영역에 관련 알고리즘 고도화를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윤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