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엘팬알백] ㉜1993년 LG vs OB 준PO…잠실라이벌 최초 가을야구

“정삼흠, 김용수, 김상훈 등 90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들이 건재하다는 점이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이다. 또 김태원이 노히트노런 이후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LG 트윈스 이광환 감독.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고 더구나 올해 너무나 어렵게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을 딴 이상 가능한 모든 힘을 발휘해 어떻게든 이기는 야구를 하겠다.”-OB 베어스 윤동균감독.
1993년 가을. LG 트윈스와 OB 베어스가 준플레이오프에서 격돌하게 됐다. OB는 페넌트레이스 막판 상승세로 3위로 마감했고, LG는 줄곧 2위를 달리며 1위까지 넘보다 결국 4위로 주저앉았다.
양 팀이 가을야구에서 만나는 것은 KBO리그 출범 후 이번이 처음. 잠실 라이벌팀이 덕아웃만 오가며 가을야구를 펼치기에 양 팀의 가을야구는 ‘덕아웃시리즈’로 불리며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32화는 LG와 OB의 사상 최초 덕아웃시리즈로 기록된 1993년 준플레이오프 이야기다. 그 최초의 기록과 기억,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LG, 잠실 최초 100만 관중 시대…잠실라이벌 OB와 준PO 성사
LG는 8월 19일까지만 하더라도 시즌 58승2무36패(승률 0.615)로 1위 해태(62승1무34패)에 3게임차로 따라붙어 선두탈환까지 노렸다. 그런데 이후 5연패에 빠졌고, 1승 다음에 다시 5연패를 기록하며 3위로 내려앉았다.
LG의 행보는 9월에도 힘겨웠다. 한 달 동안 7승1무14패(승률 0.341)로 내리막길을 탔다. 이에 반해 OB는 12승7패(승률 0.632)로 힘을 냈다.
특히 정규시즌 마지막 3연전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LG가 3연패를 한 반면 OB는 3연승으로 마침내 순위가 뒤바뀌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LG는 그해 잠실구장 최초 100만 관중(115만4309명) 시대를 열었다. 시즌 초반부터 기대 이상의 돌풍이 이어졌고, 신인 이상훈을 비롯한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하면서 LG 야구를 보려는 팬들이 급격하게 늘었다.
무엇보다 LG 야구는 재미있었다. 그해 정규시즌 126경기 중 무려 49경기가 1점차 이내 승부(25승3무21패)였다. 2점차 승부로 확대하면 67경기나 됐다. 2경기 중 1경기는 2점차 이내 승부를 펼쳤으니 LG 팬들은 연일 피 말리는 각본없는 드라마를 즐길 수 있었다.
한편으론 이런 힘든 여정의 여파로 인해 결국 LG 선수단에는 시즌 후반 체력적, 정신적 피로감이 몰려왔다고 볼 수 있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OB 66승5무55패(승률 0.544), LG 66승3무57패(승률 0.536). LG는 개막 이후 172일 동안 줄곧 OB에 앞서 있다가 마지막 단 하루 4위가 됐는데, 그것이 시즌 최종 순위가 되고 말았다.
4강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어차피 3위나 4위나 준플레이오프에서 시작하는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LG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시즌 후반 상승세를 탄 OB는 이로써 오랜 암흑기를 걷어내고 1987년 플레이오프(김성근 감독 시절) 이후 6년 만에 가을 무대에 진출하게 됐다. LG는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백인천 감독 시절) 이후 3년 만에 맞이하는 가을잔치였다.
LG 이광환 감독과 OB 윤동균 감독 모두 사령탑 데뷔 후 첫 가을야구 무대였다.
둘은 한 살 차이로 절친한 사이였다. 1982년 원년 OB 타격코치와 최선참 선수로 우승을 합작했고, 1989년 이광환 감독이 처음 OB 사령탑에 올랐을 때 윤동균의 사상 최초 은퇴경기를 기획하고 만들어주기도 했다. 훗날 이광환 감독이 2001년 한화 감독을 맡았을 때 야인으로 물러나 있던 윤동균을 수석코치로 불러 유니폼을 입혀주기도 했다.
그러나 두 감독은 이 가을승부를 형과 아우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맞이할 수 없었다. 가장 뜨거운 잠실 라이벌 팀의 수장으로서 승부의 대척점에 섰다. 더군다나 양 구단 최초의 포스트시즌 격돌이었기에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정규시즌 상대전적은 9승9패의 호각세. 과연 최초의 '덕아웃 시리즈' 승자는 누구일까.

◆1차전…2-1 역전승으로 최초 덕아웃시리즈 역사적 첫승

3전 2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 10월 2일 잠실구장에서 펼쳐진 1차전에 양 팀 팬들이 운집했다. 당시 3만1100명의 만원관중이 들어차면서 잠실벌이 들썩거렸다. 뜨겁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잠실 라이벌답게 프런트의 응원전 준비부터 요란했다. 홈팀인 OB는 1루쪽 관중석으로 향하는 팬들에게 흰색 풍선을 나눠주며 ‘시각효과’를 노린 반면 LG는 3루쪽 팬들에게 흰색 메가폰을 나눠주면서 ‘청각효과’로 맞섰다.
1차전 선발투수로 LG는 9일 9일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탄 김태원을, OB는 배팅볼투수 출신으로 3년 연속 10승 신화를 쓴 ‘배트맨’ 김상진을 내세웠다.

LG는 1회초 2사 후 ‘OB 킬러’ 송구홍이 좌전안타를 때렸지만 선취득점에 실패했다.
그러자 1회말 OB가 먼저 점수를 얻었다. LG로선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김태원이 3안타 1볼넷으로 흔들렸지만 1실점으로 선방했다는 점이었다.
포수 김동수의 연이은 호송구 덕분이었다.
선두타자 김광림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김동수가 허를 찌르는 1루 견제로 잡아냈다.
이어 이명수와 김형석의 연속 안타로 만들어진 사 1·3루에서 김상호가 중전 적시타를 때렸다. OB의 1-0 리드.
계속된 사 1,3루. 강영수 타석 때 김상호가 2루로 뛰려다 김동수의 강력한 송구에 멈추며 런다운에 걸렸고, 그 사이 3루주자 김형석이 홈으로 파고들었지만 아웃. OB의 더블스틸 작전이 오히려 찬물을 끼얹었다.
이 장면이 준플레이오프 전체 판도의 분수령이 됐는지 모른다.
김상진의 역투에 눌리던 LG는 4회초 마침내 찬스를 잡았다. 송구홍의 타격감과 과감한 센스가 돋보였다.
박종호가 유격수 쪽 내야안타로 살아나간 뒤 송구홍의 우전안타가 터졌다. 이때 우익수 김광림의 송구가 3루로 향하는 사이, 타자주자 송구홍이 '로보캅'처럼 곧장 2루로 내달려 무사 2·3루를 만들었다.
LG 덕아웃 분위기가 고조됐다.
송구홍은 1993년 LG에서 유일한 3할 타자였다. 타율 0.307였지만, 투고타저였던 그해 KBO리그 타율 부문 3위에 올랐다.
전년도 3루수 골든글러브를 받은 뒤 팀 사정상 유격수로 전환한 데에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로 인해 허리와 발목 등 여기저기 부상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에서 가장 믿을 만한 타자. 특히 그해 OB전에서만 4할 타율(0.400, 40타수 15안타)을 올려 ‘OB 킬러’의 면모를 자랑했다.

“제가 당시 OB와 해태에 강했기 때문에 두 팀 팬들이 저를 굉장히 싫어하셨죠(웃음). LG와 OB와 처음 가을야구에서 맞붙으니까 언론에서도 ‘지하철시리즈’니 ‘덕아웃시리즈’니 그런 얘기도 나오고…. 시리즈 전부터 긴장감이 고조됐어요. 시즌 때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두 팀의 첫 포스트시즌 맞대결이다 보니 팀 내부적으로 'OB한테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런 분위기였죠. OB도 그랬겠지만요.”
현재 고교 클럽팀 GD챌린저스 감독을 맡고 있는 ‘로보캅’ 송구홍 감독의 회상이다.
4회초 무사 2·3루라는 이 절호의 찬스에서 ‘검객’ 노찬엽이 좌익수 깊숙한 희생플라이를 날려 1-1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김상훈의 내야땅볼이 2루수 이명수 앞에서 불규칙 바운드되며 튀어 올라 우익수 쪽으로 달아났다. 공식기록은 2루수 실책. 이것이 결국 1차전 결승점이 되고 말았다.
OB는 김상진이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자 뒤집기를 노리며 김경원을 호출했다.
김경원은 그해 OB에 입단한 루키 소방수였지만 규정이닝을 채우며 평균자책점 1.11로 해태 선동열(0.78)에 이어 2위에 올랐다. 0점대 평균자책점을 3차례나 달성한 선동열을 제외하면 그해 김경원이 작성한 1.11 평균자책점은 지금까지도 KBO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다.
OB의 기대대로 김경원이 9회초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하지만 OB 타선은 김태원(8.2이닝 무실점)과 김용수(0.1이닝 무실점)를 넘어서지 못했다.
김태원은 1회 위기를 넘긴 뒤 9회 2사까지 5안타 1볼넷만 내준 채 1실점으로 역투했다.
완투를 눈앞에 뒀지만 김상호 타석이 되자 LG 이광환 감독은 과감하게 투수를 김용수로 교체했다. 거포 김상호의 한 방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 제구가 좋은 김용수 카드를 과감하게 빼들었고, 김용수는 3구 만에 김상호를 2루수 땅볼로 잡아냈다.
결국 LG가 1차전을 2-1 승리로 장식했다.
사상 최초로 잠실 라이벌끼리 맞붙은 준플레이오프에서 먼저 승리하자 경기 후 LG 팬들은 “송구홍!”, “김태원!”, “김용수!”, “김동수!”를 외치며 기쁨을 만끽했다.
이광환 감독 개인적으로도 포스트시즌 첫 승이라 의미가 있었다.

◆2차전…김경원에 눌린 LG, 0-1 패배로 1승1패 원점

2차전은 LG의 홈경기. LG 선수단은 1루 덕아웃을 사용했다.
1패를 당해 벼랑 끝에 선 OB는 2차전 선발투수로 이광우를 내세웠다. 시즌 동안 주로 중간계투로 활약(32경기 중 24경기 구원등판)했지만 LG 킬러의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규시즌 7승4패2세이브를 거뒀는데, LG전에서만 3승1패1세이브 수확했다.
LG는 ‘부엉이’ 정삼흠을 선발로 투입했다. 그해 OB전에서는 1승3패로 다소 부진했지만, 정규시즌 15승11패로 해태 조계현(17승)에 이어 다승 2위에 오른 주력 투수였다.
양 팀의 승부는 단 1점으로 갈라졌다. 4회초 OB 공격. 이명수가 전날 실책을 만회하려는 듯 1사 후 정삼흠의 주무기 슬라이더를 받아쳐 우중간을 뚫는 3루타를 날렸다. 이어 시즌 최다안타(147안타)의 주인공 김형석이 중전 적시타를 때려 1-0 리드를 잡았다. 이 점수로 2차전 승부는 끝났다.
LG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회말 1사 후 2번타자로 나선 김상훈이 좌익선상 2루타를 때렸지만 선취득점에 실패했다.
특히 4회말 찬스를 무산시킨 게 아쉬웠다. 김상훈의 중전안타와 송구홍의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1·2루 기회를 맞이했다. 희생번트가 나올 타이밍이었지만, LG에서 가장 날카로운 방망이를 휘두르는 ‘검객’ 노찬엽 타석. 이광환 감독은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2루수 정면 땅볼로 4(2루수)-6(유격수)-3(1루수) 병살타가 나오고 말았다.

투수교체 타이밍을 두고 한 박자 쉬었던 OB 윤동균 감독은 4회였지만 지체 없이 루키 소방수 김경원을 일찌감치 호출했다.
2사 3루에서 이병훈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김경원은 묵직한 강속구로 LG 타선을 막아나갔다. 9회까지 5.1이닝 2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LG는 5회말 선두타자 김동수의 우전안타로 1사 2루, 2사 3루 찬스를 잡았지만 무위에 그쳤다.
그 이후엔 득점권에 주자가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9회말 1사 후 송구홍이 우전안타로 나갔지만 노찬엽이 또 다시 2루수 앞 병살타로 물러나면서 0-1 패배를 감수해야만 했다.
정삼흠은 7이닝 1실점, 이어 나온 강봉수가 2이닝 무실점으로 제몫을 다했지만 타선이 침묵을 지켜 3차전 최후의 승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3차전…‘약속의 8회’ 빅이닝! 5-2 역전드라마 PO 진출

LG 이광환 감독은 사실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가슴 한쪽에 사표를 품고 있었다. 8월 이후 성적이 급전직하하자 연일 LG 팬들의 성토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전년도 7위에서 4위로 올라선 성적만 놓고 보면 성공적인 시즌이라 평가할 수 있지만, 같은 4위라도 순위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기에 여론이 좋지 않았다.
특히 잠실 라이벌 OB에 3위 자리마저 빼앗겼기에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한다면 스스로 지휘봉을 계속 잡을 수 있는 명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스스로 물러나려고 했던 것이다.
이 감독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선 심정으로 3차전에 소방수 김용수를 선발로 내는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선발로 등판하지 않았던 김용수였다.
OB는 원년 우승의 영웅 ‘불사조’ 박철순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철순은 부산에 사시는 부모님이 새벽기도를 가다가 택시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부산으로 달려가는 대신 눈물을 머금고 마운드에 섰다.
박철순과 김용수. 양 팀 팬들의 자존심이자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이름들이다. 선수들도 라이벌 의식이 강했지만, 팬들도 라이벌 팀에 질 수 없다는 듯 경기 전부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LG의 선공으로 시작된 경기는 2회까지 탐색전으로 펼쳐졌다.
0-0의 균형이 깨진 건 3회말. 김용수가 먼저 무너졌다. 2사 2루서 이명수에게 우중간 3루타를 맞고 선취점을 내줬다.
LG는 김용수의 투구수가 43개에 이르자 4회말부터 차동철로 교체했다.
박철순의 역투에 눌리면서 LG 덕아웃엔 초조함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그 무렵 5회초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2사 후 8번타자 김경하와 9번타자 이종열의 연속 안타로 2사 2·3루를 만들었다.
그러자 OB 벤치가 움직였다. 다시 전가의 보도처럼 일찌감치 김경원을 호출했다. OB로선 승부수였다.
이날 LG 1번타자로 전진배치된 송구홍이 유격수 쪽으로 땅볼을 때렸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OB 유격수 김민호가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빠뜨리는 실책을 범하면서 1-1 동점이 됐다.
LG의 분위기가 끓어오르는 시점. 하지만 5회말 OB 김상호가 좌월 솔로홈런을 날리면서 다시 1-2로 뒤지게 됐다.
LG는 그해 선동열급 마무리투수로 활약한 김경원의 구위를 알기에 추가 실점을 하면 승부를 뒤집는 게 어렵다고 보고 가장 구위와 컨디션이 좋은 김태원을 6회부터 투입했다.
7회말까지 스코어는 그대로 1-2. LG에게 남은 이닝은 8회와 9회 2이닝밖에 없었다. 초조함이 밀려오는 시점이었다.

‘OB 킬러’ 송구홍이 철옹성 같이 버티던 김경원을 흔들었다. 8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좌전안타로 출루했다.
전년도에 서울팀 선수 최초로 ‘20-20 클럽’을 달성한 송구홍이었다. 호시탐탐 2루를 넘보며 리드를 잡자 김경원이 1루에 견제구를 던졌는데 악송구가 됐다. 이어 박종호의 볼넷으로 무사 1·2루. LG로서는 이날 가장 좋은 황금찬스를 잡았다.
김영직 타석 때 대타 김선진을 내세워 희생번트를 시도했다. 하지만 선행주자가 3루에서 아웃되면서 끓어오르던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서 김상훈이 등장했다. 괜히 '미스터 LG'가 아니었다. 우전 적시타! 2루주자 박종호가 홈을 파고들면서 2-2 동점이 됐다.
이어 김동수의 좌전 적시타! 3-2 역전을 만들었다. 잠실구장 3루 쪽 LG 관중석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김경원이 하루를 쉬었다고는 해도 1~2차전 연투를 했고, 특히 2차전에서 5.1이닝을 던진 여파가 나타나는 듯했다.
결국 OB 벤치는 김경원을 내리고 김상진을 호출했다.
한번 달아오른 LG 방망이는 식지 않았다. 박준태가 우전 적시타로 스코어를 4-2로 벌리고, 계속된 1사 1·3루서 노찬엽이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날려 5-2로 달아났다.
8회에만 4안타 1볼넷을 집중시켜 4득점의 빅이닝을 만들면서 승기를 잡았다.

마운드의 김태원은 더욱 힘을 냈다. 6회와 7회에 이어 8회말에도 삼자범퇴. 9회말 선두타자 이명수가 유격수 송구홍의 실책으로 출루했지만, 김형석과 박현영을 연속 삼진으로 잡고 대타로 나선 곽연수를 포수 파울플라이로 유도했다. 4이닝 무안타 무실점. LG의 5-2 역전드라마를 마무리했다.
사상 최초의 덕아웃시리즈에서 천신만고 끝에 2승1패로 이긴 LG 선수단은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고, 3루 쪽 팬들은 잠실구장이 떠나가라 “LG! LG!”를 연호했다.
3차전 막판에 승부가 기울긴 했지만, 사실상 3경기 모두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1점차 승부였다.
시즌 막판 거듭되는 패배에 갈수록 얼굴색이 어두워졌던 이광환 감독은 가슴 속에 품었던 사표를 거둬들이며 모처럼 활짝 웃었다.
신사와 같은 이 감독도 이런 날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마운드로 달려가니 오히려 김태원이 먼저 두 팔을 벌려 감독을 뜨겁게 포옹했다. 개막전 선발투수, 준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투수로 낙점하면서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준 스승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
이 감독은 경기 후 잠실구장을 빠져나오다 LG 팬들에 둘러싸였다. 이번엔 청문회 요구가 아닌 승장으로서 박수를 받는 자리. LG 팬들은 “이광환!”을 연호하며 열광했다.

“1993년엔 제가 팔꿈치 통증이 있어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시즌 준비를 워낙 열심히 해서 체력적으로는 지치지 않았어요. 9월 9일 노히트노런을 하고 나서 자신감도 생겼고, OB는 라이벌 팀이니까 꼭 이겨야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분위기 자체가 그랬어요. 그래서 이광환 감독님께 자청해서 ‘제가 나가서 해결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던 기억도 납니다.”
199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역투를 펼친 김태원(현 대학야구 전주기전대 감독)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타선에서 승리를 이끈 ‘OB 킬러’ 송구홍(현 고교 클럽팀 GD챌린저스 감독) 역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저도 프로에서 처음 맞이하는 가을야구였고, 여기서 지면 마지막 게임이 될 수도 있으니 집중력이 더 올라왔던 것 같아요. 그해 여기저기 잔부상이 많았지만 상대가 OB이다 보니 준플레이오프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남달랐죠. 우리가 OB를 이기고 나서 팬들이 잠실구장에서 떠나지 않고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던 기억도 납니다.”

◆PO 진출 LG, 전자업계 라이벌 삼성과 격돌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LG는 삼성과 만나게 됐다.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무패로 이겼던 상대. 가을야구 역사에서 두 번째 만남이었다.
게다가 삼성은 전자업계의 라이벌 구단. OB는 팬심으로 이겨야 할 라이벌이라면, 삼성은 그룹 차원의 자존심이 걸린 적수였다.
요즘 같으면 2위팀으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팀의 홈구장에서 1~2차전을 먼저 치르겠지만, 당시 KBO 대회요강엔 서울 본거지 구단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경우 상·하위팀에 관계없이 잠실구장에서 1~2차전을 실시하기로 돼 있었다.
그래서 1차전은 잠실에서 막이 올랐다.
[엘팬알백] ㉝편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