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얻다 대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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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 하지만 멸종된 유니콘이 여의도엔 실재한다.
너의 말에도 화가 나지만, 그 말을 하필 네가 해서 더 열받는다는 의미다.
말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도 바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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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세상엔 유니콘 같은 문장들이 존재한다. 사전이나 문헌에선 보이지만, 실제 쓰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표현들이다. 막장드라마는 이런 유니콘의 보고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이나 “섭섭하지 않게 넣었어요(봉투를 건네며)”란 말을 실제론 듣기 어렵다. “부숴 버릴 거야”라는 독설도 현실에선 만날 수 없다. 이 표현들이 픽션에서만 쓰이는 이유는 실제보다 갈등을 더 폭발적으로 묘사해야 하기 때문일 게다.
□ 하지만 멸종된 유니콘이 여의도엔 실재한다. 현실에서 썼다간 매장당하기 십상인 독한 표현을 끝없이 생산하는 곳이 국회다. 요즘 귀를 자극하는 표현은 ‘얻다 대고’다. 야당이 여당의 사법부 압박을 비판하자, 여당 대표는 “얻다 대고 삼권분립 사망 운운하느냐”며 반박했다. 야당 대표에게 ‘김어준 똘마니’ 평가를 받자, 여당 대표는 “내란수괴 똘마니 주제에 얻다 대고”란 말로 대갚음했다. 사실 ‘얻다 대고’는 선공이 아니라 반격에서 쓰이는 표현이다. ‘당신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는 점을 일깨우는 목적이다.
□ 그러나 ‘얻다 대고’ 앞엔 대부분 ‘감히’라는 말이 생략돼 있다. ‘얻다 대고’로 받아치는 순간 대화는 끝이고 이제부터 싸우자는 뜻이다. 그 이면엔 까칠한 자의식과 상대에 대한 무시 또는 폄하의 뉘앙스가 깔려 있다. 너의 말에도 화가 나지만, 그 말을 하필 네가 해서 더 열받는다는 의미다.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돌린 재벌 3세도 승무원을 다그치며 “얻다 대고 말대꾸냐”며 호통을 쳤다.
□ 2017년 고영주(→신경민), 2018년 정청래(→한국당), 2019년 정진석(→문재인), 2021년 정청래(→이재오), 2022년 이준석(→배현진) 등에서 그 활용이 발견된다. 대부분 여의도 사람들인 이유는 그만큼 그곳이 국민으로부터 동떨어진 생각과 말을 하기 때문이다. 거친 말이 정치를 난장으로 만드는지 아수라 정치가 험한 말을 유발하는지 모르겠지만, 저급한 언어와 3류 정치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며 국민의 정나미를 떨어지게 할 뿐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마르틴 하이데거)이다. 말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도 바뀌기 어렵다.
이영창 논설위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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