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지를 찾아서] 강릉 개두릅 | 디지털농업

서륜 2025. 6.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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쌉싸래하면서 구수한 맛·향 일품

이 기사는 성공 농업을 일구는 농업경영 전문지 월간 ‘디지털농업’6월호 기사입니다.

제철 봄나물을 잘 먹어둬야 여름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싹을 틔우는 봄나물에는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돼 우리 몸에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신록의 계절을 지나오며 활력은 더하고 나쁜 기운은 내쫓는다는 봄나물 소식을 듣고 강원 강릉으로 향했다. ‘개두릅(엄나무 새순)’이 주인공이다.
나른해지기 쉬운 계절에 입맛을 살리고, 기운도 솟게 하는 산나물의 대명사 두릅은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참두릅’ ‘개두릅’ ‘땅두릅’ 크게 세 종류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기 때문. 참두릅은 두릅나무의 새순, 개두릅은 엄나무의 새순, 땅두릅은 ‘독활’이라는 다년생 여러해살이풀의 새순을 가리킨다. 태생이 다른데 어찌 성씨만 다르고 이름이 같으냐고 하면 셋 모두 두릅나뭇과 식물에 속하고, 생김새도 닮아 있는 데서 이유를 짚어볼 수 있다.

세 가지 두릅 가운데 무엇이 더 좋고 나쁘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선택은 먹는 이의 취향에 달렸다. 참고로 수확 시기는 땅두릅이 가장 빠르고, 개두릅이 가장 늦다. 쌉싸래한 맛과 향은 땅두릅에서 참두릅, 개두릅 순으로 짙다. 생김새는 땅두릅과 참두릅이 짧은 줄기에서 순이 뭉쳐 올라오는 모양새로 꽤 닮았다.

사포닌 등 생리활성 물질이 많이 함유된 강릉 개두릅.

반면 개두릅은 잎이 단풍잎 모양으로 훨씬 크고 질감도 단단해 육안으로 쉽게 구분이 된다. 한편 초본식물인 땅두릅 줄기에는 가시가 전혀 없는 반면 목본식물인 참두릅과 개두릅 줄기에는 잔가시가 있다. 개두릅 줄기의 잔가시가 참두릅보다 단단한데 물에 데치면 오히려 아삭아삭 씹는 맛이 좋으니 걱정할 것 없다.

개성 있는 세 종류의 두릅 가운데 개두릅, 그중에서도 ‘강릉 개두릅’이 2012년 지리적표시 임산물로 등록됐다. 보통 ‘개-’라는 접사가 붙으면 ‘빛 좋은 개살구’의 용례를 떠올려 품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개두릅에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다. 개두릅에 붙은 ‘개-’는 ‘야생 상태’ 또는 ‘토종’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합하다.

곡우 전후로 즐기는 영동 지역의 봄철 절기식
개두릅을 피워내는 엄나무는 가지에 뾰족하고 단단한 가시가 빼곡해 예부터 나쁜 기운을 막는 벽사(邪) 나무로 쓰임이 많았다. 전국 곳곳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 중에 엄나무가 많은 것이나 대문 또는 방문 위에 엄나무 가지를 걸어둔 풍속도 이와 관련이 있다.

“가시 때문에 채취가 쉽지 않은 데다 당산나무는 신령한 존재로 여겨 다른 지역에서는 개두릅을 식용하는 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예부터 강원도, 특히 대관령 동쪽의 영동 지역에서는 곡우를 전후해 개두릅을 먹어야 봄을 잘 보낸 거라고 했습니다. 일종의 절기식인 것이죠.”

권우태 강릉개두릅생산자협회 대표(74)가 강릉 개두릅의 역사성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줬다. 영동 지역은 겨울이 길어 봄 산야초도 늦게 돋는다. 이렇다 할 봄나물이 없는 시기에 엄나무 가지에서 돋은 새순은 자연스레 봄을 상징하는 먹거리가 됐다.

권우태 강릉개두릅생산자협회 대표. 2008년 이장직을 맡으며 자연스레 개두릅 농가들의 참여를 독려해 생산자협회를 조직하고, 지금까지 지역 특산물로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엄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지만 해발 200~ 700m 중산간지대, 배수가 원활하고 비옥한 토양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곳에서 잘 자란다. 반음지성 식물로 자연 상태에서는 큰 나무들 사이의 완만한 산비탈이 최적지로 손꼽힌다. 서쪽은 태백산맥, 동쪽으로 바다를 둔 강릉 중산간 마을은 엄나무가 자생하기에 나무랄 데 없는 환경이다. 그런데 1970~1980년대 자연 상태의 엄나무 개체 수가 급감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산림 개발이 가속화했고, 엄나무가 한약재로 주목받으며 무분별하게 채취된 탓도 있다.

“엄나무 개체 수 감소가 지속되자 1990년대 중반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에 박원종 씨와 박용훈 씨가 엄나무 묘목을 밭에다 옮겨 심고 과수 형태로 재배할 수 있는 수형화 작업을 했어요. 그게 성공하면서 소득작물로 개두릅 재배를 시도하게 됐습니다.”

근주삽목으로 묘목 확보…수형 관리도 중요
강릉 전역으로 개두릅 재배가 확대된 것은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다. 참두릅이 돋아나는 두릅나무는 조직이 부드럽고 연해 꺾꽂이(삽목)가 잘되는 반면 개두릅을 틔우는 엄나무는 목질이 단단하고 거칠어 꺾꽂이를 해도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씨앗을 심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만 이 역시 성공률이 낮다.

“2002년경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의 곽형진 씨가 근주삽목(뿌리 근처에서 새로 돋은 순을 잘라내 모종처럼 심어 키우는 방식) 증식에 성공해 엄나무 묘목을 농가에 보급할 수 있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중산간 휴경지에 대체작물 정도로 키웠다면 이를 기점으로 개두릅 대량 재배가 현실화된 것이죠.”

권 대표에 따르면 현재 강릉시 남쪽의 옥계 지역부터 북쪽의 주문진 지역에 이르기까지 총 15개 작목반, 210농가가 강릉개두릅생산자협회에 가입돼 있다. 또 작목반별로 양묘를 전문으로 하는 농가가 한두 곳씩 있어 수요에 따라 묘목을 보급하고 있다.

강릉 개두릅은 굵기가 1㎝ 이상, 길이가 10㎝ 내외인 주순이 특품으로 유통된다.

강릉 개두릅 농가는 5년생 이상인 엄나무의 주순(가지 끝에서 자라는 새순)을 상품으로 판매한다. 2~4년생 때도 새순이 나오지만 수량과 품질 측면에서는 5년생 이상을 수확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한 가지 중간에도 새순이 달리고 섭취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영양 측면과 소비자의 선호, 엄나무 생장을 고려해 주순을 상품화하고 있다.

산자락에서 자생하는 엄나무와 달리 밭에서 집단 재배하는 엄나무는 재배 방식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권 대표는 2~3년 주기로 가지치기를 통해 수형을 잡아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중심 줄기는 곧게 하고, 옆 가지는 사방으로 적당히 벌어져 햇빛을 고루 잘 받아야 고품질의 새순을 얻을 수 있고, 채취하기도 좋다는 것.

“농사를 지어보니 엄나무는 토양도 세심히 살펴야 합니다. 재배지에 물이 고이면 뿌리가 쉽게 썩어 나무가 고사하기 쉬워요. 배수 관리가 첫째죠. 새순을 채취하는 만큼 토양도 비옥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1~2번 시비를 꼭 합니다.”

가시 없는 ‘민가시 개두릅’ 보급 확대
강릉에서 집단 재배하는 엄나무는 3.3㎡(1평)당 한 그루를 심고, 개두릅 채취로 3.3㎡당 2만 원대의 소득을 얻고 있다. 고소득작물로 주목받는 개두릅은 최근 전국적으로 재배 면적이 확대되고 있다. 여기엔 민가시 엄나무 보급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민가시 엄나무는 일부 농가에서 자연 변이로 가시가 없는 엄나무를 선발해 양묘했는데, 2015년 강릉시농업기술센터가 조직배양 기술을 개발하면서 보급이 확대되는 추세다. 민가시 엄나무는 수확 효율성, 노동력 절감이라는 효과를 불러와 농가의 선호도가 높다. 권 대표도 현재 가시가 있는 엄나무 300그루와 민가시 엄나무 500그루를 재배하고 있다.

지금 당장에는 강릉 개두릅이 좋은 값에 유통되지만 재배 면적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권 대표는 강릉 개두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했다.

“강릉 지역 내에 재배 면적을 더욱 확대하고, 품질이 떨어지는 나무를 우수목으로 교체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지금은 개두릅을 대부분 원물로 유통하는데, 향후 가공품 개발로 새로운 소득원도 마련해야 하고요.”

권 대표는 “갈 길이 멀지만 강릉 개두릅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런 일을 피할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그 덕에 벌써부터 다음 봄을 기대하게 된다.

글 서진영 |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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