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대통령 취임식이 ‘여사 의혹’의 중간 저수지였나
관련자들 대통령 취임식 참석
그 정도면 ‘의혹 중간 저수지’
얼마나 많은 ‘오물’ 쏟아질지 걱정
인터넷 매체 등에서는 김 여사가 2022년 6·1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올 4·10총선의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녹음파일과 주장들이 연이어 공개되고 있다. ‘정치 브로커’로 알려진 명태균 씨가 김 여사와 윤석열 대통령을 통해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했거나, 행사하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명 씨는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대선 당시 윤 대통령 부부 자택을 수시로 방문하며 국무총리 후보를 추천했다는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관련한 추가 의혹도 쏟아지는 중이다. JTBC 보도 등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2차 주가조작의 ‘선수’ 김모 씨는 2021년 10월 검찰 조사에서 “자기들 말로는 BP(블랙펄인베스트의 영문 약칭으로 추정됨) 패밀리가 있는데 권오수, 이종호, 김모 씨, 김건희, 이모 씨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권오수 씨는 ‘선수’ 김 씨에게 주가조작을 의뢰한 도이치모터스의 오너, 이종호 씨는 주가조작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블랙펄인베스트 전 대표다. 김 씨와 이종호 씨는 주가조작 사건이 시작되기 전부터 김 여사와 함께 도이치모터스 주요 주주로 참여해 온 인물들이다. ‘선수’ 김 씨의 “BP 패밀리” 운운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긴밀한 관계였을 수 있다.
또 이들 중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도 받고 있는 이종호 씨는 2012년 이후에는 김 여사와 연락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도이치모터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 시작된 2020년 9, 10월경 김 여사 번호로 40차례나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관저 공사는 지난달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로 불신과 의혹이 오히려 커진 경우다. 감사원은 관저 공사를 총괄한 업체인 ‘21그램’이 계약도 하기 전에 공사에 착수했고, 15개 무자격 업체에 하도급업체 공사를 맡겨 건설산업기본법을 위반했다는 등의 지적 사항을 발표했다. 하지만 종합건설업 면허도 없는 영세업체에 국가 최고 보안시설인 관저의 확장과 보수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맡기도록 결정한 이가 누구인지, 가장 핵심적인 특혜 의혹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맹탕 감사 결과를 내놨다. ‘21그램’은 김 여사가 경영해 온 코바나컨텐츠에서 오래전부터 일감을 받아온 사실이 익히 알려진 업체다. 이러니 누가 감사 결과를 믿겠는가.
이상 언급한 세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관련자들이 모두 윤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는 점이다. ‘정치 브로커’ 명 씨, ‘BP 패밀리’로 언급된 김 씨와 이 씨, ‘21그램의 대표’ 김모 씨가 초청장을 받거나 취임식 당일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1심 재판 중이었던 권오수 이종호 씨는 취임식에 가지 않았지만, 그 대신 권 씨의 아들과 부인이 참석했다.
이들 외에 김 여사와 서울대 EMBA 과정을 함께 다닌 인연으로 김 여사의 어머니 최은순 씨의 잔액증명서를 위조해 준 김모 씨, 김 여사와 공동 작성 논문으로 위조 및 표절 논란에 휩싸인 김모 교수, 무속인 천공의 측근 등도 취임식에 참석한 사실이 언론의 취재를 통해 밝혀졌다. 모두가 김 여사와 인연을 빼고 나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될 만한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지만, 취임식은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철학과 비전, 주요 정책 등을 전 국민에게 밝히는 엄숙한 자리다. 당연히 참석자 한 명 한 명이 5000만 국민에 대한 대표성을 가져야 하며, 선정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 주가조작 패밀리, 문서위조범, ‘업자’, 무속인, 정치 브로커 등이 무더기로 섞여 들어 있었던 것이다. 취임식이 ‘여사 의혹의 중간 저수지’였다고 해도 할 말이 없고, 뒤탈이 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면면이다.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윤 대통령 취임식 직후 참석자 명단을 놓고 논란이 일자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나서 “전부 파기했다” “일부 남아 있다” 등 오락가락 해명 끝에 명단의 일부를 공개했다. 하지만 정작 의혹과 관심의 대상이었던 대통령 부부의 초청 명단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니 앞으로 이 ‘저수지’에서 얼마나 많은 ‘오물’이 쏟아질지 모른다. 지금 그 전조를 보는 것 같아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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