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가 상한·한전채 증액, 전기료 인상 없인 ‘미봉책’

2022. 12. 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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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가 90원 내리면 9개월 비용 6조3000억 줄지만
올 3분기까지 적자만 21조8000억원으로 역부족
정부·국회, 한전채 한도 증액…기업 줄도산 위기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가 12월 1일부터 시행됐다. SMP 상한제는 한국전력이 전기를 발전사로부터 구매할 때 기준이 되는 전력도매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제도다. 11월 30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전날 전기위원회를 통과한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규칙 개정안을 승인한 후 바로 다음날부터 적용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SMP 상한제는 직전 3개월간의 평균 SMP가 그 이전 10년 평균 SMP의 상위 10% 이상일 경우 1개월간 SMP에 상한을 두게 된다.

사진 / 서성일 기자


이에 따라 12월 적용되는 SMP 상한가격은 kWh당 육지 158.96원, 제주 226.56원으로 결정됐다. 먼저 최근 3개월간 SMP 가격이 242.40/kWh로 이전 10년 평균 SMP의 상위 90%에 해당하는 154.19/kWh를 넘기 때문에 상한제 시행조건을 충족하게 됐고, 그에 따라 정산된 가격은 직전 10년 평균 SMP(육지 105.97·제주 151.04)에 1.5를 곱한 가격으로 결정됐다.

정부는 지난 5월 행정 예고안과 비교해 SMP의 상한 수준을 정하는 산식에서 직전 10년 SMP 평균가격에 곱해주는 가중치를 기존 1.25배에서 1.5배로 올렸다고 밝혔다. 민간 발전사업자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가격 상한선을 올린 것이다. 소규모 태양광발전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00㎾ 미만 발전기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기본 1개월을 적용하고, 연속해서 3개월을 초과해 적용할 수 없도록 했다. 1년간 시행 후 일몰토록 했다.

한전채 한도 상향은 임시방편 한전은 다음날 거래일의 전력 수요를 예측해 하루 전 발전사로부터 공급가능한 발전량을 입찰받는다. 이때 당일 발전 필요량을 충당하기 위해 (비싸서) 가장 마지막으로 사용한 발전원의 가격을 기준으로 전체 SMP를 결정하기 때문에 ‘계통한계가격’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원전과 재생에너지, 석탄화력 등에 비해 발전용 천연가스 가격이 가장 비싸기 때문에 SMP는 천연가스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SMP보다 낮은 발전단가를 가진 발전원은 그 차이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다.

SMP 상한제로 이달 육지에 적용되는 SMP는 직전 3개월 평균보다 약 83원 줄었다. 그만큼 한전이 사가는 전력구매비용이 줄게 된다. SMP 상한제가 한전 적자를 줄이기 위한 목적임을 알 수 있다. 산업부 전력시장과 관계자는 “SMP 상한가격보다 연료비가 높아질 경우 별도로 보상을 하도록 했기 때문에 연료비 변동에 따라 전망의 정확도는 떨어질 수 있다”면서도 “SMP 가격이 80~90원만큼 떨어질 경우 한전 적자는 매월 5000억~7000억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상한제를 시행하는 기간이 연간 9개월이라면 한전의 적자는 최대 6조3000억원 줄어든다.

서울 도심의 주택가 우편함에 전기세 고지서가 꽂혀 있다. / 문재원 기자


올해 한전은 3분기까지 21조8342억원의 적자를 봤다. 1~3분기 누적 기준 역대 최대의 영업손실이다. 연료비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겨울철 난방수요가 더해지면 한전의 적자는 올해 말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SMP 상한제가 적자 해소에 도움은 되지만 근본 해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전은 자금 사정이 나빠지자 발전사에 지불할 전력구매대금을 채권시장에서 조달하고 있다. 한전채는 2020년 3조4000억원, 지난해 10조4000억원에서 올해 10월까지 27조원으로 급증했다. 연말까지 한전의 회사채 발행잔액은 법정 한도의 2배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전법상 자본금에 적립금을 더한 액수의 2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는데, 올해 대규모 손실로 적립금이 깎이면 내년부터는 더 발행할 수 없게 된다. 정부와 국회는 한전채 발행한도를 늘리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11월 24일 발행한도를 5배로 늘리는 내용의 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산업부 관계자는 “적자가 크게 누적되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크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에선 채권한도를 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 위반 가능성을 없애려면 한전채 한도 증액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 또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신용등급이 높은 한전채로 채권시장의 자금이 쏠리면서 대기업마저 채권 발행이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다른 회사채들이 쫓겨나는 ‘한전채의 회사채 구축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금융당국은 한전채 발행을 줄이려고 은행들이 한전에 2조원 정도의 대출을 해주도록 주선하기는 했다. 문제는 한쪽에선 채권 발행한도를 늘려주고, 한쪽에선 한전채 발행을 줄이는 식으로 엇박자를 내면서 시장의 신뢰를 급속도로 잃고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김진태 사태’로 채권시장의 허약한 체질이 드러난 마당이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적자가 쌓이면서 채권으로 계속 ‘땜방’을 하고 있다. 금융위에서는 한전에 채권을 내지 말라고 하고 정치권은 전기요금을 올리는 대신 채권한도를 늘리는 법을 만들고 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 둘 다 이해는 가지만 이런 엇박자는 한국 채권시장의 전반적인 신뢰를 깎아 먹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PF대출의 지급보증을 거부하면서 채권시장의 신뢰를 깬 불똥이 한전으로 튀었다”면서 “결국 채권한도를 늘리는 쪽이 아니라 전기요금을 올리는 게 궁극적으로는 맞는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SMP 상한제는 한국형 ‘횡재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발전가격이 가스 가격에 연동된 나라들의 에너지·발전기업의 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9월부터 여러 나라가 이에 대응해 발전이익상한제나 ‘횡재세(windfall tax)’를 부과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횡재세는 외부요인이나 독점적 지위 등으로 정상이득 범위를 넘어선 초과이윤을 얻을 경우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유럽연합은 올해 9월 재생에너지, 원자력, 갈탄 등의 수익에 메가와트시당 180유로(약 24만5000원)의 발전이익 상한을 설정하고 화석연료 기업에는 횡재세 성격의 연대기여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횡재세는 이미 스페인과 이탈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등에서 도입했다.



국내에서도 은행과 정유사의 초과이윤에 횡재세를 매겨야 한다는 여론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지난 11월 25일 기자회견에서 “횡재세는 윤석열 정부의 대규모 부자 감세에 맞서는 강력한 수단”이라며 “횡재세를 부과하면 3조~4조원 규모의 세수가 걷힌다. 현재와 같은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금융·에너지 취약계층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큰 액수”라고 밝혔다.

정부는 민간 발전사의 초과이윤을 제한하는 SMP 상한제도 일종의 횡재세라고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자력과 석탄은 공기업이라 SMP를 받아 과도한 초과이익이 발생하면 정산조정제도로 적정 수준까지 회수한다”면서 “민간 발전사의 경우도 과도한 수익을 제한하는 차원의 비상조치는 필요하다고 보고 SMP 상한제를 도입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SMP 상한제나 횡재세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있다. 김승완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사단법인 넥스트 대표)는 “SMP 상한제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정부가 사업자 수익에 손을 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안 좋은 사례로 보인다. 원칙적으로는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SMP에 상한을 둘 경우 가격 신호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SMP는 전력시장을 운영하는 ‘자동항법장치’이다. 그걸 인위적으로 묶으면 공급이 모자라도 수요자 측은 가격이 저렴하다고 생각해 평시대로 전기를 쓰게 된다. 반면 가스발전사 입장에선 국내로 가지고 와봐야 수익이 안 나니 저렴하게 도입한 장기계약 물량을 웃돈을 주고 해외에 팔 수도 있다. 그래서 가스발전의 가격 상한제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MP 상한제가 재생에너지 발전의 수익성을 낮춰 보급을 늦출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가격상한제를 도입할 때 실제 그 적용을 받는 에너지원은 가스발전과 재생에너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횡재세는 유정과 가스전과 같은 상부 부분을 확보한 에너지 회사들에 적합해 주로 하부 부분만 있는 국내 상황에 바로 도입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횡재세는 주로 유럽에서 추진되는데 유럽에는 석유·가스 메이저들이 있다. 그 기업들은 가스전과 유전을 갖고 있어 국내 기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은 다 하류 부문에 있다. 원유를 도입해 정제해 정제 마진을 남기고 민간 발전사는 가스를 수입해서 발전해 차익을 남기는 건데 이 업체들은 미리 사둔 물량의 가격 대비 올라간 가격의 차이인 일종의 ‘저장효과’ 때문에 수익이 발생한 것이라 유럽처럼 횡재새를 적극 도입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LS머트리얼즈 직원이 ‘전기차 충전용 하이브리드 ESS’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커패시터를 생산하고 있다. / LS전선 제공


전기요금 최소 kWh당 60원 올려야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제시하는 해법은 전기요금 인상이다. 전기를 희소한 자원이 아니라 공공재처럼 여기면서 원가에 상관없이 저렴하게 공급해온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전기요금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면서 수요관리도 실패하고, 에너지 소비 효율화나 재생에너지의 시장 진입도 어려웠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전력 도매요금이 오른 만큼 소매요금도 올라야 정상인데 그걸 방치한 결과 한전 적자가 폭증했고, 그 부담을 채권시장에 전가하면서 기업들이 자금을 못 구해 1년짜리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기업이 줄도산할 위기에 있는데도 ‘한전채’라는 미봉책에 의존하면서 부채는 부채대로 늘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기준연료비와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는 오는 12월 중순 이후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연간 한전 전력구입비가 100조원이고 적자가 30조원이라고 할 때 거칠게 계산하면 전기요금을 30% 이상은 올려야 적자 해소가 가능하다. 전기요금 인상이 kWh당 60원 정도는 필요하지만, 실제 규모는 직전 전기요금 인상분과 비슷한 10원 내외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석 전문위원은 “한전이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1kWh당 현재 110~120원 사이에서 약 180원으로 적어도 50% 이상 인상해야 올해 적자분을 해소할 수 있다”면서 “연료비 조정단가의 상하한을 kWh당 5원으로 정한 제도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4인 가구 월평균 전기 사용량은 307kWh이다. 전기요금을 kWh당 60원 인상하면, 월 1만842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석 전문위원은 “요금 정상화만이 근본 해법인데 정치권이 총선 같은 정치적 일정 전까지는 절대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해 문제”라고 밝혔다. 김승완 교수는 “(전기요금 결정은) 정치와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이슈”라면서 “정치권이나 대통령실, 기재부가 아니라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독립적인 전문기구가 한전이 적자를 면하고 지속가능한 적정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11월 21일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만월산 정상에서 풍력발전기 설치공사가 한창이다. / 연합뉴스


재생에너지 확대로 외부 충격 줄여야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전채로 자금을 조달하면 기업의 자금조달을 막아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임시방편에 기댈 게 아니라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 현재 상황을 정치권이 정확히 설명하고, 비용을 분담할 수 있도록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부담이 커질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재난지원금 성격의 현금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석 전문위원은 “정부와 국회가 에너지 취약계층이 경기침체 상황과 전기요금 인상 속에서도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현금지원과 에너지 쿠폰 지급 등을 위한 대규모 지원금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유럽 대부분 국가는 에너지 요금은 시장기능에 맡기고, 이 같은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과 함께 가스와 화석 등 화석연료 가격 변동의 영향을 덜 받도록 전력 생산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필요도 있다. 그리하면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무역적자 확대도 줄일 수 있다. 김 교수는 “전기요금 정상화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가격 변동의 영향을 덜 받는 전원을 늘려야 한다”면서 “우리나라에선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있지만, 단기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원전보다 태양광과 풍력의 비중을 지금보다 높여야 이런 일에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기요금을 억지로 누르고, 한전 적자를 지속하는 건 탄소중립 이행에도 악영향을 준다. 전기요금이 원가를 반영하지 못해 시장 가격이 수요조절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는 재생에너지에 투자할 유인이 생기기 어렵다.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이 변한다. 이런 변동성을 흡수하려면 에너지 저장장치(ESS), 양수발전 같은 변동성 흡수 자원만이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를 이용한 수요관리 등에도 많은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송배전망도 제때 연결해야 한다. 김 교수는 “탄소중립 과정에서 많은 기술개발 투자와 송배전망 투자가 필요한데 한국전력의 적자로 이런 투자가 연기되고 중단되는 상황”이라면서 “이 모든 게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속도를 늦추는 방향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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