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드롱을 꺾었던 남자, 이번엔 산체스 앞에 선다..4년 공백 문제 없나?

PBA가 새 시즌 128강 대진표를 공개했을 때, 관계자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준 매치업이 있었다. 다니엘 산체스 대 해커. 랭킹 1위와 4년 만에 돌아온 와일드카드의 첫 경기다.

우연이 아니다. 이 대진은 PBA가 의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개막 신호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이벤트성 배치인지, 아니면 실제로 경쟁력 있는 대결인지다.

안광준, 당구 커뮤니티에서 '해커'로 통하는 이 선수의 이력은 단순하지 않다. 21-22시즌, 그는 아마추어 출신 와일드카드로 PBA 1부 투어에 진입했다. 가면을 쓰고 등장했던 첫 장면은 확실히 연출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성적은 연출이 아니었다.

개막전 128강에서 베트남의 강호 마민껌에게 0-2로 무릎을 꿇었지만, 다음 대회인 'TS샴푸 챔피언십'에서 그는 4강까지 올라갔다.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이었다. 32강에서 맞붙은 상대가 프레데리크 쿠드롱이었다. 당시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벨기에 선수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했다. 파장은 컸다. 쿠드롱은 당시 PBA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정상급 선수였고, 해커는 그 선수를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이겼다.

같은 시즌 왕중왕전 'SK렌터카 월드챔피언십' 예선에서는 현 국내 최고의 당구 선수 중 한 명인 강동궁을 3-1로 제압하기도 했다. 이 두 결과는 해커의 실력이 '운'이나 '파란'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이후 해커는 PBA 투어를 떠났다. 개인방송을 중심으로 당구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팬들과 소통했다. 그리고 4년 2개월 만에 다시 1부 투어 와일드카드를 받았다.

다니엘 산체스는 지난 시즌 PBA에서 결승 진출 5회, 우승 2회, 준우승 3회를 기록했다. 수치만 보면 리그를 거의 지배했다. 현재 PBA 랭킹 1위다.

과거 프레데리크 쿠드롱과 함께 3쿠션 '사대천왕'으로 묶였던 그는 이제 PBA에서 가장 일관성 있는 선수다. 지난 시즌 개막전에서도 결승까지 올라갔다. 2년 연속 개막전 결승이라는 기록에 도전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128강은 산체스에게 넘어야 할 관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번 상대가 해커라는 점은 다른 128강 매치와 결이 다르다.

해커가 마지막으로 PBA 무대에 선 것은 21-22시즌이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실전 투어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유튜브와 개인방송을 통해 당구를 계속했지만, 프로 투어의 압박과 리듬은 다른 문제다.

반면 산체스는 지난 시즌 내내 고강도 대회를 소화하며 정점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체력적 밀도, 대회 감각, 심리적 안정감 모두 산체스 쪽이 수치로는 우위에 있다.

그럼에도 해커를 단순한 들러리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3쿠션 당구에서 4년의 공백이 기술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해커가 쿠드롱을 완파했던 당시 경기를 되짚어 보면, 그의 강점은 정교한 포지션 플레이와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이었다. 이 두 가지는 실전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당구 기질의 문제에 더 가깝다.

PBA 투어 방식도 변수다. 이번 대회 128강은 25점 점수제로 치러진다. 짧은 경기 형식일수록 순간의 집중력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단기전은 랭킹 기반의 누적 역량보다 그날의 컨디션이 더 많이 작용한다.

PBA 8번째 시즌은 여러 개의 관전 포인트를 동시에 열었다. 산체스의 지배력 지속 여부, 조재호·강동궁·최성원 등 국내 선수들의 반격, LPBA에서 김가영의 통산 20승 및 누적 상금 10억원 돌파 도전까지.

하지만 개막 첫 번째 경기가 해커 대 산체스라는 사실은 이 시즌의 시작점을 흥미롭게 만든다. 해커가 이긴다면, 그것은 단순한 이변이 아니다. 비정규 루트를 통해 프로 무대에 진입하는 선수들이 PBA 최정상을 위협할 수 있다는 신호가 된다.

산체스가 이긴다면, 그것은 기대한 결과다. 그러나 경기 내용이 중요하다. 산체스가 쉽게 이겼는지, 해커가 실제로 경쟁력을 보여줬는지에 따라 이후 대진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해커가 4년 전 쿠드롱을 3-0으로 꺾었을 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날 해커가 잘한 것인지, 쿠드롱이 한 경기를 흘린 것인지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이번 산체스와의 경기는 그 질문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18일 오후 6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 4년의 공백이 경쟁력을 얼마나 지웠는지는 당일에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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