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최대 실적에도…삼성·LG·대한항공 줄줄이 ‘비상경영’ 돌입
성과급·총파업·직고용 갈등…노사 리스크까지 덮쳤다
(시사저널=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올해 1분기 시장의 기대를 웃도는 깜짝 실적을 기록하고도 잇따라 비상경영과 비용 절감에 나서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와 항공여객 등 일부 주력 사업이 전체 실적을 크게 끌어올렸지만, 완제품(가전)과 저비용항공사(LCC) 등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수요 둔화의 직격탄을 맞으며 사업부 간 양극화가 심해진 탓이다. 여기에 성과급 갈등과 하청 직고용 등 노사 리스크마저 구조적인 뇌관으로 부상하면서 겉보기와 달리 기업들의 체감 경영 환경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 최대 실적'에 가린 그림자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43조6000억원)을 단 3개월 만에 13조6000억원이나 초과한 수치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수요 급증이 실적을 견인했다. 업계는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의 영업이익만 5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한다. 사실상 반도체가 그룹 전체 이익을 책임진 셈이다.
반면 완제품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상황이 다르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서 오히려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을 만드는 원가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부품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20% 수준에서 최근 40% 이상으로 치솟았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 담당 모바일경험(MX) 사업부는 물론, 생활가전(DA)과 TV(VD) 사업부 역시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까지 겹쳐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결국 삼성전자 DX부문은 최근 비용 절감을 골자로 한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임원들이 해외 단거리 출장을 갈 때 비즈니스석 대신 이코노미석을 타게 하는 등 세부적인 지출까지 통제의 고삐를 죄고 나섰다.
LG전자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LG전자는 1분기 매출 23조7300억원, 영업이익 1조67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1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이다. 하지만 LG전자는 최근 임원들에게 비상경영 체제 전환 지침을 전달하고 해외출장 시 이코노미석 이용을 원칙화했다. 조직 책임자 경비도 기존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국내 출장 역시 화상회의 대체를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 리스크와 원자재·물류비 상승 등 경영 환경 불확실성 확대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TV와 가전 사업은 물류비와 원가 비중이 높은 구조로 인해 비용 상승이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특징이 있다.
항공 업계의 맏형 대한항공 역시 실적과 경영 환경 간 괴리가 나타나기는 마찬가지다. 대한항공도 1분기 매출 4조5151억원, 영업이익 5169억원을 기록하며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여객사업 매출은 2조6131억원으로 증가했고 유럽·환승 노선 수요 확대가 실적을 견인했다. 화물사업 역시 미주 노선 중심 수요 강세와 계약 물량 확대 영향으로 1조906억원을 기록했다.
그런 대한항공이 이달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국제유가 상승과 환율 변동성 확대에 따른 항공유 비용 증가가 수익성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중동 정세 불안 영향이 본격 반영되는 2분기부터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LCC 업계에서는 이미 비용 압박이 가시화하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항공유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을 이유로 승무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다른 LCC 역시 무급휴직까진 아니더라도 노선 감편을 확대 시행하거나 비용 절감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긴 마찬가지다.
결국 반도체와 항공이 실적을 끌어올리는 동안 완제품과 가전, LCC 등은 비용 상승과 수요 둔화에 직면하면서 기업 전반의 체감 경영 환경은 오히려 악화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역대급 실적이 노사 갈등 뇌관으로
화려한 실적은 오히려 노사 갈등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삼성전자 노조는 이번 역대급 영업이익과 연동한 대규모 성과급 지급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성과급 규모만 약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노조는 기존의 연봉 대비 50% 성과급 상한선 폐지를 주장하며 오는 5월말 18일간의 총파업까지 예고했다. 실적 확대가 곧바로 성과 배분 갈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하청노동자들의 '그룹 공동 교섭' 요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금속노조 산하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5개 계열사 하청노동자 약 1만6400명은 그룹 차원의 원청 교섭을 요구하며 서울 양재동 본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 역시 7~9월에 걸쳐 세 차례 총파업을 예고해, 그룹 전체의 생산라인이 멈춰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포스코는 사내 하청 직원의 직고용 문제를 두고 노노(勞勞) 갈등에 빠졌다. 회사가 제철소 협력사 직원 약 7000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했으나, 정규직 노조와 하청노조 양측 모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포스코는 기존 정규직과 다른 새로운 직군을 신설해 이들을 수용하려 하지만, 하청노조는 "임금 차별이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위원회가 하청노조의 개별 교섭권을 인정하면서, 포스코는 원청노조는 물론 복수의 하청노조와 동시에 험난한 협상을 벌여야 할 처지다.
이처럼 성과급 배분과 직고용, 교섭 방식 등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기업 경영 전반을 흔드는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단기적인 마찰이 아닌 기업 환경의 구조적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실적이 좋다고 해서 경영 환경이 안정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며 "기업들의 전략 무게중심이 '성장'에서 '리스크 방어'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으며, 짠물 경영 기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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