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흐르는 남도의 봄, 그 한가운데에서 ‘산수유꽃이 피었습니다’
“아, 봄이 왔구나.”
처음 그런 말을 꺼낸 건 지리산 자락을 지나던 3월 어느 아침이었다. 섬진강 물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풍경 속, 노란 물결이 스르르 번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며든 그 노란 물결은 흔히 떠올리는 유채도, 개나리도 아니었다. 지리산 자락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꽃이었다. 오래 기다린 손님처럼 조용히 찾아온 봄의 전령사였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이 조용한 고장엔 해마다 봄이면 온 마을이 노랗게 물든다. ‘산수유꽃축제’다.
고요한 마을 골목, 구불구불 이어지는 꽃담길, 지리산에서 흘러온 맑은 물줄기 옆까지, 산수유꽃이 시간처럼 피어 있다. 보는 순간 발길이 멈춘다.
2025년 3월 15일부터 23일까지.
장소는 산동면 온천관광지 일원. 꽃놀이가 아니다. 봄을 눈과 마음으로 담는 시간이다.
봄의 시간표, 구례에서 시작된다
구례의 3월엔 세 가지 색이 있다.
노란 산수유, 붉은 홍매화, 흰 벚꽃.
꽃들은 서로 눈치 보지 않는다.
각자의 타이밍으로 피고, 보는 사람은 그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걷는다. 산동면의 산수유가 먼저 피고, 화엄사의 홍매화가 뒤를 잇는다. 그리고 섬진강 벚꽃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흐름이 자연스럽다. 완벽하다.
벚꽃이 피면 구례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구례 300리 벚꽃길, 총 129km. 벚꽃 명소 중 명소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포함됐다. 4월 초엔 구례 벚꽃축제가 이어진다. 산수유가 끝나도 구례의 봄은 끝나지 않는다.
노랗게 물든 길을 따라 걷는다. 산수유꽃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산수유 꽃길 걷기’다. 단순한 산책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삶이 녹아 있다.
산동면엔 5개 코스, 총 12.4km의 산수유길이 조성돼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마을의 역사, 자연, 농업이 모두 함께 걷는다.
1. 꽃담길·꽃길(2.8km): 지리산 물줄기와 산수유가 만나는 풍경. 평촌, 반곡, 사랑공원을 지난다.
2. 사랑길(3.1km): 축제 무대를 지나 원좌, 상관마을까지. 소박한 마을에 산수유가 피어 있다.
3. 풍경길(1.7km): 주민들이 심고 가꾼 산수유나무. 돌담길, 마을 어귀, 계곡까지 이어진다.
4. 천년길(2.6km): 삼성, 수평, 달전마을을 잇는 길. 넓은 들판과 오래된 고목 ‘할아버지 나무’가 있다.
5. 둘레길(1.4km): 냇가와 저수지 주변을 걷는 코스. 현천마을을 따라 꽃이 흐른다.
길은 조용하다. 대신 깊다. 걷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구례는 그런 곳이다.
축제 안에서 또 다른 봄을 만난다. 꽃만 보긴 아깝다. 축제는 재미도 많다.
1. 산수유 열매 까기 대회: 종이컵 1컵 분량. 누가 더 빨리 까는지 겨룬다.
2. 꽃길 걷기(2.5km): 걷기 완료 시 산수유건피 제공. 하루 25명 한정.
3. 어린이 체험: 활쏘기, 태평소 만들기, 단심줄 놀이까지. 아이들과 함께하면 더 좋다.
올해는 친환경 축제다. 전라남도와 환경기관들이 함께했다. 행사장 내 음식점은 일회용기 대신 다회용기 사용. 환경 캠페인도 진행된다. 구례가 먼저 실천한다.
구례 5일장과 봄의 맛
여행은 결국 ‘맛’으로 기억된다. 구례 5일장, 화개장터와 함께 봄나물의 천국이다. 지리산에서 직접 캔 두릅, 취나물, 참나물… 봄이 입안에서 퍼진다.
축제를 마치고 들를 만한 맛집도 많다. 전통 한식, 고기구이 모두 가능하다. 꽃길 걷고 따뜻한 밥 한 끼. 여행은 그렇게 완성된다.
그곳엔, 잊을 수 없는 봄이 있다. 산수유꽃축제는 단순한 행사 아니다. 잊고 지낸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다. 봄은 그렇게 구례에서 시작된다.
산수유는 이른 봄에 피지만, 마음속엔 오래 남는다. 올해 봄, 꽃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만나고 싶다면 구례로 가야 한다. 지금이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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