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AI 표절 사건’이 유튜브 생태계에 던지는 질문

김동인 기자 2023. 3. 8. 06: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아AI 표절 논란’은 각종 기술 서비스를 동원하면 독자적인 콘텐츠 없이도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사건은 유튜브 생태계의 핵심 동력인 ‘수익화’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2월15일 유튜버 ‘리뷰엉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표절 피해를 입었다’고 폭로했다. ⓒ리뷰엉이 유튜브 갈무리

유튜버가 되어 돈을 벌고 싶다. 하지만 독자적인 콘텐츠도, 노하우도, 심지어 책이나 논문을 읽을 능력도 부족하다면? 지식 노동이 익숙하지 않지만 수익성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누군가 이렇게 속삭인다. “방법이 있다. ‘유튜브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활용해 잘나가는 유튜브 채널과 영상을 추출한다. 이 중에 채널 구독자는 적지만 조회수가 ‘터진’ 영상을 고른다. 이 영상의 제목·주제·섬네일 이미지를 그대로 따라 한다. 비슷한 채널을 여러 개 운영한다. 그럼 얼마든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 지침을 따라 한 사람들이 선을 넘기 시작한다. 섬네일 이미지뿐 아니라 유명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스크립트(대본)까지 그대로 베껴 만든다. 콘텐츠를 표절한 불법행위다. 그러나 죄의식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처음 이 같은 ‘섬네일과 주제 베끼기’를 노하우라고 퍼뜨린 유명인사는 자신의 꼼수를 유료 강의로 판매했고, 베낄 만한 섬네일과 영상을 찾아내는 유료 ‘유튜브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만들어 돈을 벌었다. 2023년 2월,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군 이른바 ‘노아AI 표절 논란’의 전개 과정이다.

논란이 된 유명인사는 구독자 180만의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을 운영했던 주언규씨다. 경제 유튜버로 성공을 거둔 주씨는 지난해 자신이 운영하던 ‘신사임당’ 채널을 20억원에 매각한 후 사업가의 길로 나섰다. 주씨는 학원 강사 출신 창업가 현승원 디쉐어 대표와 함께 유튜버들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했다. 바로 ‘유튜브 데이터 분석 서비스’ 노아AI다. 노아AI는 유튜브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기 있는 채널과 영상을 쉽게 검색하고 추출하게 해주는 서비스다. 베낄 만한 영상을 선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셈이다. 주씨는 자신의 신규 유튜브 채널을 통해 노아AI 활용법을 적극 홍보했다. 문제는 노아AI를 활용한 이들이 저작권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우후죽순 ‘표절 유튜브 영상’을 생산하면서 불거졌다.

구독자 142만명을 보유한 과학 유튜버 ‘리뷰엉이’는 지난 2월15일, ‘제 유튜브가 도둑질 당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공개하며 자신이 이 ‘표절 유튜브 영상’의 피해자라고 밝혔다. 리뷰엉이의 유튜브 제목·주제·섬네일·스크립트까지 그대로 따라 한 채널은 ‘우주고양이 김춘삼(이하 김춘삼)’이었다. 김춘삼은 노아AI를 운영하는 주언규씨의 유튜브에도 출연해 ‘노아AI로 성공을 거둔 케이스’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영상에서 김춘삼은 “현재 월 300만~500만원 정도 수익이 나고 있다. (나는) 우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이런 식(표절)으로 채널 3~4개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것도 노아AI만 있으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리뷰엉이의 폭로는 온라인에서 일파만파 퍼졌다. 결국 표절 당사자인 김춘삼은 “타 유튜버(리뷰엉이)의 스크립트를 이용하여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과학 유튜버들이 피해를 입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드립니다”라는 공지문을 올린 뒤 채널을 삭제해버렸다. 표절을 수익화 모델로 소개하고 영리 목적 사업을 벌인 주언규씨에 대해서도 온라인에서 큰 비난이 일었다. 주씨는 “저의 안일한 저작권 의식으로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문을 올린 뒤 마찬가지로 채널에 남아 있던 영상을 삭제했다. 주씨가 운영하던 노아AI 역시 2월21일 서비스 종료 공지를 올리며 사이트를 닫았다.

노아AI를 운영하던 주언규씨는 사과문을 올리고 자신이 그동안 올린 영상을 삭제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챗지피티로 떼돈 버는 법’?

여기까지 보면 이번 사건을 유명 유튜버의 몰락 또는 표절 사태에 대한 응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유튜브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훨씬 크다. 김춘삼 사례를 통해 독자적인 콘텐츠 없이도 얼마든지 ‘유사 콘텐츠’로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영상 제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료 해석이나 대본 준비 없이도 기술의 도움으로 콘텐츠를 우후죽순 찍어낼 수 있게 되면서 유튜브 생태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김춘삼의 채널은 문을 닫았고, 노아AI 역시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얼마든지 제2, 제3의 김춘삼 사태가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 됐다. 더욱이 이들 표절 유튜브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익명으로 운영된다. 김춘삼의 경우 자청해 ‘노하우 공개’ 영상을 찍고, 유명 유튜버(리뷰엉이)의 영상을 베끼는 바람에 공론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건 이후 AI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표절 과정에 각종 AI 서비스들이 동원되고 있어서다. 김춘삼이 주언규씨와 함께 찍은 영상에서 공개한 ‘표절 노하우’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여기서 김춘삼은 자신의 유튜브 표절 작업을 이렇게 소개한다. 1단계, 노아AI의 도움을 받아 표절할 영상을 골라낸다. 2단계, 해당 영상의 스크립트를 AI 기술(파파고)로 긁어내고 번역한다(김춘삼은 해외 유튜브 채널도 표절했다). 3단계, AI 작문 서비스(뤼튼)를 이용해 그럴듯한 대본을 만든다. 세 단계 모두 데이터 분석·음성추출 및 번역·작문이라는 각기 다른 분야의 AI 서비스가 동원된다. 김춘삼은 “(나는) 논문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더라”며 자력으로는 참고 자료를 활용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당당하게 밝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배경지식이나 독해력이 부족해도 AI 플랫폼을 이용한다면 그럴듯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사건은 널리 알린 셈이 되었다.

원천 지식 없이 AI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거나 베끼는 작업은 유튜브 생태계에서 점차 널리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챗지피티(ChatGPT)처럼 글을 만들어내는 방식도 급속히 달라지고 있다. 한 유튜버는 2월17일 ‘챗지피티와 유튜브 쇼츠로 떼돈 버는 법’이라는 영상을 올리며 AI로 대본뿐 아니라 이미지까지 모두 해결하는 방법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어로 질문을 작성한 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영어로 번역한다. 챗지피티로 그럴듯한 답변을 추출한 뒤 다시 구글 번역기로 한국어 대본을 만든다. 딥AI(DeepAI) 사이트를 이용해 영상에 들어갈 이미지를 생성한다. 글과 이미지를 합쳐 쇼츠용 영상을 제작해 배포한다.

노아AI 표절 사건은 유튜브 생태계의 핵심 동력인 ‘수익화’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AI의 등장은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해 베낄 대상을 선별하게 해주고, 콘텐츠의 핵심인 대본 역시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만들 수 있게 했다. 수익화를 최우선 가치로 둔 이들의 ‘표절 영상’이 늘어날수록, 플랫폼에 담긴 콘텐츠의 평균적인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저작권에 대한 법률적·윤리적 인식 없이 순수하게 ‘수익화’에 초점을 맞췄을 때, 플랫폼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챗지피티 등장 이후 이러한 표절 사례는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챗지피티 같은 작문 AI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은 ‘표절과는 다르다’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문장을 AI로 생성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기술을 동원해 문장의 유사성이라는 표절 기준을 피한다 해도, 결국 AI가 학습하는 데이터 역시 ‘온라인에 이미 존재하는 콘텐츠’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역시 챗지피티에 대해 “첨단기술 표절 시스템(high-tech plagiarism system)”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AI가 ‘학습할 재료’ 역시 상당 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다. 노아AI 표절 사건은 이처럼 그동안 ‘광고 수익화’를 기반으로 유지되던 콘텐츠 플랫폼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남기고 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