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랑 싸우다 ‘이게 무슨 일이야’…인도오픈, 국제대회 맞나?

인도 뉴델리 인디라 간디 스포츠 콤플렉스. 이름만 들으면 “국제대회답게 깔끔한 경기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번 인도 오픈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실내체육관인데도 새가 날아들고, 가끔은 코트 위에 이물질이 떨어진다. 심지어 준결승 무대에서 중국 진영 쪽 코트에 ‘새똥’이 떨어져 경기가 멈추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게 웃긴 해프닝처럼 소비되기엔, 선수들 입장에서는 집중을 끊어 먹는 꽤 큰 변수다.

그런데도 한국 여자복식 간판 백하나(MG새마을금고)-이소희(인천국제공항)는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다. 상대가 누구였나. 여자복식 세계 1위 류성수-탄닝(중국). 말레이시아 오픈 결승에서 한 번 졌고, 이번 인도 오픈 준결승은 “설욕전” 성격이 강했다. 결과는 1-2 패배. 결승행은 좌절됐다. 하지만 경기 내용을 뜯어보면, 이 패배는 그냥 “또 졌다”로 정리하기엔 너무 많은 장면이 들어 있다.

1게임 초반은 나쁘지 않았다. 백하나-이소희가 먼저 연속 득점을 만들며 3-2로 앞서갔다. “오늘은 다르다”는 기운이 잠깐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세계 1위는 상대가 숨 한 번 고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류성수-탄닝이 곧바로 4점을 연달아 가져가며 흐름을 바꿨고, 그때부터 코트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여기에 ‘새똥 중단’이 끼어들었다. 경기 도중 중국 코트에 새 배설물이 떨어져 정리하는 시간이 생겼고, 선수들은 멈춰 섰다. 이런 장면은 선수들의 리듬을 깨기 딱 좋다. 특히 복식은 한 번 박자가 어긋나면 수비 간격이 벌어지고, 그 틈을 상대가 바로 찌른다. 재개 후 백하나-이소희는 6-11로 뒤진 채 인터벌에 들어갔고, 결국 12-21로 1게임을 내줬다.

점수만 보면 크게 밀린 것 같지만, 내용은 조금 더 복잡하다. 세계 1위의 공세가 무섭기도 했지만, 한국 조가 특유의 ‘받아치기’ 리듬을 만들기 전에 점수가 먼저 벌어져버린 느낌이 컸다. 류성수의 높은 타점 공격과 탄닝의 빠른 전위 압박이 한 번 들어오면, 한두 개 랠리로 끊기지 않는다. 그게 1게임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2게임은 완전히 다른 경기였다. 0-2로 시작했지만, 바로 3연속 득점으로 3-2 역전. 그리고 6-4까지 리드를 잡아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한국 조가 “버티기만” 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수비는 더 단단해졌고

전위에서 백하나가 흐름을 끊어냈고

후위에서 이소희가 한 방을 만들어냈다

특히 백미는 9-8에서 나온 초장기 랠리였다. 숫자만 들어도 감이 오지만, 90회를 훌쩍 넘는 긴 랠리가 이어졌고, 마지막을 백하나가 정리했다. 이런 랠리는 점수 1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상대도 체력과 집중력을 태우고 들어가는 구간이기 때문에, 여기서 웃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다만 13-8까지 달아난 뒤, 세계 1위는 역시 세계 1위였다. 순식간에 17-17 동점. 이 장면에서 흔들려 무너지는 팀도 많다. 그런데 백하나-이소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4연속 득점으로 21-17. 준결승에서, 세계 1위를 상대로, 흐름이 넘어가려는 순간을 다시 잡아채는 건 아무나 못 한다.

“졌는데도 칭찬할 게 있냐”는 말을 종종 듣지만, 2게임은 진짜로 칭찬할 만했다. 이 팀의 강점이 뭔지, 왜 상위권에 있는지, 한 세트에 꽉 담아 보여줬다.

문제는 3게임이었다. 3-3에서 연달아 실점하며 3-6. 그리고 어느새 6-13. 이게 치명적이었다. 복식에서 7점 차는 ‘실력 차이’로만 벌어지는 점수가 아니다. 대개는 리듬이 무너졌거나, 상대에게 패턴을 읽혔거나, 혹은 둘 다다.

3게임에서 한국 조는 중반에 추격을 해냈다. 9-16에서 3연속 득점, 12-16까지 따라붙는 장면이 나왔다. 상대가 지쳐 보이는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혹시 또 뒤집나?” 싶은 기운도 잠깐 돌았다. 하지만 그 마지막 한 고비에서, 세계 1위의 집중력이 더 단단했다. 류성수-탄닝은 흔들릴 때일수록 공격의 선택이 더 단순해지고 정확해졌다. 반대로 백하나-이소희는 점수를 좁혀야 한다는 마음이 커지면서, 공격이 조금 빨라지고, 수비 간격이 살짝 벌어졌다. 결국 14-21.

여기서 가장 아쉬운 건 “실력 차이로 졌다”보다, “잡을 수 있는 흐름이 있었는데 초반에 너무 벌어졌다”는 점이다. 2게임을 따내며 분위기를 가져온 팀이 3게임 초반에 다시 크게 밀리는 건, 상대가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쪽 루틴이 아직 완전히 정교하진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번 경기를 이상하게 만든 건 경기력만이 아니다. 대회 운영 이슈가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얹혔다. 실내체육관에 새가 들어오고, 코트에 배설물이 떨어지고, 그걸 닦느라 경기가 멈춘다. 이건 국제대회에서 흔히 볼 장면이 아니다. 선수는 몸을 데우고, 호흡을 끌어올리고, 손끝 감각을 맞추면서 ‘경기 모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중단이 걸리면 그 상태가 끊긴다. 멘털이 강한 선수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졌다면, 아쉬움이 더 진하게 남는다. “졌으니까 변명”이 아니라, 애초에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주최 측의 기본 역할이기 때문이다. 세계 1위를 상대로 한 끗 승부가 될수록, 이런 변수는 더 잔인하게 작동한다.

결과는 결승 실패다. 설욕도 다음으로 미뤄졌다. 상대 전적도 6승 8패로 더 벌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확인한 것도 있다.

2게임처럼 완성된 운영이 나오면 세계 1위도 흔들린다

긴 랠리에서 밀리지 않는 체력과 수비력은 이미 상위권급이다

남은 과제는 3게임 초반의 집중력, 그리고 상대의 속도를 끊는 ‘첫 대응’이다

요즘 배드민턴 여자복식은 “중국이 강하다”는 말로 쉽게 정리되지만, 백하나-이소희는 그 정리에서 벗어나려는 몇 안 되는 조합이다. 물론 팬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말레이시아 오픈 결승에 이어 또 졌으니 “또야?”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진짜로 무서운 팀은, 지고도 무너지지 않고, 진 방법을 기억하는 팀이다. 이번 준결승은 그 ‘기억’이 남는 경기였다.

마지막으로, 묘하게 마음이 쓰인다. 세계 1위를 잡을 수 있는 손이 닿는 거리까지 갔는데, 결정적인 순간마다 운도, 환경도, 흐름도 한 번씩 비틀어졌다. 새똥까지 떨어진 경기장에서, 80분 혈투 끝에 고개를 숙이는 장면은 괜히 더 씁쓸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패배는 끝이 아니라, 다음 결승을 위한 데이터다. 그리고 이 팀은 아직 그 다음을 말할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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